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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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력의 양도 가늠이 가능하오?”
“예.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라고 가늠은 가능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유리가 가늠하듯 눈 을 가늘게 떴다.
“폐하께서도 그러셨지만, 마마께서 도 아주 많은 마력을 가지고 계십니
다.”
又측도 아닌, 사실을 말하는 것 같 은 평이한 목소리였다.
그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 많을수록 큰 단위의 마법을 쓸 수 있다.
그 말인즉, 이능으로 치환하면 마력 이 많을수록 위대한 이능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마력의 양이 많다면 내가 왜 이능 을 못 쓰는 거지?
나는 가만히 손을 쥐었다 펴 보았 다.
평소와 똑같을 뿐 별반 다른 느낌 은 없었다.
몇 개월을 이 몸으로 살았지만 이 능 같은 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
다.
당연히 없는 거 아니야?
•••쓰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나?'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운에게 시선 을 돌렸다.
“고운. 혹시 이능 쓸 수 있으면 한 번 보여 주겠니?” 이능이 봉인된다고 했지만, 고운은 워낙 황궁에 오래 머물렀고, 또 황제 의 암대이니 이능을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으2'
이능이 순간 이동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삐익.”
그리고 그때, 발치에서 작은 울음소 리가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하마터면 웃 을 뻔했다.
동물로 변하는 이능이구나.
삐죽삐죽 털이 나고 있는 어린 새 였다.
나는 몸을 숙여 머리를 한 번 쓰다 듬어 준 뒤 말했다.
“이제 돌아오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운이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다. 옷은 같이 작아지지 않았는데, 요령이 있는지 몸이 커지며 얼추 옷을 껴입고 있었 다.
지수가 손가락을 튕기고, 미리내가 노래를 부르기에 이능을 쓸 때에 반 드시 거쳐야 할 행동 같은 것이 있 나 싶었다.
하지만 고운은 그런 것 없이 이능 을 쌌다.
“어떻게 하는 거야?”
고운이 내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 을 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지로 발현합니다.”
고운 딴에는 꽤나 고심해서 대답한 말이겠지만, 나는 기운이 빠졌다.
그걸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닌데.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래?”
이번에도 고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하긴 이능을 가진 사람들 중 이능 을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숨을 내쉬는 것처럼,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
다.
근데 왜 나는 모르나고.
'마력도 많다면서?'
나는 탁자 위의 다완을 가만히 노 려보았다.
여란 가의 이능은 강력하고, 이 육 체는 그 핏줄이다.
마력이 많아서 사실은 이능을 쓸 수 있는데, 쓸 줄 몰라서 그런 거라
'애초에 난 이능이 없는 줄 알고 써 본 적도 없잖아.' 시도해 볼 만 한 것 같은데.
의지의 발현이라고 했지. 쓰려고 생 각만 하면 된다는 걸까?
•••떠올라라!'
다완을 무섭게 노려보며 속으로 외 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놓지 않0갔어도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했다.
'떠올라!'
이번에는 좀 더 확신에 자서 명령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이 씨, 안 해, 안 해.
없는 거 맞잖아.
시도를 빠르게 포기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이오. 나는 어떠한 이 능도 운용할 수 없소.” “정말이십니까?” 유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 었다. 나도 속이 터졌다.
여란 가의 이능은 용에게 축복받은 일곱 가문 중 하나답게 아주 강력했
다.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염 력이니만큼 활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무궁무진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먼지킨 했 지, 이렇게 아등바등 기윤 이겨 먹겠 다고 애쓰고 있겠나.
“그대가 잘못 본 듯하오.” 단호히 말을 맺자 유리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 어떻게•••
“우선 묻겠는데, 어떤 이능이든 담 겨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내 질문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결에 대답했나 싶어 재차 물었지 만 대답은 같았다.
“아티팩트는 저장된 마력을 특정 방식으로 꺼내다 쓰는 것이니, 어느 이능이든 아티팩트 안에 들어가면 태초의 마력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니 괜찮습니
다.” 그럼 됐네, 뭐.
혹시 못 해 줄까 싶어 잠깐이라도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
다.
나는 편하게 몸을 등받이에 기대며 용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반만 틀어 올린 머리에 꽂힌 용 비 녀가 의자에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내 이능을 쓰지 못한다 해도 내 선에서 해결이 가능한 일이오. 걱정 마시오.” 이능이 담기는 것은 용의 일부. 그 러니까 여의주에는 이능을 담을 수 있다.
지수가 전유를 마주졌을 때, 그는 선유의 여의주가 녹색으로 물들고 난 뒤 이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아마 못 했다고 말하는 게 맞 을 것이다.
'이능이 여의주에 흡수되었던 거 아
닐까.'
색은 섞일수록 탁해지고, 결국에는 검은색이 되지.
그리고 내가 가진 두 개의 여의주  모= 검은색이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선유의 말도 의미심장하고, 내가 본 것도 의미심 장했다.
나중에 확실하게 물어보자. 그리고 혹시 아니라고 하면•••
'저 하안색 물체 들고 다니면서 원 기옥 모으듯이 이능 부어 달라고 하 자.'
“그리고 혹시나 하여 묻소. 지금 환 회전에서 그리 좋은 취급을 받지는 못할 듯싶은데. 맞소?”
그렇게 묻자 유리가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구해 주려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혹시 모를 것을 대비 해 유리에게 한 번 더 물었다.
“허면 그들을 완전히 끊어 낼 수 있겠소?”
유리, 내 아들아. 무슨 일이 있어 도 버티거라.” 묵직하고 진중한 부왕의 목소리.
그건 유리가 실바누스를 떠나기 전 제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 이었다.
서 대륙에 마력이 고갈되기 시작한 것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미처 막을 수도 없는 자연재해 같 았다. 말라 가는 마력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게 비단 실바누스만의 문제가 아 니라는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서 대륙 안의 마력이 점점 고갈되 어 가고 있다.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 던 그들은 시선을 돌렸다.
동 대륙, 서라국은 오랫동안 쇄국 정책에 가까운 외교를 펼쳤다.
교류는커녕, 동대륙인이 서 대륙으 로 간 전적조차 없었고, 간혹 서 대 륙에서 사절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 다.
천운으로, 마침 서라국의 건국제가 가까웠다.
실바누스 왕실에게 이것은 기회였
다.
동 대륙에서 마력 고갈의 해결책을 찾아 온다면, 폭정을 일삼는 섭정공 을 몰아내고 다시 정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섭정공에게 권력을 빼앗긴 왕실은 아무런 힘도 없었기에, 사절 단에 영특한 왕자를 포함 시기는 것 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공작과 그의 세 력은 유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본국에서는 왕자 대접이라도 해 주 던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유리는 기진 하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유리는 공작의 눈 밖에 나 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동 대륙과 서 대륙을 횡단하는 것 은 텔레포트 마법이었고, 유리의 마 력은 마력이 없어진 다른 이들을 돕 느라 기진 바닥나 있었다.
서 대륙보다 마력이 풍부한 탓에 회복이 되기는 했지만, 무언가 다른 지 그다지 빠르지도 않았다.
사절단이 서라국에 머무르는 기간 은 이 주일.
가늠해 봐도 그 안에 다 차오를 양
0 아니었다.
공작 또한 그를 알고 있었고, 그 탓 에 이런저런 괴롭힘들이 이어졌다.
식사를 내주지 않거나 장고에 가두 는 치졸한 것부터, 유리의 신분조차 서라국의 황제에게 밝히지 않는 심 각한 것까지.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유리는 서 대륙에서 온 시종에 불과했다.
황제를 대면하기라도 해야 제 신분 을 밝힐 텐데, 공작의 농간으로 환희 전의 궁인들은 모두 유리가 공작이 데려온 시종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유리는 노력했다. 연회에 꼬 박꼬박 참석하고, 이리저리 귀동냥해 황제가 하나 있는 공주를 몹시 아낀 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하지만 늘 열리는 연회에는 대부분 의 중요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았고, 간신히 만난 공주는 그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래도 유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 주는 그의 또래이니 친해진다면 황 제와 독대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
다.
유리는 정말이지 노력했다. 좌절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씩씩하게 본인을 다잡았다.
하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았 다.
공주와 말 한 마디라도 나누려 공 주의 가마 뒤를 졸졸 쫓아갔을 때, 유리는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가마꾼의 뒤 를 따르는 모습은 제법 시선을 끌었 고, 내성적이었던 유리는 그것을 꾹 꾹 참았었다.
하지만 화룡궁의 문 앞에서 가로막 혀졌을 때.
모두가 그를 비웃는 눈빛에, 그 비 참함과 서러움에 유리는 그만 눈물 이 터지고 말았다.
조금 훌쩍거리고 말 수 있는 정도 가 아니었다. 눈물이 수도꼭지를 연 듯 퐁퐁 솟았다. 유리는 엉엉 울며 사람이 없는 곳 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정원에 도착한 유리는 그대로 주저앉아 또다시 눈 물을 터트렸다.
얼마나 걸었는지 발이 퉁퉁 부어 아팠다. 그게 안 그래도 넘쳐흐르는 서러움을 더했다.
배도 고프고, 잠자리도 불편해서 몸 도 피곤했다.
제 손을 잡고 몇 번씩이나 당부하 던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 렸다. 유리는 흐어엉, 하고 소리 내어 울 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르고 계속 울었다.
자신이 사라져 봤자 이 넓은 대륙 에서 자신을 찾는 이가 하나도 없다 는 게 유리를 더 서럽게 했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나 어떡해. 우 리나라 망했어.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며 얼마나 울었을까, 정말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 에는 공주가 있었다.
무심하던 보랏빛 눈동자가 의아하 다는 듯 동그랬다.
드디어 주어진 대화의 기회였지만, 유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뒤는, 모두가 아는 대로.
산야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을 했 을 때, 그제야 울음이 멎어 가 끅끅 대며 유리는 생각했다.
아, 정말 망했다.
찬찬히 또박또박 말해도 모자랄 판 에 이게 무슨 추태인가.

산아가 여덟 살이 아니라 네 살이 라도 들어주지 못할 만한 말이었다. “잘 가시오. 배웅은 않겠소.” 그래서 더더욱, 유리는 지금 이 상 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문까지 나온 산아가 특유의 시큰 등한 얼굴로 유리에게 손을 흔들었 다.
유리는 얼떨결에 그 친근한 인사에 마주 손을 흔들고 말았다.
마중은 다 나와 준 주제에 산아가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제 궁으로 향했다.
유리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 았다.
산야가 제 나라의 구명의 대가로 제시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폐하 앞에서 이야기만 하면 된다
심각할 경우엔 제 목숨마저 걸 생 각까지 했던 소년가장 유리에게는 아주 뜻밖의 것이었다.
그런 것이라면 열두 번도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아는 왜 굳이 그런 쉬운 일을 대가로 내걸었을까? 유리는 똑똑했고, 그만큼 금세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날 도와준 거야.' 그 안타까운 사연에 산야가 자비를 베푼 것이다.
유리는 산야를 겉모습으로만 판단 한 것에 대해 깊게 반성했다.
서라국긔0 고八느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이답게 뛰어난 통찰력과 자애 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도움은 잊지 않는다.
아직은 유리가 아무 힘도 없지만, 언젠가 은인에게 반드시 보답할 것 이다.
유리는 따뜻해진 마음과 든든한 배, 그리고 강한 결심을 가지고 환환희 전으로 돌아갔다.
산야가 이것을 알았다면 몹시 의아 해할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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