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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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인영이 형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 졌다. 열 살이나 되었을 법한 모습의 아 이였다.
천에 가까운 옷을 입은 아이의 백 발이 발치에 끌렸다.
엄마의 머리색과 같은 새하안 머리 가락.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친 아이의 눈 또한 회백색이었다.
저 아이가 용이다.
이곳이 용의 등지라는 걸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았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뒷걸음질 졌다. 온몸에 소름이 쭉 돋아 있었 다.
나는 왜 서라국인들이 서 대륙에 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 허리께에나 오는 작은 아이였 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시선조차 피하지 못했다.
이래서 뭐든 내가 겪어 봐야 이해 한다는 걸까.
호랑이를 눈앞에서 만나면 오금이 저린다고들 한다.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본 능적인 두려움이 치솟았다.
저 아이와 만나면 안 돼.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그 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마음을 다잡 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안 돼.' 저 아이는 분명히 용이다. 그리고 나는 용을 만나러 왔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 면 산다고 했다.
본능이고 자시고, 정신 차리자.
'괜찮을 거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는 서라국이었고, 괴상한 흰 공간이 었지만 그것도 분명 용이라고 했었
다.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었지만 그때 도 용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아 무런 위해를 끼치지 않고 나를 돌려 보냈다.
숨을 깊게 내쉬자 누군가 내 소1-으己 잡아 왔다.
크고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움켜쥐 었다.
그래. 혼자 온 것도 아니니까.
빨리 끝내고, 얼른 돌아가자.
고운의 손을 한 번 꾹 잡아 준 나  그 손을 떨쳐 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 발짝 다가갔
다.
“안녕하세요.”
“우리, 만난 적이 있었죠?” 머리뼈를 붙들고 말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반색했다.
활짝 웃으며 아이가 내게 뛰어왔
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나는 진저 리를 졌지만,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붙드는 것이 먼저였다.
“아륜9”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작은 목소리 가 동굴을 울렸다.
“아륜 맞지?” 전에도 그랬지만, 용은 자꾸 나를 성으로 불렀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없어 입을 다물자 아이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아이는 울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 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올 줄 알았어.”
“기다리고 있었어, 아륜.”
눈물 고인 눈으로 웃는 얼굴이 애 처로웠다. 동시에 나는 강한 위화감  느꼈다.
저번에는 분명 이런 태도가 아니었 는데.
목소리만 들렸지만 그때의 용은 훨 씬 어른스러웠다.
고작 한 번 본 것을 가지고 이렇 게나 반가워하는 것도 이상해.
하지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게 오롯이 꽂혀 있던 아이의 시선 이 빗겨 갔다.
“그런데, 누글 데려온 거야?”
웃음이 사라진 아이의 회백색 눈동 자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걱,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가 뒤편 에서 들렸다.
“아니, 잠시만•••   '네 몇 번째 남편이야?" 그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아이의 손의 악력이 얼마나 센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고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그릴 수가 없었 다.
공포로 새하얘진 머리를 어떻게든
돌려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동굴이 무섭도록 조용했다.
-1-正그 0 -Q-근 데려오지 않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아무 이유 없이 용은 고운을 공격 했다. 설득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잘 열리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언령을 중얼거렸다.
제발 통해라, 제발.
고요가 이어지고, 아이가 의아하다 는 듯 고개를 작게 기울였다.
“어디로 보낸 거야?”
“아, 그곳이구나. 네가 만든 그들의 고향." 곧바로 알아채는 말에 심장이 철렁 했다.
“내가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건 잊 지 않았구나, 아륜.”
아이는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했 고, 그게 한결 안심되었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왔으니까, 그 걸로 됐어.”
하지만 마음을 놓기가 무섭게 잠시 느슨해졌던 손의 악력이 강해졌다.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이 새하얘 졌다.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나는 정신 을 잃었다.
기절까지 했던 게 무색하게, 다시 깨어난 내 시야에는 동굴의 천장이 그대로 보였다.
벌떡 일어난 나는 두통이 밀려와 잠시 머리를 싸쥐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천장이 똑같았던 만큼 내가 깨어난 곳은 아까의 그 동굴과 똑같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 동굴 한가운 데에 놓여 있던 커다란 머리뼈가 사라진 것과 동굴 밖이 새하얗다
느 거
1- 2'•
곧바로 보이던 산길이 보이지 않았 다.
안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 동굴 만 세상에서 떨어져 나은 것 같았 다.
나는 언령을 쓰려다 멈칫했다. 아 직 서라국으로 돌아가기엔 일렀다.
[빛이 필요해.]
동굴이 아까보다 어두컴컴했기에, 나는 다른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너무 모호한가 싶어 모닥불을 만들 어 달라고도 말해 봤지만 여전했다. '왜 언령이 안 되지?'
아까 용의 등지 안에서 언령 사용 이 가능했다.
엄마에게 받은 이능이 다 떨어졌나 싶었지만 아직 반 이상이 남아 있었
다.
나는 아연해졌다.
단순히 환경이 조금 바뀐 정도가 아니라, 다른 곳인 건가?
'왜 용의 등지로 가겠다는 언령이 안 되나 했더니.' 등지가 두 개여서 그랬나 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언령으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했 다면, 마찬가지로 나가는 것도 불가 능할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못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아륜. 일어났어?”
그때, 뒤에서 천진한 목소리가 들 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고개를 가 웃했다.
몹시도 살가운 물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만큼 두려움에 쩔쩔매지 는 않았다.
언령도 쓸 수 없고, 무작정 뛰어나 갔다간 저 바깥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저 아이가 나를 데리고 들어왔으 니, 데리고 나갈 수도 있겠지.
0 문제에서도, 내 귀환에서도 결국 열쇠는 저 아이, 용이었다.
“무언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아
요.” 나는 우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제가 아륜의 성을 가진 것은 맞지 口} 0 01라 불리지는 않아서요.” 아륜이라는 사람을 꽤나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데, 그래서 날 놓아주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내 말에도 아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 00, 그러니까 아륜 아나?”
“저는 산야예요.”
“아까 나랑 만난 적이 있다고 했잖
아.
“네. 지금 그 모습으로 뵌 건 아니 지만, 서라국에서 뵈었어요. 제가 이 능을 쓸 수 있게 해 달라 부탁드렸 있고, 그에 세 번 이능을 쓸 수 있 게 해 주셨었죠
설명이 이어질수록 아이는 자자 납 득하는 듯했고, 반짝이던 눈빛이 점 점 가라앉았다.
이윽고 나지막이 터진 목소리가 건 조하다.
“너, 그 아이구나.” 의미 모를 말에 내가 의아해하기도
전에 아이가 휙 몸을 돌렸다. 조금 의 미련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그냥 가면 안 되는데?
“저, 잠시만요!”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을 뿐인데 동 굴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가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 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를 보려고 하셨던 것 아니셨나 요?”
되묻는 말투가 몹시 차가웠다. 언
제 반겼냐는 듯이, 아이는 무미7닌조 했다.
“절 특별히 들여보내 주신 것 아니 에요?"
“아나.”
“그럼 아까의 안개는-”
“오늘은 내가 유난히 우울한 날인 가 보지.”
용이 내 말을 자르며 짜증스럽게 미간을 구겼다.
“너, 계속 떠들 거니?”
그 말이 끝나자 누군가 내 숨통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사그라졌던 공포가 무섭게 고개를 들었다. 맹수 앞에 선 한낱 미물이 된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나 는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맡겨 둔 것처럼 부탁하는 게 염치 없다는 걸 안다. 경종을 울려대는 감을 무시하는 것 도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한 번만, 들어라도 주시면 안 될 까요?"
내 절박한 말에 용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곧 귀찮다는 듯 고개 를 돌렸다.
“싫어.
인정머리 없는 놈아•••  '용 맞아?'
그런 의문마저 들었다. 아무리 오 래전의 일이지만 저 아이는 내 기억 과 너무 달랐다.
아륜 타령하는 건 똑같긴 한데. “용이•••••• 맞으신가요?” 떠든다고 화낼까 봐 나는 아주 조 용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한숨 소리 가 들렸다.
몹시 성의 없는 대답이지만 적어도 대답이 돌아왔다는 게 희망적이있
다.
더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볼까? 먹 힐 만한 상대인가?
“피곤해. 조용히 있어.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용이 말했다.
생각도 읽을 수 있나 싶어 얼어붙 자 용은 용건이 끝났다는 듯 타박타 박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운 놀랐겠다.  예고 없이 날려 보낸 터라 꽤 당 황스러웠을 것이다.
무사히 돌아갈 테니 얌전히 기다리 라고도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을 이어 나가려는데, 심장이 크게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내려다보자 덜덜 떨리고 있었
다.
그걸 가만히 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무서웠어.
진짜, 정말로 얼른 집에 가고 싶
다.
'그래도 마냥 막막하지는 않아.'
내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0갔다면 고운에게 했던 것처럼 곧장 죽이려 했을 거야.
그래도 살려 두고, 다시 다른 곳으 로 보내지도 않고 조용히 있으라고 한 건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다.
일이잖아. 조금만 더 힘내 보자.
손의 떨림은 일마 지나지 않아 멎 었다.
나는 다리를 톡톡 두드리고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동굴의 구조부터 파악해 볼 생각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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