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 0 0
                                    


“많이 징그러웠을 텐데, 산야는 의 것하군요.”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미리내가 한 말에 나는 홀짝거리던 차를 뱉을 뻔 했다.
러시안룰렛의 차례가 돌아왔다.
잘 대답해아 한다. '네, 징그러웠지 만 저는 비위가 강하기 때문에 괜찮 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간 아까 화원으로 끌려간 궁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 년 괴물이 아니야.
나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된 것 처럼 조용히 대답했다.
사실 이건 예화가 먼저 미리내에게 써먹은 방법이다.
그래서 미리내는 자신을 제대로 보 아 준 예화에게 작살에 꿰인 물고기 처럼 반해 버렸다.
그걸 노린 건 절대 아니지만, 사족 을 붙이지 않은 상태의 말로는 가장 좋은 대답이기도 했다.
눈은 모두 똑같은 눈이지요.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도리어 귀비 마마 께 심려를 끼쳐 드려 정말 죄송했습
니다.”
깔끔했다.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하 다.
그리고 참 에 같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내 사과에 미리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웃었다. “괜찮습니다.” 좋아. 통과.
나는 내심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어진 미 리내의 행동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도 스스로가 어 색한 얼굴을 했다.
잠시 입가를 매만지던 미리내는 이 내 내게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움츠리자 그 손 은 허공에서 멈췄다.
손을 거두려던 미리내가 작게 물있
다. “쓰다듬어도 될까요?” 누굴. 날? 나는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  아니었다.
게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개 같지 않나.
그렇지만 하시겠다면, 막을 도리가 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리내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혹 헝클어질까 조심스레 쓰다듬는 소 1- 기 근 -의1- 曰그--러웠다.
솔직히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야는 착하네요. 사과도 할 줄 알고.” 그래. 난 원래 착해. 그러니까 이 제 내 머리에서 손 좀 떼•••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산아
처럼 착하지가 않아서 말이에요.”
入1- -巨0 7그1正亡 미리내가 자세를 다듬었 다.
그가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야기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는
데.”
말하면 죽이겠다는 말이다. “예. 귀비 마마.”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
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뱀이 먹잇감을 어떻게 소화하 는지 알았고, 굳이 미리내의 뱃속을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내 대답에 미리내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어찌 되었든 이제 할 말이 끝났으 면 슬슬 돌아가고 싶은데.
나는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는 바깥을 슬쩍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미리내의 시선도 함께 돌아7갔다.
그 또한 황혼을 보았는지 고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많이 늦어 비렸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
“석찬을 내 궁에서 들고 가지 않겠 어요?” 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더 정확히는 의심이라기보단 필사 적인 희망이었다. 잘못 들은 거지?
내 눈빛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미리내가 빙긋 웃었다.
“궁의 숙수들의 솜씨가 꽤나 좋답 니다. 오늘은 후식으로 달콤한 정과 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 한 번 뜸을 들였다.
어쩌라는 걸까. 후식이 맛있어도 함께 먹는 사람 탓에 체할 것 같은
데.
“탐나지 않나요?”
누굴 애새끼로 알아. 자라리 돈으 로 쥐.
하지만 나는 곧 현실을 직시했다.
지금 나는 애새끼가 맞았고 귀비보 다 직책이 낮0갔다.
, 그가 내민 선택지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대되네요.” 나는 간신히 짜낸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젓가락질을 하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밥은 코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솜씨가 좋다는 말은 정말인지 그래 도 맛은 있었다.
맛있는 모래 같았다.
미리내는 우아한 자세로 젓가락질 을 하고 있었다.
음식을 적당히 집고 입가로 가져가 는 손짓이 고아했다.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자괴감을 느 꼈다.
산야는 혹독히 교육받아 완벽한 예 법을 구사했고, 그건 이 몸에 들어 온 내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다만 내 짤막한 어린아이의 것이라는 것.
의자도 너무 낮아 방석을 몇 개를 겹쳐 앉은 아이에게 위엄 따위가 있 을 리가.
얼른 먹고 일어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젓가락질을 서둘렀다.
반찬은 건드리지 않고 밥만 일정하 게 입에 집어넣었다.
어찌 되었든 식사는 밥만 다 먹으 면 끝난다.
그때, 내 밥그릇 앞으로 고기를 집 은 젓가락이 불쑥 들어왔다.
그대로 고개를 들자 미소 짓고 있  미리내가 보였다.
들어 보세요. 맛이 좋답니다.”
나는 내 눈앞에 놓인-누가 봐도 갈비찜 같은-고기를 바라보0갔다.
진하게 조린 고기는 내 작은 입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았다.
뭐야. 독 넣었나?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고기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는 미리내에게 아주 조금 감 사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고기는 고기가 아니라 종이였나?
보드라운 살에 달착지근한 양넘이 기가 막히게 배었다.
고기 냄새는 찾아볼 수도 없다. 정 말로 입 안에서 녹았다.
여기서 죽더라도 한 입은 더 먹고 가야겠는데.
그 고기가 어디 있는지 식탁에서 찾고 있을 때, 미리내가 갈색의 무 인가가 담긴 접시를 살짝 내게 밀어 주었다.
나는 다시금 슬쩍 눈치를 보며 고 기를 집었다.
내가 그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우 물 씹고 있을 때, 미리내가 물이 왔 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되었다고 했는
데. 맞나요?”
E, 예. 귀비 마마.” 급하게 삼키느라 한 번 기침을 했
다.
갑자기 내 나이는 왜 묻는 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질근질 근 씹으며 미리내를 흘끔 올려다보 았다.
그는 내가 그러고 있는 것도 눈치 재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
다.
“여덟 살•••
수심에 찬 목소리였다.
굳이 내 나이를 다시 한 번 말하 면서 수심에 찰 이유가 뭔가 싶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입꼬리가 내 려갔다.
“이제 고작, 여덟 살인데.”
나지막이 속삭인 목소리에 소름이 쫙 끼쳤다.
여덟 살인데도 황제를 어떻게 사로 잡았냐고 묻고 싶은 건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고기가 다시 올 라올 것 같았다.
“어여쁜 얼굴인데, 왜 이리 웃질
않을까•••  미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 어 내 볼을 쓸었다.
어른의 체온보다 높은 내 살갖에 평균 체온보다 낮아 서늘한 손이 닿 았다.
내가 반사적으로 부르르 떨자 미리 내가 멈칫했다.
“웃으면 더 예쁠 텐데. 응?” 그렇게 속삭이는 입술이 무섭게도 굳어 있었다.
나는 평소에 웃는 것을 씩 좋아하 지 않0갔다.
굳이 일굴 근육을 움직여 웃는 게 귀찮았던 탓이다.
내 무표정한 얼굴이 대체 어떤 심 기를 거슬렀는지는 모르지만, 웃으 라니 웃어야지.
내가 곧바로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그제야 미리내가 웃었다.
“착하다.”
“쿨럭.”
나는 결국 또다시 사레에 들렸다.
순간적으로 넘어온 양넘에 코가 찡 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마구잡이로 기침 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숨 을 꾹 눌러 참았다.
그 덕에 호흡이 일정하지 못했고, 미리내는 그것을 귀신같이 잡아내었
다.
“산아?”
•••콜록, 네.” “어디가 불편한가요? 안색이 “아뇨, 컥. 쿨리” 아, 젠장. 괜찮은 적은 다 글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리내 를 보고 애써 웃었다. “괜찮습니다, 귀비 마마 쿵쿵쿵. 드르륵, 쾅!
심려를 끼져드려 죄송합니다.
그건 내가 저 지축을 뒤흔드는 발 소리 탓에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그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미닫이문 을 열어젖혀 문틀이 반대편에 부딪 히는 것까지가 숨을 한 번 들이쉬는 잘나에 이루어졌다.
그 덕에 나와 미리내는 깜짝 놀라 문으로 고개를 돌렸고, 새빨간 머리 가락과 그 머리카락보다 더 불타오 르는 정안을 마주했다.
“미리내!”
“히끅|”
이번에는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딸 꾹질이 튀어나왔다.
정말로 놀란 탓이었다.
여고괴담도 놀랄 시간을 좀 주는 데, 점프 스케어-그러니까 갑툭튀도 정도가 있지.
몸을 퍼뜩 떨며 딸꾹질을 하는 내 게 미리내가 황급히 다가왔다. “산야. 괜찮아요?”
“히끅, 흐끅. 네, 끅. 괜, 히끅.”
딸꾹질은 숨도 못 쉬게 나왔다.
이 몸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딸꾹질 을 해 보는 나는 그게 정말 당황스 러웠다.
그런 나를 보던 가람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와 미리 내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너, 너 애한테 무슨 짓을_!” 그 소리에 미리내의 입가가 단번에 싸늘하게 굳었다.
눈을 가리지 않았다면 분명히 경멸 이 가득할 목소리로 미리내가 되까 렸다.
“눈이 똑바로 달렸다면 본인이 무 슨 짓을 했는지부터 보겠어요?”
, 히끅. 흡.”
횡격막이 사고할 수 있었다면 얼마 나 좋을까?
나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내 존 재를 상기시기는 장기를 떼어 비리 고 싶었다.
과열된 둘 사이에서 부각되고 싶지 않아.
미리내의 말에 가람이 고개를 획 내게 돌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딸꾹질을 하고 있 는 나를 본 가람의 눈이 휘둥그래졌 다.
“너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재 가 뭐 이상한 거 먹였어?” “아, 아뇨. 히끅.”
“이 아이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 쩡히 식사 중이었습니다. 그대가 교 양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지 만 않았다면 여전히 그랬겠지요.”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지금 화냈어?
미리내는 이 정도로 화내지 않았 다.
그러니까, 내가 알던 미리내는 그 했다.
뭔가 바뀌었다.
궁녀의 머리채를 잡던 미리내.
내게 협박해 두고도 상냥하게 식사 를 권하던 미리내.
가람에게 화를 내는 미리내.
사람이 죽을 때가 다 되면 성격이 바뀐다고 하던데, 그게 용에게도 해 당이 되나.
어찌 됐든 인간형이니 되지 않을 까?
또 놀란 나머지 딸꾹질도 멎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자 미리내 의 시선에 내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순간, 그의 눈썹이 애처롭 게 처진 것도 같았다.
“괜찮아요. 쉬이.” 미리내가 내게曰을 뻗었고, 내 몸 이 번쩍 들렸다.
데자뷔가 인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때에는 그저 옮기기 위해 들었던 것이고, 지금은 내가 그의 품에 안겨 등을 토닥거려 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이 놀랐군요.” 상냥한 목소리가 조곤조곤 말을 걸 었다.
나는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냥 미친 걸로 하자.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