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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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여면은 원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간식들이 한가득 자려져 있는 원탁 의 가운데에는 고구마와 감자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것이 마마께서 말씀하신 그 식 물이라고요.” 내 설명이 끝나고 여면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 뒤로 한 첫 마디가 저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인 것은 어찌 알지요?”
“토령의 은총을 받은 이에게 확인 했습니다. 노을이라는 자이니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여면은 신기함과 의심의 눈으로 나 와 탁자를 번갈아 보았다. “설령 그것이 참이라 하더라도, 마 마께서는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나는 지그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경위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의 유 무겠지요. 그리고 제 말은 진실이고 요.”
느긋한 대답에 여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미묘하게 바뀐 내 태도를 의심스러 위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걸 넘기지 않고 그녀에게 물었다.
“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제가 이것을 어찌 알0갔으며, 어째 서 이리 행동하는지에 대해서요.
여면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도 풀지 않았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나는 나를 잘 숨겨 왔다. 궁 인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생각은 했 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로만 보0갔다.
나는 사실 그게 좋았다. 아무의 눈 에도 띄지 않는 평범한 삶.
하지만 나는 힘없는 약자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얼마 전 느꼈다.
내게 무엇이라도 있었다면, 예화의 품에 안겨 기윤에게 등을 돌린 순간 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윤에게 보복이라도 하고 싶은 생 각이 없지는 않지만, 나는 그럴 능력 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한 몸 지길 힘은 가지고 싶었다.
여면은 똑똑하다.
어설프게 아이 흉내를 내며 은근슬 쩍 조종할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정말로 도움이 되는 패로 써먹으려 면, 우선 나부터 나를 드러내아 한
다.
“제안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의심해라. 더 고민하 고, 생각해.
내가 보이는 태도가 진짜라고 믿을 만큼.
“이 식물을 찾은 것을 화비 마마라 밝혀 주세요.” 내 말에 여면이 얼굴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마마께서 이것이 어느 정도의 가 지를 띄는지 모르십니까?”
“알고 있고말고요. 허나 저는 마마 께서 약조 하나만 지켜 주시면 족합
니다.”
나라의 흉년을 끝내는 공을 세우는 일이다. 그에 따른 포상과 명예도 엄 청나겠지.
이런 걸 흔쾌히 내놓겠다는 건, 내 가 받아 갈 것도 그 정도의 가치라 는 의미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소원을 들이주겠 다 하셨지요. 아직 유효한가요?” 여면의 궁으로 오는 길, 나는 한참 을 고민했다.
소원으로 월 비는 게 좋을까?
지금까지는 장난식으로 이걸 시기 니 저걸 시기니 했지만, 사실 얼마 오지 않는 기회였다.
여면이라는 좋은 패를 잘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말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게 무엇보다 도 움이 되는 좋은 부탁.
그런 걸 떠올리고 싶었지만, 범인
(凡人)인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것을 선택했다.
여면의 이능은 그 능력에 걸맞은 현혹.
정신적인 이능이니 만큼 그녀가 가 진 힘은 무력이 아닌 정보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그중에 서도 마마께서 아시는 것.”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 지만, 뭐든 없는 것보다는 나으 “그걸 모두 제게 알려 주세요.” 있는 거 다 내놔.
방긋 웃으며 말하자 여면의 일굴이 싸해졌다.
나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사 실 조금 졸아붙었다.
노을에게 얼핏 비추기만 했던 모습 을 여면에게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게 기분이 삼삼했다.
여면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녀가 하,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꼭 다른 이가 되신 것 같습니다.” “지금껏 감추었던 것뿐이지요.  “마마. 농은 그만두십시오.” “이런. 농이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심 여면 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어색하죠. 나도 그래요.
태연한 적을 하고 있지만, 지금 내 맥을 잡아 보면 미진 듯이 펄떡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드러낸 적이 없 어 사실 몹시 긴장되었다.
여면이 이를 악용할 수 있겠다는 의심 또한 있었다.
그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닌, 모두에 게 해당되는 의심이었다.
“허나 마마. 저는 마마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폐하도, 귀비 마마도 아닌 저 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십니까?” 그리고 그걸 여면 또한 알 것이다. 예상했던 질문인 덕에 동요하지 않 을 수 있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마마께서 이것을 안다 한들, 제게 위협이 될 거라 어찌 확신하시나 요?” 밝힐 만하니 밝혔다.
네가 악용하겠다 하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제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하셨으면 서, 전력이 어디까지인지는 어찌 속 단하시고요.”
그 말에 여면이 지그시 입술을 깨 물었다.
“언제까지고, 그게 무엇이든 부탁드 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위엄 잡는 건 이 정도면 됐고, 나는 그녀를 살살 구슬리기 시작했다.
“마마께는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 겠습니다. 다른 무언가를 부탁드리려 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알고 있는 것만 제게 전달해 주셔요.” 솔직히 이 정도면 나름 괜찮지 않
나.
힘겹게 다른 정보를 구해 오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갖고 있는 걸 나누는 것뿐인데.
눈을 반짝거리며 여면을 보자 그녀 가 인상을 찡그렸다.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아, 혹시 그게 문제인가.
“폐하께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 습니다.”
재빠르게 덧붙인 말에 여면이 한숨 을 다시금 푹 내쉬었다.
•••마마의 신뢰를 얻으려면 한참 먼 듯하군요.” 뜬금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가웃했 다. 갑자기 내 신뢰?
•••이 정도면 많이 믿어 준 건
데?'
“이 독특한 식물은 여면 가에서 재 배법을 찾아낸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 생각을 여면의 말이 잘랐다. 나 는 그 즉시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 의미라면••••••?
“마마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요.”
'됐다!'
1-
활짝 웃자 여면도 못 말린다-1- 궀'  픽 웃었다.
그리고도 그녀는 한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보다가, 가만히 물었다.
“그것으로 무일 하실 예정이십니
까?” 마음 놓고 차를 마시던 나는 그 질 문에 멈칫했다.
  할 거나고 묻는다면, 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빙그 레 웃었다.
“그건 말입니다.” 비밀 이야기를 하듯 말하며 가까이 오라 손짓하자 여면이 다가왔다.
나는 그 귓가에 속삭였다.
“비밀이에요.” 대답을 기대하던 여면의 얼굴이 와 작 찌그러졌다.
그음  황당하다는 눈빛에 웃을 뻔했다.
여면의 궁에서 돌아온 날 밤.
서연이 이불을 덮어 도닥이고는 일 령이는 불빛 아래에서 작게 웃었다.
“마마. 편히 주무십시오.” “응. 서연도 잘 자.” 내 대답에 서연이 웃었다.
그녀는 몇 달 전 내가 반류 때문에 익사할 뻔한 뒤로 늘 내 잠자리를 챙겼다.
서연이 나가고 난 뒤, 하나만 켜 둔 등불이 조용히 일렁였다.
불빛 탓에 희미하게 보이는 문의 그림자를 나는 가만히 주시했다.
오늘 나는 고운과 여류가 보초를 서게 하라고 때를 썼다.
평상시에는 그들이 있겠다고 해도 부득불 가서 자라고 등을 떠밀던 나 였기에 궁인들은 의아해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만류가 찾아온 그 날에도 나는 평 상시에 부리지 않던 어리광을 부렸 다.
기윤이 찾아오기도 했고, 혹시 모르 는 일이니 미리 예방하자는 마음이 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런  아니었다.
잠자리가 포근하고 따뜻하니 잠이 솔솔 왔다.
나는 가물거리는 눈을 뜨며 애써 잠을 깨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대로, 여면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위협이 전혀 되지 않을 만큼의 숨 겨 둔 전력?
'있겠나.
기껏해 봤자 그림자?
그것도 여면을 절대 죽일 수 없으 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면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례가 있으니 계속 의심되 겠지.
나는 그 허점을 파고들었고, 다행히 도 개수작은 아주 잘 먹힌 듯싶었다. 그리고, 왜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그 대답도 당연했다.
'안 할 리가.'
황제의 권력이든, 재물이든 도움받 을 게 얼마나 많은데 말을 안 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아직' 말 하지 않았기는 했으니 말이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딱 오늘 밤, 그러니까 지금 말하러 가려는 상황이니까.
어느새 잠이 싹 사라지고 웃음이
났다.
'잘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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