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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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엄마의 표정이 바뀌었다.
충격받은 표정은 여전한데, 그 결 이 다른 것으로.
아까와 그리 바뀐 것도 없는데 생 각하고 있는 게 아예 바뀌었다는 걸 알아볼 수 있다니. 대단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엄마가 내게 물었다.
뭐, 왜 만으로 그 황당함과 의아함 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기윤의 처벌이 끝난 뒤 제가 화난 일굴로 폐하를 찾았다는 것에서, 그 의 복권을 호소했다고 소문이 나겠 지요.'
내 말에 엄마가 미묘하게 서운해하 는 게 보였다.
아니, 그렇지만 저런 진지한 말에 엄마라고 하는 것도 그렇잖아.
깔끔히 무시한 나는 말을 이었다.
“아직은 그와 적을 질 때가 아닙니
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 르고요.”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할 듯싶은 데, 고인인데다 죄인에게 황궁의 입 궁 허가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 나•
“제가 찾아가겠다는 그런.”
“절대 안 된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반대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진지해 보였 다.
“무슨 생각으로 그들의 소굴에 네 발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이능이 없는 이에게 황궁 밖 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
엄하게 나를 타이르는 말이 뜬구름 잡는 말 같지 않았다.
본인 이야기이기도 하겠지.
이해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위험은 어디에도 있잖아요.”
“굳이 더 위험한 곳으로 너를 밀어 넣을 생각은 없다.” 엄마가 딱 잘라 말했다.
그 완고함이 도저히 설득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예?”
“아니 된다.” 전생에 단호박이셨나.
단호하기도 하지, 우리 엄마.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네가 공주라는 것을 알고 뉘가 해 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널리고 깔린 게 흑발의 여아인데 어찌 알겠습니까. 궁녀들도, 호위들 도 꼭 데리고 다니겠습니다.”
“허면 여란 가에서는.”
기正= 저를 해할 수 없을 테니 괜찮습니다.”
기윤에게 나는 아직 한 번도 이용 하지 못한 패였다.
심지어 황궁에 있는  내 신변을 빌미로 엄마를 협박하려 나 싶기는 했지만, 그가 남들에게 물어뜯길 빌미를 내줄 것 같지 않았
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안전하니까, 미리 통보하고 가출 좀 하겠습니다. 눈을 빛내며 엄마를 바라보자 입을 꾹 다물던 엄마가 결국 한숨을 내쉬 었다.
“내가 가지 마라 하여도 부득불 가 겠지." 어떻게 알았담.
멋쩍게 웃자 엄마가 내 머리를 형 클어트리듯 쓰다듬었다.
“이 말썽쟁이 같으니. 어미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이냐?" “말씀이야 언제나 경청하지요. 허 나 무릇 인간의 말이란 언제나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엄하다, 이 녀석아.”
양 볼이 쭉 잡아 늘려져 발음이 샜다.
나는 그 틈을 타 놔라 이놈아, 하 고 반말을 했다.
•••언제 갈 것이나?"
결국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승낙했 다.
활짝 웃는 나를 보고 그녀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막으면 더 위험한 방법으로 할 게 뻔하니, 자라리 허락하고 어찌 움직 이는지 다 보는 것이 낫지.
암요, 그럼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래서 언제 갈 것이나 묻지 않
엄마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 품에 폭 안기고는 말했다.
“지금이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들 하잖아. 화룡궁에서 돌아온 뒤 나는 동궁의 내 방에 틀어박혔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 보였다. 지금쯤 내가 하도 조용해 무례를 무릅쓰고 문을 열고 들어온 희사가 소리를 질렀겠다고, 나는 축제 중인 저잣거리를 거닐며 생각했다.
여란 가는 황궁과 그다지 멀지 않 았지만.
그래도 처음 나온 김에 나는 저잣 거리 구경을 한번 해 볼 생각이었
다.
'황궁 바깥은 처음 배'
마침 아륜 기간인 덕에 저잣거리는 떠들썩했다.
알록달록한 비단을 기워 만든 새들 이 하늘을 날고, 짚으로 만든 인형 이 저 혼자 춤을 췄다.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웃고.
음식 냄새와 기름 냄새, 분 냄새가 섞였다.
그 화려함이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황궁 안에서는 대부분 이능을 쓰지 않는다.
그 덕에 황궁은 늘 고요했고, 궁인 들 또한 불필요하게 떠들지 않았다. 하지만 황궁 밖은 달랐다.
사극에서 가끔 보았던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한 광경.
그것과 비슷하지만, 신기한 모습들 이 곳곳에 섞여 있었다.
나는 새삼스레 내가 정말 작은 세 계에 머물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능이 있는 세계는 내가 알던 세 계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이걸 오래 구경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여란 가에선 장례가 진행 중이려
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 겼다.
여란 가의 장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으리으리한 기와집 중 곡소리가 새 어 나오는 집을 찾으면 되니까.
고운과 여류에게 은신하라 명한 나 는 여란 가의 대문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장원은 넓었다. 그리고 장원 안의 대부분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
다.
괜히 누군가와 휘말리지 않고 곧바 로 기윤과 만나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익숙한 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산아.”
웃음기 어린 온화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
잠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잊을 만큼 정말 놀랐다.
어떻게 나와 있지?
내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기윤이 가만히 웃으며 팔을 벌렸다. “아비가 반갑지 않으나?”
정신을 자린 나는 후다닥 그에게 뛰어가 안겼다.
차갑고 딱딱한 몸이 나를 받았다.
“아니요! 그런데, 너무 놀라서요. 어찌 나와 계셔요?”
“안으로 들어가 말해 주는 것이 낫 겠구나. 아비는 이제 이 세상에 없 는 이이니 말이다.”
그 말에 충격받은 일굴을 하자 기 윤이 작게 웃고는 나를 내려 주있 다.
그의 손을 잡고 여란 가의 대문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자 기윤 이 내 손을 토닥였다.
여란 가 안에서는 장례가 한창이었 지만, 모두가 기윤을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뜨 0
지나 기윤의 집무실로 가기까 지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중 한 사람은 낮이 익었다. 하지 만 나는 모른 적 그를 지나쳤다.
집무실은 엄마의 집무실과 구조가 아주 비슷했다.
의자에 앉자 일마 지나지 않아 시 비가 다과상을 들여왔다.
맑은 녹색의 다완을 앞에 둔 기윤 이 입을 열었다.
'네가 아비를 찾아올 듯해 나와 있 있단다. 이리 마주치다니 신기하구 나.”
“그런가요? 아버지께서 저를 오래 기다리지 않으셨다면 좋겠는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가, 금세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버지. 괜찮으셔요?”
기윤이 그 말에 눈을 내리깔며 씁 쓸하게 웃었다.
“아비가 처벌을 받았는지 아 느나?"
“팽형 아닌가요? 솥에 삶아 죽이
무섭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고, 곧 손을 꼭 쥐며 결연하게 말했다. “살아나셔서 다행이에요.”
그 순간 기윤의 얼굴에 스치는 섬 뜩함을 나는 보았다.
'꽤 속이 뒤집힌 모양인데.'
가뜩이나 받은 수모로 속이 부글거 리는데, 거기다 대고 다행이라니.
화가 날 법한 말이긴 했다.
속으로 코웃음을 지는데, 기윤이 웃음기 걷힌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은 아니다, 산야.”
해실 웃던 나는 그 말에 깜짝 놀 란 얼굴을 했다.
부모의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아이처럼.
그런 내 반응에 기윤이 옅게 웃었
다.
“아비는 이제 살아 있되 살아 있지 못한 존재로 살아야 하니 말이다.” “하, 하지만 살아 계시잖아요.”
“팽형이란 그런 형벌이다. 폐하의 자비로 목숨만은 붙여 놓았으나, 산 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너는 아직 어려 몰랐던 모양이구나.” 모를 리가. 내가 제안한 형벌인데. “어찌 그릴 수가•••
생각만 그렇게 하며,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리며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허, 허면 이제 아버지를 다시 못 보는 건가요? 고인이시니까요?”
울먹이며 묻자 기윤이 난처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오늘처럼 사가에 방문하지 않는 한, 아비가 찾아갈 수는 없게 되었구나.” 아, 여기서 울어야 딱 맞는데. 울먹이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됐는 데, 엉엉 우는 건 어려웠다.
요즘 울 만큼 서운한 일도 통 없 어서.
그리고 다행히도, 기은 내 반응 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있 다.
“네가 추국이 끝나자마자 폐하께 달려갔다 들었다.”
그게 제법 중요한 이야기여서, 나 는 잠시 숨을 삼켰다.
이제 나에게 무일 시기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그 뒤로 나온 말은 또다시 예상외였다.
“앞으로는 아비를 위해 폐하께 간 청드리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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