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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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말에 따르면, 실바누스의 왕족은 아무 힘이 없다.
왕국의 권력이 플린트 공작에게 있는데, 굳이 서라국이 힘없는 왕 가의 손을 들어 줄 이유가 없다.
또한 서라국은 서 대륙과의 교류 가 많지 않다. 간혹 가다 서 대륙 에서 사신을 보내고, 서라국에서 하사품을 내리는 것이 교역의 다였 다.
굳이 망한다고 아쉬울 나라도 아 니니, 마력의 회복이 서라국의 힘 으로 가능하다 한들 힘을 들여 도 와줄 필요가 없었다.
단호한 말에 유리의 눈동자가 울 망해졌다.
또 울려나 싶었지만, 유리는 금세 다부지게 표정을 다잡았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법 뜻밖이다.
나는 말해 보라는 듯이 입을 다물 었다.
“공작이 판매하는 서 대륙의 물건 들 중 아편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리고 좀 더 놀랐다. 정말 예상 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 약은 고통을 잊게 하고 기분 을 고양시기지만, 중독성이 아주 강합니다. 그는 그것으로 서라국의 백성들을 중독시켜 나라를 마비시 킬 예정입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유리의 태 도였다.
'알고 있었구나.' 유리는 순진하고 선해 보였다.
왕족이 제 자리를 빼앗은 섭정에 대한 분노가 아닌, 그가 나라를 제 대로 다스리지 못함에 분노하는 모 습은 혼치 않다.
세상이 온통 선한 줄만 알고, 본 인 또한 그런 아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유리가 공작의 계획을 알 고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
박에는 제 백성들에게만 적용한 건지.
아편이 퍼진다면 서라국의 백성들 도 꽤나 많은 피해를 입을 텐데.
하지만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또한 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다.
섣불리 선한 사람이라 생각한 내 잘못이지.
사람을 무엇 하나로 특정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야.
숨을 한 번 들이쉰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것이 이 서라국과 황실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이, 일찍 약의 확산을 막지 않으 면 오래 복용한 이들은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야 그렇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대가 들린 것이 몇 가지
거기까지 알아 온 것도 대단하지 만, 그리 도움은 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첫 번째. 그 약은 공작이 아닌 여 란 가의 상단에서 판매되고 있고.” 나는 검지를 폈다. 하나.
“그리고 아편이 아닌 만병통치약 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달았으며,  그리고 하나 더, “평민에게는 판매되지 않고 있소.” 마지막으로 이것까지.
정확히는 평민들이 구매할 수 없 을 만큼 값비싼 가격이지. 하고 나 는 첨언했다.
= 0 “귀족들만을 중독시켜 그巨 용할 속셈인 것이지.”
HI-I서드 전체를 중독시기는 것은 서라국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 맞 다.
하지만 나이가 들이 오래오래 살 고 싶어 하는 꼬장꼬장한 귀족 늙 은이들이 중독되는 건 조정이나 흔 들릴 일이다.
서라국의 파멸로 이어질 길은 아니 었다.
“그리고 그대는 본인 또한 사절단 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말간 얼굴로 유리를 가리키자 유 리가 칼이라도 맞은 듯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도 위험한 약물이 퍼트려지 고 있다는 것을 입 꾹 다물고 있다 가, 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는 대가로 쓰는 것을 폐하께서 퍽도 곱게 보시겠군.”
너 그러다 반역으로 정보만 뺏기 고 사형당한다, 라는 말을 곱게 돌 려서 했다.
유리의 일굴은 최대한 상냥하게 말한 것에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을 달싹이던 유리가 간신히 목 소리를 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바누스에 이대로 마법이 사라 진다면•••
어이구, 저대로 놔뒀다가 또 울겠 다.
사실 유리는 벌써부터 저렇게 절 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나와 이야기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뜻밖의 말이었는지 유리가 당황스 러운 얼굴을 했다.
내 말에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는 당혹스럽다는 듯 잠시 고되 하다가 우물쭈물 천천히 입을 열었
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아직 이리시
“그러니 조금•••  이놈 자식이.
“지금껏 내가 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리 말하는 것이오?”
중얼거리던 유리가 일순 멈췄다. 놀란 눈동자를 마주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으로 만 보자면 충분히 믿을 만하지 않
아니, 애초에 재랑 나랑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도 않는 데.
본인은 되고 나는 안 된다니. 이래 서 에들이란.
“그러면, 도와주신다는•••
“물론 나 또한 자선사업을 할 생 각은 없소. 하지만 그대가 내게 도 움이 된다면 나 또한 그대를 도울 수 있겠지.”
유리는 태세 전환이 빨랐다.
환하게 핀 얼굴이 밝게 빛났다.
나는 그 모습에 싱긋 마주 웃어 주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대를 도우면 되겠소?”
퍽 상냥한 말이었지만, 내 생각까 지 상냥하지는 않았다. 도와줄 테니 그 마력이니 뭐니 하 는 이야기나 들어 보자.
제법 머리를 쓰지만 여전히 순진한 유리는 그저 좋아라 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를 꺼냈다.
그건 이상하게 생긴 흰색 물체였다. 단단해 보이는 물체는 길쭉했고, 부 러진 것 같은 날카로운 단면을 가지 고 있었다.
나는 유리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걸 내게 적 내미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이걸로 뭐 하라고?
내가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자 유 리가 당황했다. “해, 해 주시면•••  “무엇을 말이오?”
“마력을 담으시면 됩니다•••
눈치를 보며 하는 말에 나는 당황 스러웠다. 그게 원데?
“그걸 어찌 담소?” 내 질문에 유리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혼자 아, 하고 무언가를 수긍하고는 내게 그 물체를 내밀었
다.
“쉽게 말해, 아티팩트를 만든다 생 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절레절레.
그에 유리가 잠시 당황하더니, 제 품을 뒤져 작은 목걸이 하나를 끼 냈다.
목걸이는 영롱한 청록색의 타원형 물체를 줄에 끼운 것이었다.
“이것이 아티팩트입니다. 물의 마 법이 걸려 있는데, 이렇게•••
유리가 그 타원형 물체를 만지작 대자 허공에 동그란 물방울이 생겨 났다.
“마법을 저장하는 것입니다.”
유리가 나를 보고 생긋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저게 된다고?'
서라국의 이능은 어딘가에 머물 수 없다. 그건 상식이었다.
이능과 마법은 상통하니, 이능을 가둘 수 없다면 마법도 그래야 하 는데.
“어찌 만들었소? 이 물체는 무엇 이고, 지속 시간은?”
빠른 내 질문에 유리가 영문을 모 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서라국에는 아티팩트가 없나요?”
“이능은 어디에도 깃들지 않소. 마 법 또한 그러할 거라 생각했는
나는 말끝을 흐리며 유리의 목걸 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까 그 하안 물체도, 저 타원형 물체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힘이 것들 수 있는 특정 물체가 있는 건가?
“서 대륙에도 아티팩트가 그리 많 지는 않습니다. 아티팩트에 마법을 새길 만큼 마력이 풍부한 마법사 도, 아티팩트의 재료도 적으니까
요."
“특정한 재료를 쓰는가? 어떤 것

으,2”
“그야 용의 유해이지요.”
내 질문에 유리가 어색하게 웃으 며 대답했다.
용의 유해라고?
“서 대륙에는 마법을 만든 용의 유해가 있으니까요.” 그 설명이 낯설지가 않았다. 언젠가 들어 본 설화였다.
이능과 마법이 생겨난 설화.
반려였던 초대 황제가 죽은 뒤, 용은 그게 상심한다.
그는 반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동 대륙에 남아 있을 수 없어 동 대륙을 떠났고, 그가 간 곳이 서 대륙이며 그때부터 서 대륙에 마법이 생겨났다. 동 대륙에는 용의 의지가, 서 대 륙에는 용의 육신이.
동 대륙에 있는 용의 의지.
아마 그건••
'여의주였구나.' 용의 유해에 이능이 것들 수 있다. 대부분의, 아마도 서라국의 백성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산조각 난 여의주는 그 양이 많 지 않기에 황실에서 관리하는 가보 였다.
하지만 용의 육체는 훨씬 큰 덕에 그걸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었던 거야.
“허면 어찌 만들 수 있소?"
당장 이 방 안에 있는 내 두 개의 여의주가 떠올랐다.
그것들에 이능을 담아서, 자유자 재로 쓸 수 있다는 걸까?
“마법을 담을 물체에 그 마법을 시전하면 됩니다. 담길 만큼 강한 힘을 퍼부어야 해서 힘겹지만요.”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람 찾아가야지.' 불의 이능은 여러모로 쓸 데가 많 았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었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는데, 눈앞 에 계속 흰색 물체가 어른거렸다.
재 왜 저거 안 치우고 있어.
유리는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 라보며 그 흰색 물체를 얌전히 내 밀고 있었다.
나는 곧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맞아. 내가 이능 못 쓰는 걸 모르 겠구나.
“나는 이능을 쓸 수 없소.”
그렇게 말하자 유리가 놀란 얼굴 을 했다.
“간혹 태어나는 돌연변이오. 내 부 모의 이능 중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오.” 그 설명에 유리가 머뭇대다 내게 재자 물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이 아주 많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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