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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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저잣거리에 나가 절 귀애하 신다고 외치셔도 이보다 더 티가 나 지는 않을 겁니다.” 단정 짓는 내 말에 가람이 입을 떡 벌렸다.
“나, 난 굉장히 점잖게 널 예뻐했다 고 생각했는데.” 그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조프렸다.
어느 날, 어디에서 높이높이를 배위 왔다며 가람이 나를 허공에 번쩍 내 던졌던 기억이 났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이를 악물고 가람에게 욕 비스무리한 말을 했고, 그날 저녁에 나는 화선궁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는 가람을 발견했다.
내가 처음 가람을 보고 깔깔대고 웃었던 날이기도 했다. 이 내용의 요지는, 가람이 절대 점 잖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녀 예뻐하는 할아버지처럼 점잖
고 위엄 있게•••  가람이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 갈 소리를 했다.
나는 예의상의 웃음도 띠지 않았다.
“아니요.”
“아니 그래도,” “아뇨.”
단호한 내 말에 가람의 어깨가 푸 슈슉 가라앉았다.
풍선 놓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 다.
그래서 날 왜 예뻐하는데. 결국 대 답을 듣지 못한 나는 입술만 삐죽였 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나는 씩 귀여운 구석 없는 어린아이였다.
방실방실 웃지도 않고, 귀엽게 애교 를 떨지도 않고. 오히려 하는 짓은 애늙은이 었다.
외모가 예쁘장하긴 했지만 겨우 그 것 정도라기에는•••   -그냥?”
“그냥.” 내 생각을 뚝 끊으며 가람이 난입 했다.
말간 얼굴로 말하는 가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웃했다.
“왜 널 좋아하냐고 물었잖아.”
“아, 네.”
“생각해 봤는데, 이유는 없이.”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네, 네, 네 하고 있자니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가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욱 그랬다.
입술을 삐죽이던 나는 작게 중얼거 렸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그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가람이 물었다.
나는 입술을 한 번 꾹 물었다가 어 물이물 입을 열었다.
“그아 저는, 사랑할 만한 구석이 없 잖아요.” 가람이 입을 떡 벌렸다. 충격받은 모습이었지만 조용했기에 나는 말을 이었다.
“어린아이치고 잘 웃지도 않고, 그 렇다고 애교를 떠는 것도 아니고. 가 라앉은 얼굴이 음침하지 않나요.” 가람이 너무 심각해 보여 나는 어 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꽤 자학적으 로 들렸으려나.
하지만 사실이었다.
당장에 가람부터도 나를 처음 만났 을 때 징그럽다는 듯이 혀를 자지 않았나.
나라도 어린아이가 나처럼 얌전하 다면 정신이 문제가 있거나 귀신이 들렸을 거라 생각했을 터다.
그런 내가 뭐가 예쁘다고 저렇게 좋아할까.
소아성에자는 아닌 듯한데.
옅게 경악이 이려 있던 가람의 일 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가 샐쭉 웃었다.
뭐지, 싶던 잘나, 가람이 손을 뻗어 내 양 볼을 덥석 잡았다.
그의 엄지와 검지에 뺨을 잡힌 나 는 당황스러움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게. 이 녀석아.”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가람이 내 볼 을 쭉 잡아당겼다.
“어린애가 웃지도 않고, 이 넓은 마 당을 뛰어다니지도 않고. 내가 네 나 이 때는 본가의 연못이란 연못은 다 헤집고 다녔어. 알아?”
놓아라, 이 자식아!
나는 드물게 분개해 소리를 내질렀 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나의 존엄성 문 제였다.
팔을 바둥댔지만 가람을 떼어 내기 에 내 팔은 여전히 짧았고 힘이 없 었다.
결국 내 눈에 안광이 번뜩이자 그 제아 가람이 찔끔해 손을 놓았다.
씩씩대는 내 옆에서 슬그머니 눈치 를 보던 가람이 어느새 씩 웃었다. “그래도 귀여워. 동생 같고.” 가람이 내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빽 소리를 지르려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주 가끔.
애 같던 가람이 어른스러운 모습  보일 때가 가뭄에 공 나듯 있었다.
꽤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그 얼굴을 가만히 보던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렸 다.
의외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 못 할 것은 또 아닌 듯싶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상대가 얄밉고 예쁜 구석 하나 없어도 아끼는 것.
그건 아마도 가족이겠지.
미리내도, 예화도 가람과 같은 생각 을 하고 있다면.
날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럴 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을 때, 부루퉁 한 가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그 마마라는 호칭 말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지그래." 아니, 그건 싫어.
목소리와 대비될 만큼 초롱초롱한 가람의 눈동자를 앞에 두고도 나는 냉큼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동방예의지국 출신인데,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 를 이름으로 막 부를 수는 없지.
그런 내 대답에 뜻밖에도 가람이 슬며시 웃었다.
난 이제 가람이 웃으면 불안했다. “이름이 영 그러면, 산야.”
가람이 슬며시 내 팔을 콕콕 찔렀 다.
“오라버니라거나, 아버지라거나
이번에도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나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놈이 꿈 도 컸다.
하지만 가람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숙부?” 불쑥 튀어나온 말에 내가 멈칫했다.
그러자 가람은 신나게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숙부 어때? 가람 숙부. 카. 입에 착착 붙는다. 그치?” 그 말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내 숙부를 하겠다고••••••?
“제 아버지, 그러니까 재상, 기윤 여란과•••••• 의형제를 맺고 싶으신가
요.”
“으웩.”
내 곤혹스러운 질문의 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미리내보다 기윤을 더 싫어하는 가람이 그릴 리가.
“아니, 그. 네 아버지를 무시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어.” 혼자서 조용히 수긍하고 있는데, 가 람이 쩔쩔매며 말을 붙였다.
무슨 말을 하려나 물끄러미 보자 그가 슬쩍 눈을 피했다.
“난•••••• 내 가문이 좋아•••
아무렴 그렇고말고. 여란 가는 영 쓸만한 게 못 됐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가 람이 금세 쭈그러들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잠깐 이아기했을 뿐인데 진이 쭉 빨렸다. 이제 다 모르겠다. 그냥 방에 가서 자고 싶어.
“그래서, 누구야?” 낮잠을 잘지 말지 깊은 고찰을 하 고 있는데, 가람이 내게 물었다.
갑자기 누구나니?
고개를 가웃거리자 가람이 해사하 게 웃었다.
“누가 너한테 애교도 없는 데다,  침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고는 쥐 뿔도 없다고 했어.” 그 순간 가람의 손에서 불이 화록 타올랐다.
그 깡패 같은 모습에 과거의 친구 가 떠올랐다.
모 아이돌을 좋아하던 내 친구는, 이동 수업 시간에 누군가 자신의 책 상에 그 아이돌의 욕을 씨 둔 것을 보았다.
조금 호전적이긴 해도 참 좋은 친 구였는데, 나는 그날 인간이 짐승으 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그 친구의 눈과 지금 가람의 눈이 비슷하다.
이, 음. 그게 말이야.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피했지만, 가 람은 집요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응?”  口• 口口• 그러게.
“산야. 이름만. 아니면 인상착의만.
당과 줄게.” 필요 없다, 이 자식아.
나는 바짝 다가온 가람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냈다.
그의 얼굴을 다 가리지도 못하는 단풍잎 같은 손에도 가람은 '옥' 하 는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누군데. 아, 누군데!” 다 큰 어른이 땡깡이나 피우고, 잘 하는 짓이다.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그렇기엔 아 까 보인 가람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 다.
눈을 도르록 굴리던 나는 저 멀리 서 풀썩이는 덤불을 보았고, 그 위에 뿅 하고 튀어나와 있는 회색 머리통 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화악 피었다.
어서 와. 내 좋은 핑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 멀리 서 제 호위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이
서요.”
“야, 산야, 잠깐만 “안녕히 계세요!” 가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1- 근 뻗었으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뛰어갔다. “뛰지 마. 넘 이재” 하고 가람이 소리친 것도 구것 등으로도 안 들었다.
그가 숨어 있음이 분명한 덤불 앞 으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 운과 여류의 모습이 뿅 솟아났다. “고운. 이리 미어캣 같은 모습에 웃으며  뻗었을 때, 고운이 덤불에서 후다닥 튀어나오더니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소매와 품을 뒤지던 아이가 붓과 종이를 찾지 못했는지 손을 휙휙 휘 저었다.
정말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우선 흥분한 고운을 달랬다. “잠깐만, 천천히. 차근차근해 배” 어떻게든 읽어 볼게.
그렇게 말하자 고운은 잠시 주저하 다가 제 볼을 검지로 국 찔렀다.
고개를 갸웃하자 제 볼을 두 번 검 지로 톡톡 두드렸다.
나는 잠시 고심하다가 슬그머니 입 을 열었다.

고운의 입이 합 오므라졌다. 귓불이 새빨개진 것을 보니 꽤나 당황한 듯 싶었다.
다시 한 번 손을 파다닥 움직인 고 운이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쭉 펴 나를 가리켰다.
볼. 그리고 나.
역시 모르겠다.
“월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 단 나한테 해 볼래? 못 알아듣겠어.” 빠른 내 포기에 고운이 잠시 주저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양손을 뻗어 내 뺨을 덥석 잡았다.
다들 내 뺨에 원수를 졌나.
짜게 식은 눈을 하고도 하려나 싶어 두고 보자니, 고운이 내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옆으로 돌렸다.
또 뚫어져라 보나 싶더니, 고개가 반대쪽으로 획 돌아갔다.
“고운, 이게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으려던 나는 고운과 눈이 마주친 뒤 멈칫했다. 아이의 눈동자가 퍽 절박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가람이 내 뺨 을 잡아당겼었지.
생각해 보니 그때 작은 덤불이 격 하게 들썩였던 것도 같0갔다.
아, 세상에. 정말이지.
'귀여워.'
한 번 말해서는 성에 자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오열했다.
'귀여워!' 늘 그랬지만, 고운은 정말. 정말로 귀여웠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 귀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동생이었다면 업고 다녔을 거야.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의 앞머 리를 넘겨 주었다.
고슬고슬한 곱슬인 터라 앞머리가 자주 엉켰다.
반으로 갈라 커튼처럼 양옆으로 걷 은 나는 순한 청회색 눈동자를 마주 하고 웃었다.
이제야 생각났다.
오늘 화령궁에 다녀오고 나서 무엇 을 하려 했었는지.
“머리 자르자.” 역시 이건 아니야. 그 전부터 다섯 번 정도 더 생각해 봤지만 이건 아 니야.
나는 격한 반응을 예상하며 침을 삼켰다.
절대로 안 된다며 고운이 기겁하면 아이의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앞 머리를 자르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 있는지 삼십 분 동안 주절거 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 지 않았다. 그저 눈을 두어 번 깜빡 이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운이 제 목 위로 드리워져 있는 머리칼을 지워 냈을 때 그 뜻을 알아채고 기겁했다.
그 머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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