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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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 마호.
어울리는 듯, 이상한 듯한 이름.
성이 다들 저 모양이다 보니 성과 이름이 어울리는 경우가 잘 없기는 했다.
'본인이랑은 잘 어울리네.'
꼭 밤 같은 인간이니. “아까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훤칠하니 잘생기셨습니다.”
장난스레 던진 말에도 반야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많이 들어서 그런가. 그랬을 것 같 기는 하다.
“그렇습니까?”
“멱리를 왜 쓰셨는지 알 수 있을 만큼이요.”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잘생 겼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말 잘 생기기는 했다.
“혼인을 약조한 낭자가 없으시면 궁에 사주단자라도 넣어 보시지요. 태자 전하께서 흡족해 하실 듯합니 다.”
기왕 혼인해아 한다면 저 정도 얼 굴이면 좋겠네.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인 말을 던 졌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나는 태자가 되었고, 그 말인즉 후계의 생산 의 무가 엄마에게서 내게로 내려왔다는 의미였다.
몇 대 황제 폐하께서는 후궁을 백 넘게 두었다.
국본인 태자 저하께 비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대신들이 결혼하라고 얼마나 쪼아 대는지, 강연이 열리는 화룡궁을 하 도 피해 다녀 엄마가 섭섭해 할 정 도였다.
'원인 제공한 양반이 서운해 하니 무시했지만.'
대신들의 하소연 내용에는 엄마가 황태자 시절 비를 몇 두었다는 이아 기도 있다고.
하여튼 간에, 그들의 상소를 마냥 무시할 수 있지는 않0갔다. 태자인 내가 황실의 명맥을 이어 가아 하는 것은 맞으니까.
그렇지만 엄마도, 나도 내가 그저 후계의 생산만을 위해 결혼하는 것 을 원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독신으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타협점 을 마련했다.
당장 간택령을 내려 태자비를 뽑지 는 않지만, 자율적으로 사주단자를 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자율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  0 양이 들어오고, 대신들이 그 중 태자비를 뽑으시라 시끄럽기는 하지 마••
'당장은 숨 좀 돌렸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종묘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귓가를 쟁쟁 울리던 목소리가 다시 금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인상을 찌 푸렸다.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라, 대신들이 주도한 '우 연한 만법을 황궁 안에서 몇 번 가 져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음. 다들 잘생기기는 했었 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딱 얼굴을 보자마자 와. 잘생겼다. 소리가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야는 몹시 합격점 이었다.
'살수인 줄 알았을 때에도 잘생겼 다고 생각했었지.'
남편 일굴 뜯어먹고 살 건 아니지 만, 내가 돈도 권력도 있으니 얼굴 만 예쁜 남편도 상관은 없지 않으려 나?
그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싱긋 웃 자 반야도 가만히 웃었다. “그릴까요.” 와, 목소리 좋아. 옅은 웃음기 어린 낮은 음성이 잔 간하게 퍼졌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간간히 입 을 여는 게 감질날 만큼 좋은 목소 리였다.
지구에 태어났으면 성우 해도 되겠 다.
잠시 멍하니 생각하던 나는 큼, 하 고 헛기침을 했다.
•••왜 이래.
황궁에만 가도 널린 게 잘생긴 사 람인데.
  새삼 잘생겼다고 혹하는지.
나는 스스로 자중하자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농을 받아 주실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그리 과묵하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말 한마디에 일굴을 붉힐 나이는 아닌지라.”
반야가 예의 그 좋은 목소리로 대 답했다. 그 말이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 뒤로 침묵이 찾아왔다. 그게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굳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도에는 무슨 연유로 오셨나요?” 내 질문에 반야가 설핏 웃었다.
몹시 딱딱한 인상이었는데, 웃으니 얼굴이 사르르 펴졌다.
“잠시 떠나 있었을 뿐, 본래 이곳 에 있었습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마호 가의 가솔들이 수도에 머물렀 있나?
정계에 참여하는 몇몇 가문들은 수 도에 자택을 두는 경우가 있지만, 마호 가의 경우에는 비연 지역에만 머문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으 니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수도에 머문다면 또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종종 뵐 수 있을까요?” “연이 닿는다면 가능하겠지요.”
슬쩍 떠본 말에 모호한 대답이 돌 아왔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금세 뵈겠군요.”
다음번에는 이렇게나 스스럼없이 볼 수는 없겠지만, 그때 가서 낯가 리지 마세요.
나는 그 말을 꿀꺽 삼키고는 반야 의 손에서 먹리를 빼앗아 다시 그에 게 씌워 주었다.
괜히 금위군을 괴롭힐 수는 없으니 얼른 들어가아 했다.
“이제 돌아가야 해서요. 잠시지만 즐거웠어요.”
첫 만남도 엉망진창에 말도 거의 나만 했지만 제법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네. '잘생겨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다. 휘장 안의 얼굴을 알 수 없었지만 퍽 부드러울 것이라 생각하면서. “정말로, 또 봐요.”
아쉬움에 괜히 한 마디를 더 덧붙 인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산아는 한 번 빙긋 웃어 주고는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았다.
점점 멀어진 그녀가 인파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고운은 산야의 뒷모  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막 속에서 고운은 고개를 떨궜 다. 당호로의 단맛이 진득하게 혀끝 에 남아 있었다.
'고았 것. 지/ ökH/ö//8/xi 단물만 필戶0쎠/고 가는구나. ' 그의 아버지. 마호 가의 선대 가주가 죽기 전 뱉은 유언.
산아와 이야기할 때에는 잠잠하던 목소리가 다시금 고운의 귓가에 속 살거렸다.
고운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며 묵묵 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마 걷지 않아 왁자지껄한 저잣거 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1년 전, 산야와 황궁을 나섰을 때 와 같은 풍경.
고운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아비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괴팍한 이였다.
하여 제가 학대했던 자식의 귀환에 도 그리 놀라지 않았고, 낄낄 웃으 며 아들을 맞았다.
'나/ 너를 다져 꼬고 심어도 황-구이/ 꼭꼭 줌이 있이 찼지 못했거늘, 무 슨 가람이 불었기에 지/ 발로 돌아왔 느냐?' 큰 기, 자색 머리카락.
자신을 덮는 그림자와 웃고 있는 얼굴.
뼛속에 각인된 고통이 익숙하게 고 개를 들었으나, 고운은 애써 다른 이를 떠올렸다.
산아의 눈동자 색 또한 자색이다.
호의가 가득 담긴 따스한 눈빛.
첫 만남에서도 그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등을 다스리는 껍을 가르쳐 주 집시오.
떨리는 목소리에 그가 다시금 웃었
다.
'의. 자기고 심은 이라도 생裂너
고운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알 만하다는 듯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아B,/가 된 도리로 공-당 너를 도와
'
하겠지.
한동안 멈취 두었던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덧붙인 말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났 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고운은 어릴 적의 그 참상을 반복하지는 않 았다.
이능의 통제를 위해 불가피한 고통 은 있었으나, 그의 아비는 고운을 제 입맛대로 굴리려는 것을 번번이 실패했다.
태연하던 그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 을 가만히 관망하며, 고운은 황궁을 떠날 때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황제는 황송하게도 그의 마중 행렬 에 참가했다.
산야를 위해서였지만, 그녀는 착잡 한 눈으로 고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운이 황궁을 떠나기 전,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쓸고는 작게 중얼거 렸다.
무사히 다녀오거라, 하고.
모셔야 할 상전이었던 예화와 고운 은 그다지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오묘했던 목소리는 종종 아비의 패악을 뚫고 귓가에 맴돌고 는 했다.
마호 가의 가주는 고운을 더 이상 어릴 적처럼 부릴 수 없다는 것을 못 견더 했지만, 그럼에도 충실히 고운을 도왔다. 이능을 개방하고, 그 결을 따라 통 제권을 쥐는 것.
말로 서술한다면 이리도 간단할 것 을 해내기 위해 고운은 11년이라는 세월을 꼬박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끝났을 때, 마호 가의 선대 가주는 그 인생에 걸맞은 최후를 맞았다.
같은 이능이라 할지라도 제가 운용 하는 것이 아닌 이능은 타격을 준 다.
과도한 양의 맹독에 노출된 탓에 자자 몸이 녹아 갔고, 제가 죽어 가 는 순간까지도 웃으며 고운을 조롱 하다가 단말마를 내지르고는 세상을 떠났다.
고운은 그의 죽음에 을지도, 웃지 도 않0갔다.
기묘한 장례가 지러졌고, 이능을 다를 수 있게 된 고운보다 더 강한 이가 없었기에 고운이 가주직을 물 려받게 되었다.
그 뒤 고운은 지체 없이 비연을 떠났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오랫동안 교류할 이가 없어 딱딱하 게 굳어진 얼굴 위로 자그맣게 미소 가 떠올랐다.
그는 아주 간만에 풋내기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고운은 바위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았고, 그에 자신이 어느 정도 비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주에 한 번 도착하는 서신 은 11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어서, 고운은 혹여라도 환영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산야에게는 부러 알리지 않았다.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랬던 그였으니, 저잣거리에서 산 야를 마주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멀리서만 지켜보려 했지만, 산아가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이 휘청거렸 다.
고운은 산아가 넘어지기 전 그 뒤 에 섰고, 곧이어 놀란 보랏빛 눈동 자와 눈이 마주쳤다.
시끄러운 소음과 인파 속에서도 그 순간만은 꼭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이 날 이렇게 만날 것이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고운은 답지 않은 당만적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찰나는 오 래 가지 못했다.
•••이리 도와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산야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그럴 수 있 겠지.
하지만 그래도 내심 서운했음을 고 운은 이제야 인정했다. 즉석에서 지어낸, 반야라는 되도 않는 가명을 댄 것도.
괜스레 쌀쌀맞게 산야를 대한 것도 모두 그 이유였다.
그래도 또 만나자며 웃는 산야의 얼굴이 화사해서, 고운은 입꼬리를 가만히 올렸다.
이제 정말로 돌아갈 시간이다.
본래 그가 있었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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