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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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등지?”
의아한 내 물음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 대륙에는 용의 영혼이, 서 대 륙에는 육신이. 이 말은 알고 계시 죠?”
당연히 알고 있다. 이능과 마법의 시작이 된 전설이니까.
“용께서 서 대륙에 오신 뒤 등지를 튼 동굴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어?”
“서라국과 교류가 많이 없었으니 모르셨겠네요.”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 였다.
“저도 마력 고갈 현상이 나타났을 때 간신히 들어가 보았습니다. 서 대륙인들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 지만, 전하께는 또 어떨지 몰라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가웃했다. “어째서?” “용의 후손이시잖아요?” 내가?
나도 몰랐던 내 핏줄의 비밀인가. 나는 당황스러웠다.
“서라국의 초대 황제께서는 용의 반려셨으니까요."
아, 하긴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을 테니.
덧붙인 말에 나는 그제야 납득했
다. 그리고 조금 양심이 찔렸다.
•••난 아닌데.'
유리는 11년 전 용케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듣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엄마가 궁인들 입단 속을 철저히 시켰던지.
그래도 초대 황제의 피가 황실 안 에만 돌지는 않았을 테니, 나에게도 한두 방울 정도는 용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그 동굴을 한 번 찾아가 보 는 것이 좋겠구나.”
나는 생각을 끝마치고 그렇게 말했 다.
오래전, 기윤을 상대하느라 절박했 던 나는 용을 불러 냈지만 그 이후 로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다시 용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됐을 때 여의주가 매개체였으니, 용의 등지에서도 가 능하지 않을까. 나는 당장 가 볼 생각으로 자리에 서 일어났다.
[용의 등지로.]
나조차도 낯선 독특한 목소리. 언 령을 사용했지만, 나는 다시 응접실 안에서 눈을 떴다.
휘둥그레진 유리와 그 옆에 있는 여인의 눈빛을 받으며 나는 조금 머 쓱해졌다.
아, 안 되네.
“그 동굴은 어디에 있니?”
아무래도 직접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용의 등지를 지키고 있는 가문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내 질문에 유리가 난처하다 는 듯 웃었다. 말끝을 흐리는 게 영 좋지 않은 것 같9갔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그 이유 를 알0갔다.
“플린트 공작가입니다.” 플린트. 익숙한 이름이다.
11년 전 서라국에 마약 유통으로 목 잘려 죽은 사신의 성이 플린트였 으니까.
“용의 등지가 플린트 공작령에 있 고, 그 탓에 그들이 용의 유해를 포 함한 그 모든 것들을 독점하고 있습 니다. 마력이 흔들렸던 틈을 타 그 것들로 재화와 권력을 독점했고요.” “그게 꽤 오래전 이야기 아니니?”
머리 빈 그 양반이 서라국에 왔던 게 11년 전인데.
“부끄럽게도, 아직••  “마력이 모두 복구되있다며.”
“그렇지만, 복구되기 전 내로라하 는 마법사들이 모두 플린트 공작가 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양질의 지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아직까지 도 만족하고 있고요.” 머리가 완전히 빈 것은 그때 온 공작이 다였던 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허가를 받아야만 용의 등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 “그들은 자신들의 선대 가주가 서 라국에서 사형당한 것을 알 테
아, 망했네.
왜 모든 귀족들이 내게 그리도 날 카로운 시선을 보냈는지 이제 이해 가 갔다. 아직 유리가 권력을 제대로 잡지 못한 거야.
“죄송합니다.” 유리가 붉어진 얼굴로 내게 더듬더 듬 사과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 있다.
“저, 레이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여인에 게 말을 걸자 그녀가 의외라는 얼굴 을 했다.
내가 이 호칭으로 자신을 부를 줄 몰랐던 모양이다.
“편하게 메이리라고 불러 주세요.”
“고마워요, 메이리. 죄송하지만 국 왕 전하의 자세를 바르게 해 주시겠 어요? 제가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네요.” 그 말에 메어리가 생긋 웃었다. 그 리고 곧바로 유리의 등과 어깨에 손 을 대 그의 자세를 쫙 폈다.
, 역시 친근한 것 같아 부탁했더 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나는 흐뭇함을 감추며 얼떨떨한 일 굴의 유리에게 말했다.
“어깨 펴고, 고개 들이. 한 나라의 왕이 되어서 함부로 사과하지 마.”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 녀석 갈 길 이 멀다.
얘 부모님도 왕과 왕비였을 텐데, 애한테 가르진 건지.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최대 한 도와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저놈이.
도끼눈을 뜨자 슬그머니 움츠러들 려던 유리의 어깨가 다시 펴졌다.
옳지, 잘했네.
“방법은 내가 찾아볼게. 도움이 필 요하면 말해도 괜찮을까?”
“그럼요!”
유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씩 씩한 대답에 나는 빙긋 웃어 주있 다.
찻잔을 들려 손을 움직이자 소매에 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나는 그제야 미처 전해 주지 못한 서신을 떠올렸다.
꽤 개인적인 것 같던데.
내게도 열어 보지 말아 달라고 신 신당부를 했었고.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들있 다.
“메이리. 미안하지만 잠시만 나가 있어 줄래요? 고운, 너도.” 고운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 다.
심기가 불편한 축에 속하는 의아함 이었다.
“어머, 왜 그러시나요?” 메어리는 아예 대놓고 물어보았다.
대답할 말이 없어 난처했다.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나는 그저 웃었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요.”
미혼의 남녀가 한 방에 단둘이만 있는 것은 좋지 않지만,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알려지지 않도록 입단속 좀 부탁 해요.”
“그럼요. 염려 마세요.”
메어리는 친절하게 웃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고운도 짧게 대답하고는 그녀를 따 랐다.
그들이 물러난 뒤, 나는 소매에서 서신을 꺼냈다.
“그게 무엇인가요?”
“음, 너 서린이라는 아이를 기억하
동문서답에 유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조금 발음이 어려운 이름이기는 하
지.
“어쩌면 아연일 수도 있겠구나.”
정답이었는지 유리의 눈이 휘둥그 레졌다.
“아, 알아요.” 조급한 반응이 영 이상했다.
꼭 아연 같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 며 착실히 편지 배달부의 임무를 수 행했다.
“서 대륙에 간다니 그 아이가 네게 전해 달라더구나. 슈슈라는 이에게 전해 달라던데, 그를 아니?”
서신을 두 손으로 받은 유리가 그 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서신 뒤로 빼꼼 드러난 흰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유리?”
“네? 네, 네.” 이상함에 묻자 유리가 횡설수설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0  0 0 0'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너 울어?” “아, 안 울어요.” 우는 것 같은데.
나는 의심스럽게 유리를 바라보0갔 지만, 유리는 일마 지나지 않아 서 신을 내리고 활짝 웃어 보였다.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환한 얼굴이 유독 반짝거렸다. 보석 가루를 뿌려 발라도 저만큼 빛 나지는 않을 것 같0갔다.
둘이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내 의심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 니면 그만큼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있었는지.
유리가 안절부절못했다.
“어서 가 보렴. 그 슈슈라는 사람 에게 서신을 전해 줘야 하지 않겠 “아, 네!"
유리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국국 웃으며 유리를 배웅했 다.
용케도 뛰지 않고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유리의 뒷모습을 한가롭게 구 경하는데, 고운이 나를 빤히 바라보 았다.
“왜 그래?”
시선을 돌리니 눈을 맞춰 온다. 이 른이 된 고운은 도통 눈을 피할 생 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의외네. 네가 이런 걸 다 궁금해 하고.”
고운은 제법 무심한 성격이어서, 웬만해서는 무언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말 그 말 자체의 의미였는데, 고 운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송구합니다.”
“아나, 아나. 탓하려는 의미가 아니 있어.” 황급치 소1-己으내저은 나는 잠시 생

각에 잠겼다.
이걸 말해 줘도 괜찮을까?
별 이야기 아니기는 했지만, 말하 다 보면 내 짐작이 들어갈 것 같아 서 말이지.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기도 했고•••
'나중에 물어보고 말해 줘야겠다.
“미안해. 지금 말해 주기는 조금 어렵네.”
“아닙니다.”
고운이 가법게 고개를 내저으며 대 답했다. 나는 빙긋 웃고는 고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라. 나중에 나랑 수다 떨자.
방으로 돌아간 뒤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방 문을 노크했다. “고운이니?”
“전하. 들어가겠습니다.”
물음에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답했 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수수한 드레스 를 입은 여자들이 들어왔다.
“저희는 전하께서 실바누스에 계실 동안 전하를 모실 시녀입니다.”
은발을 들어 올린 여인이 그렇게 말했다. 들어온 시녀는 셋이었다. 은발, 금 발, 적발.
“저는 미아입니다.” “세레나입니다.”
“힐데입니다.”
은발이 힐데, 금발이 세레나, 적발 01 미 0
왕궁의 시녀이니 모두 귀족이려나. “앞으로 잘 부탁해요.”
하대와 존대 중 고민했지만, 나는 존대를 택했다.
굳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쓸 것이 있나. 존대할 수 있다면 존 대가 편했다.
내 대답에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실이 분주해졌 다.
함과 화장품들을 나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녀들이 드레스를 들 고 들어왔다. 나와 잘 어울릴 듯한 연보라색의 드레스였다.
금사와 은사로 화려하게 레이스에 수를 놓고, 보석들도 자잘하게 박혀 있었다.
“오늘 저녁에 있을 파티에 입고 가 실 드레스입니다.”
내가 그걸 빤히 보고 있자 힐데가 설명했다.
“혹 마음에 드시지 않으시나요?”
미묘한 그 말투에 나는 고개를 내 저었다.
드레스는 예뻤지만,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저 옷을 입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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