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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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몸이 개운한 듯도 하고, 불편한 듯도 했다. 나=1- -1- 0亡丁어 번 깜 빡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자리기도 전에 눈앞에 보 인 것은 익숙한 광경이었다.
짙은 색의 탁자와 의자. 네모난 함이 놓여 있는 장(欌)과 조금 열 린 나무 창틀.
빈말로도 서 대륙이라 말할 수 없는, 서라국의 방식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낮이 익었다. 아 주 오래전에 와 보았던 것 같은
두리번거리던 나는 일순 몸을 굳 혔다.
아, 맞아. 생각났다. '여기, 화서궁이잖아.' 혼란스러웠다.
여긴 용의 기억 속 아니었나? 그 런데 왜 화서궁이지?
두리번거리던 나는 내 몸에 덮여 있는 이불에 손을 댔다. 작은 손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이상했다.
용의 기억에서 나는 용의 모습。  볼 수 있었다.
가장 처음 보0갔던 장면에선 용의 시점에서 황제를 보기는 했었는
아냐. 그래도 그때와 다르다.
그 때엔 정말로 누군가의 기억을 엿본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현실 같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있 다. 작은 손이 꾹 주먹을 쥐었다.
나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낸 나 는 그 소리에 더 놀랐다.
움직일 수가 있어?
말도 할 수 있고?
나는 즉시 침상에서 내려왔다. 침 상이 조금 높아 뛰어내리듯 내려 와야 했다. 원래 화서궁의 침상이 이렇게 높 았던가?
잠시 의아했지만, 나는 금세 신경 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면경은 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장도 동궁에 있는 것보다 커서 굳 이 면경을 탁자로 가져오지 않더 라도 곧바로 내 얼굴이 보였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  릿한 면경을 소매로 닦던 나는  러난 내 얼굴에 그대로 굳었다.
면경에 비진 얼굴은 방금 전 구 슬에서 보았던 아이의 얼굴과 똑 같았다.
흑발과 자안을 가진, 앳되고 우울 해 보이는 여자아이.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
나는 그제야 왜 장이 내 기억보 다 컸는지, 침상이 높았는지 이해 했다.
가구가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작 아진 거야.
서라국으로 돌아온 건가?
그럼 왜 동궁이 아니라 화서궁에 있지?
아니, 무엇보다 왜 어려진 거야? 나는 황망히 방을 둘러보았다. 화 서궁은 내 기억과 비슷했지만, 자 세히 뜯어보면 달랐다.
장 위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면 경은 닦지 않아 흐려졌고, 탁자 위 는 휑했다. 단순히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 지는 않았다.
어릴 적 화서궁에서 지냈을 때, 내 궁녀들은 하루가 멀다고 방을 청소 하고 매일 다른 꽃이나 과일로 탁자 를 장식해 주었다.
하지만 이곳은 꼭, 방치된 거 같잖 그리고 그때, 문밖에서 조용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유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그런 데 동시에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것을 의아해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무심한 낮의 궁녀 하 나가 들어왔다.
그 궁녀는 서연도, 희사도, 동궁 에 일하는 그 누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궁을 관리하는 궁녀였 다. 그 주제에 방 안을 이 꼴로 방 치한 것이다.
정말 눈이 뒤집히듯이,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면경이 왜 저 모양이야?”
“면경이 어찌 저리 흐리냔 말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였다. 그게 분해 씩씩대는데, 궁녀가 고개를 숙였
다.
“송구합니다, 마마.”
익숙한 듯 덤덤하고 무심한 태도였
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획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엇이라 도 던지고 싶었지만 미리 치우대 둔 듯 아무것도 없었다.
화병이라도 있다면 내던졌을 텐 데. 아니, 당장 저 면경이라도 던 지고 싶은데 너무 멀었다. 나는 발 을 쾅 굴렀다.
'네가 지금 감히 나를 능멸에”
비명 같은 고함이 조용한 방 안 을 울렸다. 궁녀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마마.” 저 인형 같은 대답!
왜 들어 주지 않는 거야. 상전인 내가 소리를 치는데, 건방진 것!
분에 못 이겨 씨근덕댔지만 더 소리를 친다 해도 저 궁녀가 들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당장 나가!”
막무가내로 악을 쓰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궁녀는 한 번 고개를 꾸 먹하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나섰다.
혼자 남아 씩씩대던 나는 자자 아연해졌다.
'내가 한 거야•••  나는 웬만해서는 아랫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조용히 타일렀지, 소리를 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방금 일은 그리 화낼 만한 것도 아니었잖아. 아냐. 괘씸한 일이었어. 감히 제 일을 소홀히 한 거잖아.

순간적으로 는 생각이 섬뜩했다. 내 것이 아닌 생각들이 꼬여 든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방금의 분노는 진심이었다.
이 기억은 이상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게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돌리자 거울 속의 나와  1- 1- 01 又}丁졌다.
현실의 나보다 훨씬 어린,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린 나.
아니, 저 아이가 내가 맞나?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순 식간에 두려위졌다.
거울 속의 그 아이가 내 표정을 따라 한다.
“년 누구야?”
여전히 앳된 목소리가 거울 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고개를 가웃한
다.
[기억이 안 나니?]
기이한 모습이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도리어 한 발짝 다가가 거 을에 손을 뻗었다.
[년 산아야.]
점점 머릿속이 흐려진다. 어디에 서 울리는지 모르는 목소리들.
[열두 살. 계집아이. 아비는 여란 가의 가주.] 거울에 손끝이 닿았다. 낯선 얼굴 이 지위진다.
[황제의 후궁.]
아, 그랬지.
침상이 자가워. 왜 이리 딱딱하지? 편한 자리를 찾으려 뒤척이던 나 는 결국 눈을 떴다. 새하안 금침이 아닌 짙은 색의 바닥이 보였다.
바닥에서 자고 있었던 거야?
나는 화드득 놀라 일어나 옷매무 새를 정돈했다.
오윤이 깨우러 올 텐데, 아랫것에 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내가 잠결에 떨어졌는지 이불이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이부자리를 정돈하고는 서둘러 들어가 누웠다. 벌써 해가 방 안에 길게 들어와 있었다. 날이 밝았으니 오윤이 금세 들이올 거야.
잠은 하나도 오지 않았지만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윤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씩씩대며 이부자리를 박자고 나왔다.
문을 광 열어젖히자 오윤이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맹한 얼굴이었다.
“어찌 깨우질 않느냐. 오늘 아버 지께서 오신다 하셨는데, 늦으면 어찌하려고!” 비리 소리치자 오윤이 의아한 일 굴을 했다.
“한 시진(2시간) 전에 기침하시 라 말씀드렸사옵니다.”
“허면 내가 네가 깨운 것을 기억 도 못 하는 천치라는 것이나?”
상전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젠 하다 하다 깨우는 것도 하질 못해서!
화를 내는 것도 지친다. 하지만 저 무능한 것들을 그냥 놔두면 이 마저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일갈에 오윤은 맹하니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마마.” 매일, 매일 저 대답!
익숙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속 이 답답해서 더 화를 내고 싶었다. 겉으로만 고개를 숙일 뿐, 너희는 늘 나를 무시하지. 다른 후궁들에 게는 이러지 않을 텐데, 내게만.
하지만 약아빠진 오윤은 이미 내 게 사죄했다.
그녀를 벌한다면 나는 죄 없는 아랫것을 괴롭히는 후궁이 될 것 이고, 폐하께서도 밉게 보시겠지.
결국 나는 획 몸을 돌렸다. “되었다. 내 단장이나 돕거라.”
오윤이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는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단장은 길지 않았고, 오윤이 방을 나서 나는 방 안에 홀로 남았다.
유난히 방이 넓게 느껴졌다. 장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려던 나는 누군 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할 것이 없어 손끝을 만지작대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무엇이라도 일거리를 주시면 좋을 텐데.'
본래 후궁들은 폐하와 함께 정사 를 맡아 처리하지만, 나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더 배울 필요도 없을 만큼 영특 하다 하셨으면서, 이씨 정사는 맡 기지 않으실까.
'허면 에동이라도 보내 주시지. 폐하도 참 무심하세' 나도 모르게 폐하를 원망했던 나 는 깜짝 놀라 고개를 내저었다. 폐하를 원망해서는 안 돼. 내게 누구보다 자애로우신 분인데.
내가 이능이 없다는 걸 아시고도 내치지 않으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후궁이라도 종종 찾아 말동 무가 되어 주시잖아. 그저 너무 바빠서 더 신경 쓰실 수 없을 뿐이신 거야.
얼마 전 화서궁에 잠시 들르셨던 폐하가 떠올랐다.
궁녀들이 날 멸시한다는 호소에 단단히 경을 지겠노라 약조하셨는
데.
그 정도로는 안 돼. 교체해 달라 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인력이 없다 하셨지.
바쁘신 분을 귀찮게 하는 걸까? 그건 싫은데.
나는 탁자에 뺨을 기대고 엎드렸 다. 방 안은 고요했다. 늘 이어지 던 고요였다.
좀 더 자주 찾아와 주시면 좋겠 어.
이곳은 너무 조용하고, 방 밖으로 나서면 모두 날 멸시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지. 폐하께서는 나 말고도 다른 후궁들이 많으니
까.
나보다 훨씬 크고, 더 아름다운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입 술을 국 물었다. 그것들만 없으면 폐하께서 날 더 귀애해 주실 텐데.
나는 그들이 싫었다. 나를 하잖은 것 보듯 내려다보는 시선도 싫었고, 그 주제에 폐하께만 알랑대는 것도 꼴사나웠다.
개중 몇몇은 유독 나를 괴롭히기 도 해서, 이제 나는 그들을 마주치 는 것도 진저리졌다.
'그래도 오늘은 아버지께서 오실 테니까.
일마 전, 반류가 나를 거의 죽일 뻔했다고 말씀드려야지.
폐하께서 곧바로 그를 폐위하셨 지만, 수원 가는 여전히 쟁쟁하니
까.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그 가문도 벌해 주실 거야.
그리고 그런 내 기대를 보상하듯 이, 오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여란의 가주께서 오셨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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