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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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는 본래 잘 우는 편이 아니었 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눈물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어릴 적보다 밝아졌다고는 하더라 도 천성은 무던한 쪽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산아의 눈물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느냐는 산야의 질문 뒤로 방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 았다.
고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산 아의 눈물을 닦았다.
소매로 찍어 낼 생각도 없이 무작 정 닿는 투박한 손끝을 느끼며 산아 는 말했다.
“대답 안 해?”
길거리 왈패 같은 질문에 고운이 멈칫했다. 산야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아닐 거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고 운에게 확답을 듣는 건 또 다른 문 제다.
빨리 그렇다고 해. 그렇지만 만에 하나 혹시 아니라
•••펠 어쩌겠어.
이미 마음이 떠났다는데 뭘 어쩌겠 나?
그렇지만 홀로 남으면 아주 쓸쓸해 질 것 같다고 산야는 생각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분명 산야의 편을 들어 줄 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산아는 다시 울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고운을 보았다.
“아뇨.”
그리고 역시나, 고운이 예상했던 답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안도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작게 숨을 내쉰 산아 가 재차 물었다.
“그럼 왜 그랬던 거야?”
“자꾸 피하고, 숨기는 것도 많았잖
아.”
이건 여전히 말하기 어려운 걸까?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니 산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조금 누그러진 산아의 목소 리에도 고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얼굴을 보던 산야는 의아해졌다. “익숙하면, 무용해지니••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가는 고운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지만, 귀에서 부터 시작된 붉은 기가 어느새 그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산아는 여류와 똑같은 반응을 했 다. 그녀는 그나마 여류보다는 그 모습을 여러 번 보았지만, 드문 것 은 마찬가지였다. '얼굴 빨개진 거야?' 고운이?
“변화를 꾀했을 뿐입니다.”
그의 설명은 직접적이고 간단했다.
좋게 말하자면 그랬고, 나쁘게 말하 자면 설명이 부족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데, 동시에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제게 질리십니까?” 산아가 열심히 머릿속 조각들을 맞 추고 있을 때, 고운이 밑도 끝도 없 이 물었다.
이게 뭐람•••  “그러니까, 고운.” “너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둘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연인이었 다.
정말이지 완벽한,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둘이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 고운의 거리를 둔 것 때문인데, 갑자기 질 리나니?
산야의 말에 고운이 이를 꽉 무는 것이 보였다.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기분을 표현하는 건 고운이 가진 대단한 능 력이다.
그리고 지금의 표정은 억울하고 서 운한 것임이 산야에게 보였다. “노부부 같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산야는 그제야 이 모든 일의 시초 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 빠졌던 조각이 채워지며 전체의 그림이 보였다.
평범한 날의 웃음기 어린 농담.
그 말을 들은 고운의 마음은 저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도자 기를 깬 궁녀의 마음에 가까웠던 모 양이다.
화를 내려 꽉 다물려 있던 산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녀는 눈썹 을 팔(八)자로 내리며 참아 보려 했 지만,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큰 소리는 없지만 단번에 온 얼굴 에 미소가 만개했다.
“그게 마음에 걸렸어?" 웃음을 조롱으로 받아들인 고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산아의 웃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래서 그랬구나.' 산야는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 있던 것이 고운에게는 설레지 않는 다에 초점이 맞취진 것이다.
“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에 침의 입고 들어왔던 게 그 이유였어?” 고운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난처해 보였지만 산아는 질문 을 멈출 수 없었다.
“하면 아침부터 저잣거리에 나간 이유는? 그 책은 무엇인데?”
“남녀의 교제에 대해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한데 황궁의 장서관에는 없어 부득의하게 출궁하였습니다.”
산야는 멈춘 웃음이 다시 터지려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세상에, 무슨 대단한 책인 줄 알았 더니 연애 서적이었다니.
“가장 처음에 바뀐 것 없나고 물은 건 뭐였어?”
•••갓 들어온 궁녀들은 조금 더 개방적일 듯하여 그들에게 물었습니
다. 그랬더니 연지와 분을 발라 주 더군요.”
결국 산야는 참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접어 한껏 웃었다.
그 답변이 우스워서는 아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놀리고 싶 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웃음이 났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이 이렇게나 예뻐 보일 수가 있는 걸까?
분명 쌓인 응어리들이 많았는데, 그저 고운이 내어놓는 모든 이유들 이 사랑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고운이 즐거우면 됐다 는 얼굴을 하고 있기에, 산아는 만 개한 웃음을 조금 걷고 설명했다.
“너, 네가 설명한 것이 사사로운 이유였다면 크게 화를 내려 했었 어.”
“그동안 정말 불안했단 말이야. 늘 상 있던 네가 없으니 허전하고, 무 슨 일이 있나 걱정되고, 마음이 떠 났나 불안한데 년 설명은커녕 말 한 마디도 제대로 안 섞어 주고.”

“해명하지 않아도 돼. 그랬는데, 방 금 네 말로 다 풀렸어.”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 려 했는데, 사랑이란 신기한 일이다. 고작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속 절없이 휘둘리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니.
“년 나를 자꾸만 바보로 만들어. 네가 없을 때 나 혼자 했던 생각들 을 네가 듣는다면 날 바보 취급할
걸?”
“그릴 일은 없습니다.” 고운의 단호한 선언에 산야가 또 웃었다.
그래, 이러니까.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속절없이 모두 내주지 않고는 이려 운 사람이다.
네가 편안하기만 해서, 그러다 어  날 질려서 널 떠날까 겁이 났 고운이 산아의 질문에 묵묵히 고개 를 끄덕인다. 산아는 조금 나쁘게도 그 질문이 기뻤다.
너도 나와 똑같이 불안해하는구나.
너만 앞서가거나 뒤처지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거지?
그리고 동시에, 산아는 그걸 어떻 게 해소할 수 있는지도 잘 알았다. “널 정말 좋아해. 알고 있어?” 심장께가 간질간질했다. 말들이 목 끝까지 자을라서 뱉지 않고는 못 배 기겠다.
산아는 과거의 자신 또한 바보였다 는 것을 인정했다.
이런 감정이 설렘이 아닐 수가 있 을까?
떠올려 보면 산야는 고운의 마음0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가 불안해하 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나 쉬운 일인데, 좀 더 일찍 말해줄걸.
“불안하다면 내게 말해 줘. 궁녀나 책에게 묻지 않아도 돼.” 산아는 자리에서 일이나 고운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발긋해진 눈가를 더듬고 시선을 맞춘다.
“손끝만으로 설레지 않으면 끌어당 겨 안아 줘. 손을 잡고, 뺨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해
이마를 맞대고 웃었다. 웃음소리와 호흡이 섞인다.
“애꿎은 길 찾겠다고 빙빙 돌지 말 고 내 곁에 있이. 응?”
7~己-==天한 말에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고운이 답한다.
숨소리만큼 작은 답을 들은 산아는 웃었다. 이런 연애를 어디의 누구와 할 수 있을까?
요 며칠 속을 끓였던 일들조자 찬 란한 과거가 될 것이다.
아마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 도 이럴 것이라고 산아는 생각했다. 온 세상에 꽃이 핀 것만 같은 날 이었다. 혹여나 고난이 찾아오더라 도 반드시 해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는 이유 없는 믿음이 들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끝 나지 않고 생은 계속되니.
“산야! 네가 울고 있다는 말을 들 있- 너, 너, 너, 네놈!” “가람, 여전히 시끄럽게••• • 산야.”
바보 같게도 우리는 영영 행복할 것이다.
드넓은 황궁에는 아무도 모르는 숨 겨진 장소가 여럿 있는 법이다. 그중에서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길을 따라가면, 단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화원이 있다.
그녀는 천천히 길을 따라 화원으로 향했다.
화원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꽃나무와 소담스러운 연못, 이리저리 피어 있는 귀여운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은, 활짝 핀 꽃밭 사이의 아이 하나.
아이의 결 좋은 흑발 위로 햇살이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열중하여 무언가를 만드는지 집중 한 입이 부리처럼 삐죽 나와 있었 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금세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를 발견했 다.
뒤를 돈 아이의 눈이 휘등그레졌 다.
아이는 커진 눈을 하고 벌떡 일어 나 종종거리며 뛰어왔다.
그러더니 통통하고 발긋한 얼굴로 활짝 미소 지었다.
“잘 지내고 있지?” 이전에 들었을 때에는 한참을 기다 렸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곧장 답을 주있 다.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 은 우쭐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웃었 다.
그녀는 이곳에는 오래 머물 수 없
다. 이제 돌아가야 했다.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아이도, 찾아온 이도 밝은 낮에 아쉬운 기색 은 없었다.
먼저 발걸음을 돌린 것은 그녀였
다.
그래도 몇 발자국을 떼다 못내 미 린이 남아 뒤를 돌자 아이가 한껏  들었다.
“또 만나!”
그 환한 웃음에 그녀는 비로소 뒤 를 돌아왔던 길을 되돌OH갔다.
손을 흔드는 아이의 그림자가 보여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이별이었
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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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Apr 04,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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