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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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의 처벌은 팽형(烹刑)이었다.
물론 정말 말 그대로 솥에 삶아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형벌이 었다.
팽형이 집행되면, 죄인은 살아 있 되 살아 있지 못한 상태가 된다.
실제로 죽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으 로 벌을 받아 죽었으니, 죽은 것과 같이 취급되는 것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제 제사상 을 봐야 하는, 사회적 매장과 같은 형벌이었다.
지금껏 기세등등하던 여란 가의 가 주가 받기에는 엄중한 처벌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귀족들 중 그 누구도 그 처벌을 만류하지 않았
다.
지금껏 그들은 압도적인 여란 가의 힘 탓에 설설 기었지만, 이제는 그 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여란 가가 그들 모=曰그  했다는 시점에서, 그들은 구심점이 생긴 것이다.
이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 라 전체의 귀족들을 적으로 돌릴 수 는 없었다.
기윤 또한 그걸 알고 있기에 아편  0 속여 팔았지만, 이렇게 만천하 들통이 나 버렸으니.
그는 제법 굴욕적인 꼴을 당했다. 모두가 자신보다 한 단 높은 상석 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팽형의 집 행을 받아야 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솥이 준비되고, 그 안에 들어가 뚜 껑까지 덮고 잠시 있다가 나오는 것
고매하신 여란 가의 가주께서 주심 주심 솥에 들어갔다 나오는 꼴은 아 주 우스웠다.
늘 여유롭던 그의 얼굴도 그 순간 만큼은 조금 금이 가 있어서, 나는 그게 제법 웃겼다. 기윤은 악했고, 현실의 악은 그다 지 멋지지 않다.
그러니 벌 역시 명예를 지기지 않  , 저런 수치스러운 벌을 받는 게
맞는 거지.
그는 그렇게 모두에게 투명 인간이 된 채로 황궁을 나섰다.
나는 그 뒤를 오매불망 바라보다 가, 추국이 끝나자마자 화룡궁으로 향했다.
기다란 복도에 선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뛴다.
혹시 걸려 넘어지면 안 되니까, 치 맛자락도 잘 잡고.
나는 그대로 달려 나7갔다.
엄마 집무실이 끝에서 세 번째 문 이었지.
마구 뛰어가자 대경한 궁녀들의 목 소리가 들렸다.
“마마!"
“마마, 뛰시면 아니 됩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간 나는 문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놀란 궁녀가 나를 붙들었
다.
“마마,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이것 놓아라. 감히 뉘에게  대는 것이나!” 짜증을 내며 손을 뿌리쳤더니 궁녀 가 놀란 얼굴을 했다. “마, 마마••
••••좀 심했다.
그 반응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뭘 했길래 뺨이라도 얻어맞은 얼굴을 하는 거야.
내가 당황해 굳은 사이, 다른 궁인 들도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굳어 있었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폐하께 내가 왔다 고하거라!”
다시 버럭 소리치니 궁녀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칠 떨었다.
“고, 공주 마마께서 오셨  들어오너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에서 목 소리가 새어 나왔다.
궁녀들이 문을 열자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가 보였다.
나는 씩씩대며 그녀를 째려보았고,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무슨 소란이나.” “하지만 어마마마!”
'네 아직도 언성을 높일 낮이 있느 나. 아랫것들의 앞에서 체통을 지기 거라."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엄마가 뒤를 돌아 방으로 들어7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들어7갔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공간에 작게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즉시 한숨을 내쉬며 어깨  늘어트렸다.
아이고•••
'화내는 거 어려워.'
화룡궁 궁녀의 충격 받은 얼굴도 걸린다.
내가 평소에 작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충격이었나.
뭐가 됐든, 남에게 상처 주는 일도 참 못 할 짓이다.
흘끗 시선을 올리니 엄마가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꼬리 끝이 조금 떨렸다.
어휴.
나는 얌전히 두 팔을 벌렸고, 엄마 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담쏙 끌어안 았다.
아, 악. 이 사람아. 숨 막힙니다.
어깨를 탁탁 치자 팔의 힘이 조금 풀렸다.
“우리 아가가 이리 귀여워서 어찌 하나•••
“표독스럽지 않았나요?” 아까 궁녀 하나 울려고 하던데.
내 말에 엄마가 울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 사랑하는 아버지의 끔찍한 형벌 에 분노한 내가 황제에게 따진다, 가 내가 생각한 이 사간니의 끝이었 다.
기윤이 팽형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 이능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니, 아직 은 눈 밖에 나서는 안 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지도 못했고 말이다.
엄마를 만류하려던 나는 한숨이나 한 번 내쉬고 얌전히 그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오늘 엄마는 내가 부탁한 대로 아 주 잘 해 주었다.
방금 날 내려다보던 시선도 정말 한심함과 경멸 그 자체였어.
다 알고도 사실 좀 무서웠다.
그렇게 잘했으니 이번 한 번쯤은 참아 줘야지•  아, 맞아.
“말소리가 바깥에 다 들릴까요?" 작게 소곤거린 말에 엄마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웃을 뻔한 걸 참는 듯 보였다.
그에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양반아. 난 진지하다고.
나도 저번에 언성을 마구 높이며 엄마와 싸웠지만, 그때는 집무실이 아닌 침실이었다.
침실은 황제가 잠드는 공간인 만큼 좀 더 경계가 삼엄했고, 말 그대로 구중궁궐이있다.
하지만 집무실은 비교적 개방된 장 소였다.
당장 이 밖에도 궁인들이 제법 있 으니까.
동궁에 있었던 그 어린 생각시는 일찌감치 내쫓았지만, 그런 이가 또 몇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무거운 분위기였으니 궁인들이 알 아서 물러나 있을 것이다. 혹여라도 엿들을 이가 있다면 모두 잡아낼 터 이니 걱정 말고.”
엄마가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정 리해 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괜찮다니 그런 거겠지. “당분간은 기윤이 조용하겠구나.” 엄마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긋하 게 중얼거렸다.
내게 한 말이라기보단 혼잣말에 가 까웠다.
정말 혼잣말이었는지, 아니면 그 말을 듣고 내가 안심하기를 바랐는 지는 모른다. 조금 유감인 점은 그 둘 다 틀렸 다는 것이지만.
“아닐걸요.”
나는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들 으라고 한 내 혼잣말에 엄마가 의아 하다는 얼굴을 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나?”
“그 성정이 어디 가만히 있을 성정 인가요.”
기윤은 사람들의 앞에서 단 한 번 도 평정심을 잃고 화를 내지 않는
다.
그 상대가 제 사생아이든, 하인이 든 말이다.
그만큼 그는 엄격하게 자신의 이미 지를 만들었다.
그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고, 만사 를 손안에 넣고 굴리는 강자.
그런 작자가 추국장에 불려간 것도 모자라 솥에 들어갔다 나오는 수모 까지 겪었는데, 그 고고한 자존심이 멀쩡할 리가 없다.
모든 귀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만큼, 기윤에게는 꽤나 큰 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잃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무서워지지 않나•••
“산아?”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져 있던 나 는 그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잠시 다른 생각 “무슨 생각을 하기에 어미가 부르 는 것도 못 듣느냐.'
피식 웃은 엄마가 내 코를 가법게 잡았다 놓았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황가의 이능이 도화(桃花)가 맞나 요?”
그 질문에 엄마가 잠시 놀란 얼굴 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은 또 어디서 들었는지 모 르겠구나. 그래. 맞단다.”
“만인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되 는 이능 말이지요?” “정확히 알고 있구나.”
그래. 역시 황가의 이능은 이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기윤 여란이 하려는 일 은 엄마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금세 그 가정 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것만 믿고 마냥 손을 놓기에는 기윤이 지금까지 벌인 일들이 씩 심 상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지만 나와의 친분을 유지해야 하는 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귀족들을 모 두 제쳐야 가능한 일.
그게 원지부터 알아야겠어.
“엄마.”
엄마를 부르자 그녀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이상한 대답에 고개를 든 나는 그 일굴에 덩달아 놀랐다.
엄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있었다.
정말 놀랐는지 입만 뻐끔댔다.
“엄마, 라고.” 나는 엄마의 중얼거림에 곧 그 이 유를 알았다.
아, 그러게. 방금 엄마라고 불렀네. 넋이 나간 듯한 엄마의 얼굴에 점 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가가 붉어지고 파르르 떨리는 입 술을 앙다물었다.
울먹였다는 의미였다.
••그래, 아가.”
사실 나는 그 호칭에 씩 감흥이 없었다.
속으로는 계속 엄마라고 부르고 있 있어서, 그냥 나올 게 나왔구나 싶
그런데 엄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 이렇게 부른 것도 아닌
“또 이렇게 불러 줄 줄은 몰랐구 나.” 엄마가 먹먹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 했다.
내가 그 날 말고 엄마라고 부른 적이 없기는 하지•••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저렇게나 기뻐하는데, 내가 할 말 이 조금 양심이 찔렸다.
“ 0 2”
엄마가 활짝 웃으며 내게 물었고,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대답 했다.
“저 가출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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