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 0 0
                                    


그 에는 정 수틀리면 없앨 수 있 었지만 이 궁녀는 미리내의 궁녀라 책잡힐까 건드리지도 못했다.
황제의 눈에 들지 않고 조용히 지 냈을 때 생기는 불편함 중 하나였기 에 나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어찌 됐든 앞으로 이런 일들이 종 종 일어날 것이니까.
웬만하면 궁에서 나가질 말아야지.
한 달에 한 번은 아프다고 이 주일 쯤 집거해아겠다.
그럼 다른 후궁들도 날 못 부르겠 지.
얼마 걷지 않아 정자가 완전히 가 까워졌다.
그 앞에 서서 궁녀가 의기양양하게 내 팔을 탁 놓고는 위를 올려다보0갔
다.
미리내가 서 있는 곳이었다.
몸을 끌고 가던 팔에 힘이 풀리자 몸이 자연스레 휘청거렸다.
나는 잡힌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산야가 귀비 마마를 뵙습니다. 송 구합니다. 제가 그만 늦어-
“귀비 마마! 산야 여란을 데려왔습 니다!” 말이 뚝 끊긴 나는 입술을 꾹 깨 물었다.
저 정도로 멍청하면 죄 아닐까?
모든 후궁들은 입궁하며 성을 비린 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가의 성을 받는 것은 황제가 허가해야만 가능 한 일이었기에, 대부분의 후궁들은 이름으로만 불렸다.
그런데 지금 저 궁녀는 너무나 당 당하게 나를 '산아 여란'이라고 칭 했다.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여란 가의 후궁 데려왔으니 족치라는 의미인 게 투명하게 보였다.
미리내가 그렇게 대놓고 날 괴롭힐 리가.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는 지, 계단을 내려오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미리내의 성격상 부드럽게 타이르 고 벌을 내릴 것이다.
“아, 아악!”
하지만 나는 뒤이어 들려온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말았 다.
내가 예상했던 건 봄바람같이 부드 러운 목소리였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개를 든 나는 조금 더 놀라고 말았다.
미리내가 궁녀의 머리채를 잡아채 고 있었다.
“내 분명 너에게••• • 얌전히, 잘 모서 오라고 말했거늘  평소와 같은 나긋한 목소리.
저번에도 들었던 목소리였지만, 그 때보다 훨씬 더 피 냄새가 났다.
원작을 읽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모습은 미리내가 정말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체통도 잊고 손수 궁녀의 머리채를 잡은 것만으로도 드러났다.
다만, 그 이유가 내가 방금 앞에 들은 게 맞는지는 조금 헷갈린다.
머리채가 잡혀 목이 뒤로 꺾인 궁 녀가 끽끽댔다.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
다.
“마, 마마. 사, 살려•••
바들바들 떠는 궁녀의 모습에 그가 기괴하게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가만히 서서 도자기 같은 얼굴에 미소 한 번을 띠었을 뿐인데 누구 하나 죽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로 뭐 때문에 화가 저 렇게까지 난 걸까.
나는 희귀한 미리내의 화난 모습을 가만히 관전했다.
내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미리내가 평소보다 조금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뱀처럼 속삭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 아이가 네 손에 개처럼 끌려 왔는지, 이유를 말해 보겠느냐?” 졸지에 확인 사살을 당해 비린 나 는 입을 바보처럼 벌렸다.
이.
뭐라고?
그때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한 여 자가 소리 없이 걸어왔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누가 봐 도 미리내의 진짜 궁녀였다.
“마마. 이곳은 곤란합니다.”
그 말에 미리내의 고개가 돌아갔 다. 일정하게 돌아가는 고개가 섬뜩했 다.
하긴, 지금 저 상태면 느리게 돌리 든 빠르게 돌리든 무서울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아겠구나. 비엔” 상냥하게 무서운 말에도 궁녀는 충 직하게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 했다.
“아이가 보기에 좋은 장면이 아닐
겁니다.” 그 말에 미리내의 손에서 거짓말처 럼 힘이 툭 풀렸다.
머리채가 잡힌 채 덜덜 떨던 궁녀 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연이라는 궁녀가 미리내에게 손 수건을 내밀며 물었다.
“어찌할까요.”
1- 으 닦으며 그 질문에 미리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도 베일 듯이 궁녀가 놀라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미리
내가 말했다.
•••화원으로 데려가거라.” 미리내가 말하는 '화원'이 어디인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알던 곳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정원사가 꽃 대신 인간의 목을 따 는 곳이 아닐까.
그 궁녀는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지, 얼굴이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다가 나를 올려 다보았고, 염치도 없이 도와 달라는 시선에 나는 조금의 유감을 표했다. 저런. 그러게 작하게 살았어야지.
“미안하군요. 험한 꼴을 보였습니
다.”
미리내는 언제 무섭게 화를 냈냐는  八이 다정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 았다.
평소와 같이 매끈한 얼굴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귀비 마마.”
“이런••• 이리 예를 차리지 않아 도 괜찮습니다. 들어갈까요.”
하하. 빈말도 참.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미리 내의 뒤를 따라 정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식어도 괜찮은 다과와 다시 내온 것이 분명한 찻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옷을 정리하며 슬쩍 탁자를 바라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익숙한 간식을 본 탓이었다.
색색깔의 동그란 모양. 문양이 찍 혀 있는 윗면. '다식!'
저번에 먹지 못했던 유밀과에 이이 두 번째로 보는, 무엇인지 아는 간 식이었다.
사실 다식도 유밀과도 실제로는 먹 어 본 적 없지만, 이름은 익히 들었 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배웠었지. '의외로 한과가 많은가 배' 다른 이름 모를 것들을 먹느니 한 과가 낫지 않을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머리 위에서 국.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
다.
모로 들어도 미리내의 웃음소리였 다.
단 것에 시선 뺏겼다고 비웃음당한 건가.
나는 그것에 항의하는 대신 시선을 내 앞의 탁자로 거두었다.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목숨 걸고 항의할 만큼은 아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임의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요.” 애새끼 같다는 말을 참 길게도 돌 려서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
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귀비 마마.” 고개를 하도 숙여 댔더니 내가 인 간인지 이삭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내뱉는 말도 그게 다였다.
나는 무심한 인간이었지만 친근한 사람 하나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은 되지 못했
다.
애초에 인생을 살며 목숨을 위협할 만한 사람과 독대할 일이 많지 않았 기에 이 상황이 꽤나 불편했다.
당장 날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지.
방금도 눈 돌아간 걸 봤었고 말이
아. 아까의 그 궁녀가 다시금 생각났 다.
그녀는 내가 원인인 줄 알고 내가 괜찮다는 말을 해 주길 바랐겠지만, 그랬더라도 미리내는 그녀를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내가 단순히 나를 험히 다뤘다 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분노했을 리 가 없다.
뭔가 황제와 관련된 나쁜 일을 했 겠지.
그건 그의 유일한 역린이니 말이 다. 그렇다. 나는 좋은 미끼였던 것이
다.
'그런데•••
미리내가 저렇게 일 처리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대놓고 거슬리는 나를 두고도 생글 생글 웃는 인간인데, 갑자기 악귀처 럼 돌변했었지.
혹시 정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 가?
나는 조금 심각해졌고, 그것보다 좀 더 걱정스러웠다.
이러다가 갑자기 수틀려서 날 죽이 는 건 아니겠지?

“네, 네.”
미리내의 부름에 나는 단번에 생각 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휙 들었다.
눈이 가려져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의 미리내가 나를 가 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차가운 바닷물처 럼 어깨를 쓸고 갔다.
나 뭐 못 들었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리내의 입 꼬리가 배부른 고양이처럼 른히 늘어졌다.
그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름을 허락해 주어 고맙군요.” 내가?
“이리 곧바로 허락해 줄지 몰랐는 데, 생각보다 산야는 내가 마음에 들었나요?” 설마.
나는 미리내의 망언에 황망한 눈을 했다.
진짜 어디 아픈가?
원작에서 미리내가 정신을 놓는다 는 이야기는 못 봤는데.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도착해서 미리내가 나에게 눈 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협박 을 하면 얌전히 알겠다고 대답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우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네요.” 내 얼굴에 국국 웃던 미리내가 잔 잔히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본론에 대한 운을 뗄 줄 알았더니 웬 사과인가.
잘못된 궁녀를 보낸 것? 이건 고 의가 아닌 걸 아니 괜찮다.
미리내가 날 괴롭히고 싶었다면 무 색무취의 독을 내 식사에 섞었을 것 이다.
“초아 날, 제 눈을 보고 많이 놀라 셨더군요.”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슬그머니 손 을 뻗으려던 나는 그대로 손을 떨었
다.
기출 변형이었다.
찻잔을 아직 잡지 않아서 다행이
다.
자를 마시려 했다면 그대로 떨어트 렸을 거야.
“그릴 만도 하지요. 무서운 붉은색 이니 말입니다.”
미리내가 한가로이 말하며 본인 앞 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가 손을 탁자 밑에 두고 차는 구경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가웃했
다. “입에 안 맞나요?” “아, 아뇨.”
나는 찻잔을 잡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색이 있는 잔에 담겨 투명해 보이 는 찻물이 입 안으로 넘어갔다.
입 안에 찻물을 머그 0 1 11- 1- 0 동그랗게 떴다.
내가 마셔 본 차는 쓰거나 고소했 는데, 놀랍게도 이 차는 달았다.
이 시대는 설탕이 귀하지 않나?
꿀인가?
“달지요?” 그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다정한 그 목소리에 저도 모 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자리에 나를 포함해 사람이 두 명뿐이며 나 를 제외하고는 미리내뿐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섬뜩해졌다.
“수국자랍니다. 달리 무언가를 넣 지 않아도 달콤한 맛이 나지요. 어 떤가요?”
어떻고 자시고 간에 네가 준 거라 면 마시고 피를 토해야 할 것 같다 는 생각이 사라지진 않는다만.
•••그래도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그 사실에 나는 조금 절망했다.
단 걸 좋아하는 건 정말 어린아이 같잖아.
정말 어린아이이긴 하지만, 내 정 신은 성인이란 말이다.
하지만 아직 혀가 매운 것에 익숙 해지지 않은 탓에 단 것이 너무 맛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린아이들의 특권이 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이내 퍼뜩
정신을 자렸다.
나 방금 미리내랑 엄청 살벌한 이 아기 하고 있었는데.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