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 울어.” “그렇지만•••
“안 아파. 그냥 잠깐 낮잠 잤던 거야.”
내 말에 고운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가 앞머리를 넘겨 핀을 꽂아 준 터라 눈이 그대로 보였다.
그 눈이 시무룩해지-원- 1- 스으 보1나는 상당히 난처해졌다. 아까 한참을 울고 난 다음 나는 그대로 쓰러져 낮잠을 잤다.
어린아이의 몸이라 그렇게 울고 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졸렸다.
잠들며 나는 내가 어릴 적에 울 고 나면 잠이 오는 것을 진리로 믿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얼마를 잤을 때 서연은 식사는 해야 할 것 같다며 나를
깨웠고, 나는 밥을 먹는 등 마는 등 하고 또다시 픽 쓰러져 잤다.
그렇기에 나는 내 옆에서 안절부 절못하던 고운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 장을 미약하게 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톡, 톡톡. 하고 새가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에 나는 일어났고, 지금 이 한밤중이라는 것과 고운이 계 속 내 창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이것. “어디가 미령하신 것이 아닙니 까?”
“아나. 그냥 낮잠 잔 거야.”
“하지만 마마께오서 몇 시진을 주 무셨습니다. 이의를 부를까요?”
“그냥 너무 울어서 졸렸어. 봐. 어디 안 아프잖아.” 내 말에 고운이 크게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잠시 그렇게 굳어 있던 그가 조 용히 중얼거렸다.
“울면•••••• 졸립기도 합니까?” 그래. 부럽다 이 자식아••• “원래 어리면 그래. •••아냐. 내 가 체력이 약해서 그래.”
불신의 눈빛을 하던 고운이 내가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납득한 얼 굴을 했다. 본인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 인 것 같0갔다.
“눈이 부으셨습니다. 역시 어디가 미령••
“울면 원래 눈도 부어. 난 정말로 아픈 게 아니야.”
나는 그의 말을 딱 잘랐다. 난 그 냥 울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건 드리면 깨질 것 같은 취급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내 말투가 단호해지자 고운이 내 눈치를 보았다.
눈이 드러나니 안 것인데, 고운은 말은 과묵한 주제에 얼굴 표정은 꽤나 풍부했다.
뽀안 얼굴에 큰 눈이 도르르 움 직이는 건 상당히•••••• 귀여웠다. '핀도 두 개아.
가르마를 중간에 타서 앞머리를 양쪽으로 핀을 꽂았다.
진회색 머리카락에 금빛 핀 두 개가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내가 입술을 작게 오 므리는데, 고운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 왔다. “그럼 왜 우셨습니까?”
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왜 울었나니. 정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황제가 널 죽이려고 해서 너를 살리려고 울었어. 그런데 울다 보 니 성질이 북받쳐서 더 울었단다. 하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내 대답에 고운이 고개를 갸웃했
다. 그윽. 귀여워. “원래 나 잘 울어.” 거짓말이다. “눈물도 많고, 감수성도 풍부하
역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해성 높은 고운은 그 말에도 고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이제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예,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집중한 건
가.
“그런데 그 서찰, 왜 찢은 거야?”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고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을 두어 번 깜빡, 난처한 듯 입 술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말해 주기 힘든 듯, 또는 부끄러 운 듯 한참을 고민하던 고운이 어 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것이.”
그는 그렇게 말하고도 잠시 주저 했다. 부끄러움은 잘 탔지만 이렇 게나 주저한 적은 처음이라 나는 고개를 가웃했다.
그림자는 당연하게도 암살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적혀 있는 것을 대낮에 비것이 전해 줄 리도 없을뿐 더러, 상관의 명이 담긴 종이를 짜 증이 가득한-미간을 조금 찌푸린얼굴로 북북 찢을 수 있을 리가 없
다.
“내용이, 조금.”
그렇게 말하는 고운의 콧잔등이 붉 었다.
앞머리를 내리고 있을 때에는 몰랐 는데, 그는 부끄러우면 주근깨가 올 라은 것처럼 콧잔등과 귀가 붉어진
다.
고운은 열두 살이었지만 성장이 늦 어 이린 티를 벗지 못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 다.
그 난처해하는 모습에 나는 어른답 게 한 발 물러나 줄 수 있었으나, 그 순간 장난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 것이 문제였다.
“무엇이기에.” 내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고운의 콧잔등에만 머물러 있던 홍조가 물 감이 퍼지듯 조금 더 붉어졌다.
결국 그는 더듬더듬 내게 서잘의 내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마를 잘 모셔라,” 역시 시작은 그것인가.
상전을 모시는 누군가에게 서찰을 보내는 시작은 대부분 그 상전을 잘 모시냐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고운의 목소 리를 들었다 듣기 좋은 청아한 목소리는 노랫소 리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진 말 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너를 거꾸로 매달 아서-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그 말에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앞으로 쏠려 휘청거리려는 나 를 고운이 휘등그레진 눈으로 붙잡 았다.
나는 그의 팔에 잡히고도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괜찮으십니까?” 고운의 목소리가 당혹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 어나 침상에 앉0갔다.
흔들의자는 편하지만 내 몸이 작은 탓에 자칫 몸을 크게 흔들렸다간 앞 으로 넘어지거나 뒤로 넘어가기 일 쑤였다.
“난 괜찮아. 더 이야기해 배” 고운은 내가 안전히 침상에 앉았다 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열있
다.
흠씬 때려 줄 테니 꼭 잘 모시거 라. 어디서 돼지 밥이나 주위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구나. 네놈의 값싼 입맛에 화선궁의 호화로운 식사가 가당기나 하더냐 •••그만. 됐어.”
나는 하얗게 질려 대답했다.
다행히도 내 얼굴이 달빛에 젖어 그리 장백하게 보이지 않는지, 고운 이 새벽 별처럼 빛나는 청회안을 두 어 번 깜빡거렸다.
이린 강아지 같은 모습에 나는 입 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림자는 최정예들이 모여 있는 집 단이었다.
그곳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을 따 는 것보다 힘들었고, 어린 고운이 그 시험을 통과한 것은 정말 백 년 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재능일 것 이 분명했다.
다른 곳에 발령받은 동료에게까지 저런 끔찍한 내용을 적이 보내는 이 는 대체 얼마나 고운을 질투했던 걸
까.
어린아이가 받기에는 과한 괴롭힘 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맑은 고운의 눈을 바 라보다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잘했어.”
내 반응에 아이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고개를 가웃하는 고운의 모습에 나 는 머리를 두어 번 더 쓰다듬어 주 었다.
“다음에도 또 찢어.”
•••그렇지만 오늘처럼 폐하 앞에 서는 말고.” 내 말에 고운이 빤히 나를 바라보 았다.
어째서요, 하고 묻는 듯한 얼굴에 나는 아이를 쓰다듬던 손을 거뒀다.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주신 서찰 인데, 그 앞에서 찢으면 어떻게 해.” 질책하는 목소리에 고운의 눈에 서 운함이 언뜻 것들있다.
입술을 조금 내민 고운이 말했다.
“하오나 그 서찰은 제 동료들이 보 낸 것이온데•••
“황제 폐하께서 전해 주셨잖아?”
고운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는 얼굴로 고개를 가웃했다.
그는 어찌 되었든 그것을 전해 준 사람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앞에서 그것을 찢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 같았다.
나는 더 설명하려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던 뒤에서 찢어.”
내 말에 고운은 재깍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도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앞머리를 올린 터라 큰 눈이 도르 록 굴러가는 것이 금세 보였다.
•••죄송합니다. 소인이 무지하여 마마께오서 진노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에 이리등절해졌다.
뭐라고.
진노.
내가?
잠시 미궁에 빠졌던 나는 금세 이 유를 찾았다.
아이들은 조금만 얼굴을 찌푸려도 금세 무서워한다.
한숨이나 어두운 얼굴, 낮은 어조 에도 그랬다.
나는 본래 말하는 톤이 무미건조한
편이다.
상냥한 콧소리나 귀여운 애교 같은 것을 부리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 이었다.
그런 목소리가 좋지 않다는 걸 알 아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 하는데, 그럼에도 착잡한 기분이 드 러나니 무서웠던 모양이다. “화난 거 아니야.”
고운은 언제나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달빛 탓에 눈 안에 빛이 고여 마치 눈물 같았다.
나는 옅게 웃으며 고운을 다시 쓰 다듬었다.
“정말이야. 화 안 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화를 내겠 는가.
하지만 굳이 화를 내아 할 대상을 고르자면 그 서찰을 보낸 고운의
'동료' 정도였다.
“화 안 낼 거야.”
재자 말하자 고운의 귀가 또다시 붉어졌다.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고 작게 웃은 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 었다.
“이렇게, 새끼손가락을 거는 거야. 약속의 의미로.” 내가 다른 손으로 시범을 보이자 고운이 엉거주춤 제 왼손을 꺼냈다. 나와 마주 앉은 그는 왼손의 새끼 를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걸려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반대 손 을 내밀었다.
그렇게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던 고운이 사르르 웃었다.
살짝 문 입술이 살며시 휘어지고, 커다란 눈이 반달처럼 접혔다. '미리내가 비녀를 주었지.' 그 해사하고도 수줍은 미소를 보 며, 나는 조금 음습한 생각을 했다.
'그' 비녀를 내어 준 것은 황제 앞 에서 미리내가 잘 보이고 싶다는 것 을 아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렴 그것을 턱턱 내어 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미리내가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나에게 함부 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리내는 그림자와 꽤나 연 관되이 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사람은 못 쓰지.' 그림자 하나를 내어 줬으니 둘도 내어 줄지 몰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운의 웃음 에 마주 웃이 주었다.
고운은 제 새끼손가락에 걸린 작은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모시게 된 새 주인은 아주 특이한 분이었고, 그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을 내밀기에 제 새끼손 가락을 자를 만한 맹세라도 있는가 했더니, 그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 으로 약속을 내걸었다.
새끼손가락은 중요한 맹세를 할 때 잘라 상대와 피를 나누어 마셔야 한 다고 배운 고운으로서는 처음 배위 보는 간질간질한 방법이었다.
그림자는 그 주인의 것.
선과 악도 주인의 앞에서는 의미를 잃으니, 한 생명이 타오를 때까지 주인의 명만을 수행한다.
그것은 고운이 지금껏 배워 왔던 것이었다.
그는 지금껏 그것에 아무런 불만도 기쁨도 없었으나, 산아를 만난 뒤로 무언가가 움트기 시작했다.
감정에 서투른 고운은 그것이 무엇 인지 몰랐으나, 그저 아주 조용히 생각할 뿐이었다.
내일 밤도 이렇게 찾아올 수 있을 만한 핑계가 있었으면, 하고.
그리고 그 시간.
그림자의 일원 중 하나인 여류는 몸을 부르르 떨다 재채기를 했다.
갑자기 오한이 든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