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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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과연 그 치들이 일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 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이구, 그랬구나.
“다른 이들이 화비 마마보다 능력 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아 그럴 수 있지요. 허나 부족하 다면 더욱 성심껏 일해야 하지 않겠 습니까? 하여튼, 노력이•••  아하. 노오력••  적당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고개를 가웃했다.
“헌데 일일이 운용하여 비를 내리 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예. 어렵지요. 허나 선례가 있는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정 불 가하다면 농번기만이라도 그곳에 머 물며 물을 대주면 되는 것이거늘  “그렇군요. 그런데 어째서 그 이아 기는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저 치들이 폐하의 눈에서 멀 어지기 싫다며 황궁에 저 무거운 궁 등이들을 붙이고 있는 것을 알기 때 문이지요!” 초은이 격양된 목소리로 외졌다. 쌓 인 게 퍽 많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그녀에게 다 완을 밀어 주었다.
호쾌하게 자를 들이켠 초은이 생글 생글 웃다 말고 쩌적 굳었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 채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조금 아쉬워했다.
쳇. 벌써 정신이 들었나•••  여면은 아주 당황한 것 같았다. 그 녀는 나와 제가 지금까지 집어먹었 던 다과를 번갈아 보더니 손에 쥔 다완을 들고 덜덜 떨었다.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
독 들었나 확인도 안 하고 내가 주 니 먹었지?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다완을 가져가 남은 자를 홀짝댔다.
그러자 여면은 안도한 얼굴을 했고, 또 아차 하고 얼굴을 굳혔다. “대체••• 무슨 짓을•  거참, 심각해 보이네. 내가 한 건 주절거리는 이야기에 적당히 호응해 준 것밖에 없는데. 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눈을 도르록 굴렸다.
무슨 짓, 음. 맞기는 하지.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수작이었으니 말이야.
당연하게도 후궁전의 모두가 내게 상냥하지는 않0갔다.
권력자들이 나를 아끼니 이젠 대놓 고 해코지를 하지는 않지만, 시비를 거는 것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예 화는 그들이 꼭 내게 사과하기를 명 령했다.
하지만 애초에 사과하란답시고 진 심으로 반성하는 인간이라면 시비도 안 걸었을 것.
그들은 사과하러 와서도 씩 상냥하 지 않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몹시 난처했었다.
어쩌면 예화는 다 뒤엎으라고 그들 을 내게 보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시하더니 꼴 좋다고 조롱하 기엔 목숨이 아까웠다.
결국 내가 고른 방법은 살살 구슬 려 돌려보내기였다.
아이고, 그렇지요. 잘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폐하가 참 너무하셨지요.
그래요. 서운하셨죠?
내가 그 맘 다 알아요.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맛있는 것도 먹이니 대부분 그들은 몇 번 주절대 고는 후련하다는 얼굴로 내 궁을 나 섰다.
몇몇은 오해했다며 진심 이린 사과 를 남기기도 했다.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런 이들도 내가 다 이해한다며 따뜻한 찻잔을 쥐여 주자 주절주절 제 푸념 을 늘어놓곤 했다.
그걸 보고 저 사람들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친구 하나 없는 황궁 안에서, 제자 리를 뺏기지 않으려 견제하고 공격 하는 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서, 자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이 말하다 가도 말 중간중간 한숨을 쉬는 모습 들이 눈에 밟혀서 괜히 매정하게 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으로 사람이 완전히 변하지는 않기에 언제나 화 기애에하게 끝맺어지지는 않았다.
얄팍한 수이니만큼 오래 통하지는 않았다.
홀린 듯이 제 이야기를 털어내던 후궁들은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지?' 하는 얼굴로 변하곤 했다.
이럴 맨 괜히 불똥 튀기 전에 얼른 보내아 한다. 나는 냉큼 웃었다.
“소녀가 조금 더 조심하겠습니다. 이리 찾아와 주셔서 반가웠어요.” 그래도 여면은 사과하겠답시고 찾 아온 후궁들 중에는 가장 양호한 편 이었다.
여면이 한 말이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씩 틀린 말도 아니었다.
중요한 회의 중에 여덟 살짜리 사 장 딸내미가 들어와서 난리 치면 짜 증이 날 법도 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사과하겠답시고 우물쭈물 앉아 있었던 그녀가 가없 기까지 했다.
따져 보면 내가 기분이 나빴을 뿐 여면은 맞는 말을 했다.
왕정 국가에서 왕족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21세기의 지구에 살다 온 나에게는 그랬다.
예화는 그냥 내 딸 괴롭히지 말라 는 폭군 같은 심보였을 거고•••  기분 나빴겠지만, 내가 이야기 잘 들어 줬잖아.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가 주라. 응? 내심 그런 소원을 빌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여면이 작게 한숨을 내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한 모양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뒤를 졸 졸 따랐다.
좋은 손님이었으니 배웅해 줄 요량 이었다.
이제 뭐 하지.
아, 고운이랑 놀아야지. 간식도 달 라고 하고, 낮잠도 좀 자고.
•••명분상 어머니 뭐 하고 있나 구경이나 갈까.
한참 상상에 빠져 있는데, 나가려던 여면이 아, 하고 뒤를 돌았다.
“다음번에는 지어낸 이야기는 강연 에서 하시면 아니 됩니다.” 생글생글 웃고 있던 나는 그 말에 딱 굳어 비렸다.
그래.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한 것 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닌데. 지어낸 이야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중일 거렸다.
내 귀에도 간신히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였으나 여면은 용케도 알아듣 고 한쪽 눈썹을 지켜올렸다.
“그럼 정말로 그 구황작물이라는 식물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대체 어디에요? 하는 질책의 말이 따라붙는 것 같아 나는 입을 꾹 다 물었다.
여면은 참 맞는 말을 잘했다. 맞기 도 했고 때리고 싶기도 했다.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었 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여면이 한숨 을 내쉬었다.
“마마.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아랫 것들에게 윗전의 흉을 내비치는 것 이 얼마나 체면이 상하는 일인데요.” 어디 상할 체면이나 있었나. 그 체 면은 지금 당신이 다 구기고 있는데.
입 안으로 조용히 꿍일대자 그녀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일마 뒤면 서 대륙에서 사신 들이 올 텐데, 그들의 앞에서 이런  하시면 그들이 이 서라국을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마마께오서는 이 나라의 후계인 만큼 영민한 모습 을 보이셔야 합니다.” 웃기고 있네. 내가 왜 후계야.
난 황제 안 할 거야.
다시금 입 안으로 쫑알대다가 딱 멈췄다.
귀에 쏙 박히는 단어가 있었다.
•••서 대륙?
“사절단이 온다고요?” 고개를 획 들자 졸지에 나와 눈이 마주친 여면이 흠칫했다.
그녀는 내 시선을 은근히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물을 바치러 서 대륙의 많은 나라에서 오지요. 그러니 마마, 부디 이 세계의 동 대륙은 지구의 동양, 서 대륙은 지구의 서양과 비슷했다.
아메리카는 보통 서양으로 구분되 지?
그리고, 동 대륙에 없는 것이니 서 대륙에 있겠네?
“구황작물. 찾아다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여면이 놀란 얼굴 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가 또 무어라 핀잔을 주 기 전 잽싸게 입을 열었다.
“정말이에요. 얼마만 시간을 주신다 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번엔 한숨도 아닌, 노골적으로 어 이없다는 목소리였다.
“척박하고 추운 땅에서도 잘 자라 고,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그런 식물 을 말입니까?”
단호한 내 대답에 여면이 허, 허 하 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몇 번 더 내 었다.
착잡하다는 듯 이마를 짚은 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진정으로 찾아오신다면 이 초은 아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마 께오서 원하시는 소원 하나를 들이 드리지요.”
야. 너 분명 그렇게 말했다. 무르기 만 해 봐.
“좋습니다.” 내가 월 시길 줄 알고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니.
이제 얼마 뒤에 꼭 후회하게 해 주 마.
의기양양하게 웃자 여면이 어이없 다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 내 머리 위로 손을 턱 얹고는 쓰다듬었다.
얼핏 '이런 어린애랑 월 하고 있는 건재 하는 중얼거림이 들린 것도 같 았다.
소원으로 '산야 언니, 잘못했어요' 하게 해 버릴까•••  진심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투박한 손길이 제법 부드러워졌다. “폐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월까 싶어 고개를 가웃했을 때, 여 면이 작게 중얼거렸다.
마주친 눈이 퍽 가라앉아 있어 나 는 당황했다.
뭐, 뭐야. 너도 그런 의미의 후궁이 있어?
하지만 나의 당황스러움은 금세 가 라앉았다.
“오래 친분을 나누었지만 폐하가 저리도 누군가를 아끼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여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안도하는 듯해, 나는 그녀가 예화의 친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여면은 좋은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야심도 있고 제 나라를 사랑했다. 강자에게도 당당하고 어린아이에게 상냥했다.
좋은 사람이지만, 그녀 또한 예화의 이능 탓에 예화를 아끼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예화가 조금 가여워졌다.
사랑을 모르는 것뿐이지 감정이 없 는 건 아닐 텐데.
정작 자신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이유 모를 사랑이 모두 자신의 이능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는 건, 마냥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내 일이 아니니 깊게 신경 쓸 일 없다.
타인의 불행에는 깊게 관여하고 싶 지 않았다.
하지만 괜히 열심히 준비해 온 선 물을 거절했을 때가 떠오르고, 내가 딸이 되겠다는 말에 환하게 웃던 일 굴이 떠올라서•••
어쩌면 예화가 조금은 외로웠을지 도 모르겠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가 또다시 자조적으로 픽 웃었다.
“소원은 거저 말하십시오. 맛있는 자를 얻어먹은 값으로 하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스스로에게 퍽 어이없 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아 나는 픽 웃었다.
어린애에게 내기를 걸었다는 게 스 스로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거저 얻으면 쓰나.
무엇보다 그렇게 받은 소원권으로 는 내 양껏 여면을 부려 먹을 수 없 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꼭 네 앞에 구황 작물이든 뭐든 가져다 두고 만다.
환하게 웃으려고 했는데, 크게 하품 이 나오는 게 먼저였다.
잠시 시야가 가려진 틈에 작은 숨 소리가 들렸다.
웃기나.
오늘 한 일이 좀 많다 보니 이 작 은 몸으로 버티는 데에 한계가 온 듯했다.
자각한 순간 무섭게 졸음이 밀려왔
다.
그래. 하든 일단 잠부터 자자.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그걸 또 놓치지 않은 여면이 좋다 고 말을 걸었다.
알면 얼른 가. 나 낮잠 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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