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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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소리가 제법 컸다. 아마 바깥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 희사의 에 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가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탁자로 옮겼다.
“0 0 0 0 0.
머리에 장신구가 걸리든 말든 가차 없이 머리를 쥐어 잡았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산아 여란.
나는 이제 아륜이지만, 때때로 몹 시 머저리 같은 짓을 했을 때에는 스스로를 산야 여란이라고 지칭하곤 했다.
기왕 여란이라고 생각도 한 김에 나는 두어 번 더 머리를 박0갔다.
'진짜 미친 거 아나?'
제정신인 이상 이럴 수가 없다.
설렌다고.
누구한테?
내가 저놈 코찔찔이일 때부터 봤는 데?
산아야. 네가 사람 새끼니? “송구합니다, 마마. 들어가겠습니
희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문이 드르륵 열렸다.
“어찌 이러고 계셔요, 마마!”
•••다급하니 마마 소리가 나오는 구나.”
꼬박꼬박 전하라고 잘 불렀는데. 역시 급하면 습관이 튀어나오는 걸 까.
나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며 중일 거렸다.
희사를 포함한 다른 궁녀들은 내 옆에서 동동거리고 있었다. “괜찮으니 소란 피우지 말거라.”
“하지만 큰 소리가, 꺅! 마마! 이 마가!”
1-
벌게졌나 보네. 나-1- 근 근 이마를 문질렀다.
“정말 괜찮으니 열을 식힐 것이 궁녀들을 안심시기던 나는 멈칫했
다.
“아나.”
내 명에 따라 부산히 움직이던 궁 녀들이 그 말에 즉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시선에 화답하여 중얼거렸
다.
“난 쓰레기야.” 죽자, 나 자신의 의지로.
다시 한 번 쿵 머리를 박으니 궁 녀들 사이에 큰 소란이 퍼졌다. “어찌, 어찌 이러서요. 예?” 목소리가 울 것 같다.
괜찮다고 말해 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내가 고운이 열두 살인가, 열세 살 인가에 봤었지. 그때 내가 전생 나이만 쳐도 스무 살이 넘었고? '일곱 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뭐라는 거야.
스스로 슬그머니 떠오른 합리화를 나는 곧장 지워 버렸다.
스무 살이라는 게 아니라, 스무 살 이 넘었다는 거잖아.
“마마.”
그리고 그때, 당황으로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궁녀들의 높은 톤이 아닌 낮게 깔 리는 남자의 목소리.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 도 고운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 는 굳이 고개를 들었다.
얘는 무슨 밑에서 올려다봐도 잘생 겼어.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한 나는 얼굴 을 울 듯이 일그러트렸다.
미쳤어. 글렀다, 진짜.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고운도 놀랐 는지 평소보다 대답이 더 빨랐다. “네가 올해로 나이가 몇이니?”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도 고운은 곧 장 대답했다.
“스물넷입니다.”
“스물넷. 스물넷이란 말이지••  그럼 나랑 나이 자가 대강•••  '생각 안 할래.'
굳이 내가 쓰레기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못내 서러워서, 나는 힘 빠 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스물넷이아•••
원망하는 내 목소리에 고운이 당황 했다.
그래. 너도 황당하겠지.
나이가 왜 스물넷이나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겠니.
“마호 가의 선대 가주는 중독당해 죽었습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내쉬 는데, 고운이 입을 열었다.
“마호 가의 이능에 당한 것이라 시 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모두 녹아 사 라졌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퍽 달가웠
다.
그 빌어먹을 놈이 죽었나 보네.
마호 가의 이능이라면 고운이 죽였 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만, 뭐 어떠나 싶었다.
고운에게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다. 그런 이를 고운이 제 손으로 죽였다 해서 돌을 던질 이가 있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강해야 할 테니.
그렇지만 역시 왜 갑자기 저 이야 기를 하나 싶었는데, 고운이 말을 이었다.
“하여 부관참시는 불가합니다만, 원하신다면 그의 유해를 모아 오겠 습니다.” 나는 고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저를 낳은 시기를 정한 것은 그이 니까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 다.
그러니까 내가 나이를 탓한 말에, 그 원인이 마호 가의 선대 가주이니 그를 처벌하도록 유해를 모아 오겠 다고. 나는 울상인 얼굴 그대로 웃고 말 았다.
무슨 저런 말이 다 있담.
“아나. 괜찮아.”
그냥 농담으로 들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참 정상적이지 않고 이 상한데.
저런 이상한 말에 또 설레려는 나 는 역시 미친 것 같았다.
얼마 뒤, 나와 고운이 서 대륙으로 떠나는 날은 꼭 장례식 같았다.
내 궁녀들은 모두 결연한 얼굴로 나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데려7갔다간 이동하자마자 기절할 것 같은데 어딜 따라와.
그들은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자마 가겠다는 말은 못 했고, 그 탓에 출 발하는 오늘에는 거진 울상이었다.
그나마 제일 태연해 보이는 서연조 자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는 우선 서연 의 손을 붙잡았다.
“무사히 돌아올 걸세. 걱정하지 말 아. 응?”
“송구합니다, 전하. 소인이 불충하 여••  사람 참, 괜찮다니까 그렇네.
나는 서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亡  려 준 뒤 고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년 정말로 두렵지 않니?”
예의 단답이 돌아왔다. 망설임 없 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게 새삼 신기하다고 생각했 다.
고운이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과 같 은 반응을 보인다면 두고 갈 생각이 있는데, 예상외로 고운은 덤덤했다.
그런 고운을 다른 사람들은 미친 사람 보듯 보았다. 어떻게 저럴 수 가 있지? 하는 경악스러운 눈빛으
로.
'같은 돌연변이라서 그런 건가.'
나는 이능이 너무 없고, 고운은 이 능이 너무 많고.
그게 내심 안심이 되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 한 기분이랄까.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고운이 나 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잠시 감단했
다.
'잘생겼네•••
한 가문의 가주 신분으로 떠나는 만큼, 오늘 고운의 복색은 평소와 달랐다.
그렇다 해도 옷만 바뀐 것뿐인데, 장식 없는 무복 입은 모습만 본 게 전부인지라, 저 모습이 아주 달라 보였다.
금박이 입혀진 흑색 예복을 입은 모습이 종친 같다.
=
그것조차도 고운은 늘 그랬다는 이 잘 어울렸다.
진짜 반칙 아닌가.
그 꼬맹이가 어떻게 저렇게 커. 속으로 궁시령거리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고운이 살풋 웃었다. 괜히 움찔한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괜히 패배감이 들었다. 어릴 땐 내가 고운을 빤히 보면 고운이 시선을 피했는데, 어쩌다 이 게 반대가 된 거야. 고운은 쑥 컸는데 나는 어릴 때보 다 퇴화한 것 같았다. “전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다행히 어색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던 궁녀가 이제 떠 날 시간임을 알렸다.
나는 방을 나서 고운과 함께 대전 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하자 옥좌에 앉은 엄마 와 그 옆에 선 후궁들, 그리고 대신 들이 보였다.
그 앞에 서자 궁녀 하나가 내게 함 하나를 0손히 내밀었다.
서 대륙에 가져갈 것은 방금 궁녀 가 내민, 왕에게 바칠 보물이 들이 있는 저 함과 내 소맷자락에 들어 있는 서신이었다.
'아연이 전해 달랬지.' 서련과 나는 11년 전에 만나 이제 는 아주 진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서 대륙으로
간다는 것을 전해 들은 서린은 자신 도 가겠다며 가문을 발각 뒤집어 놓 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불가능했고, 아 연은 내게 시무룩한 얼굴로 전날 찾 아와 서신 하나를 건넸다.
'77년 전 으졌던 황자 전하/ 주제요. 주주에게 전하/ 달라고 말쯤 하시면 아실 거에요 '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11년 전에 서라국에 왔었던 유리 를 기억한다는 것부터, 슈슈라는 처  0 들어보는 이름까지.
'너무 절박해 보여서 받기는 했는
데.' 이걸 건네주는 게 맞으려나.
곧이곧대로 해 주기엔 좀 괘씸하긴 한데.
친구 기워 봤자 다 소용없어. 날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따라가겠다는 줄 알았더니, 목적이 다른 거였잖 아?
“서라국의 근간이 되는 이능이 크 게 약화되었으니, 이는 큰 사안이 라.”
엄숙한 분위기 속에 엄마가 이야기 를 시작했다.
“하여 오늘날 타국으로 떠나게 되 있으나, 태자와 마호 나라를 위해 힘쓰기를 주저하지 말라.” 사신의 입장에서 떠나는 것이니 형 식적인 격려를 하는 것이다.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 오글거렸지만 나는 꾹 참고 그 녀에게 절했다.
내가 일어나자 고운이 함을 받아들 었다.
이제 정말로 갈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슬쩍 고개를 들자 엄마 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
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의 눈동자가 언뜻 슬퍼졌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거라.”
엄마가 조용히 중얼거린 말이 꺼져 가는 촛불처럼 희미했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말이 왜 마 음에 박히던지.
괜히 눈앞이 뿌예지는 것 같아 나 는 눈을 깜빡였다.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까지 끝냈는 데 월 또 서러운 얼굴이야.
심호흡을 한 나는 한 손에는 함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고운의 손을 잡 았다.
저번에는 제대로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 무작위로 떨어졌지만, 이번에 는 다르지.
[실바누스의 왕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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