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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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우리는 종종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고,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2' 01 느 세월과 함께 쌓인 지혜만
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다행히 우리의 조상들은 후손들을 걱정하여 많은 지혜들을 남겼지만, 멍청한 우리들은 그마저도 잊고 살 다가 큰 코 다치곤 한다.
그러니까 조금 더 간결하게 표현하 자면 이렇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싸그리 무시한 과거의 나에게 찾아가 멱살 이라도 잡고 싶다는 의미다.
사건의 시초는 3일 전의 오후였다. '마마. 저것이 마음에 드셔요?'
미리내가 불러 그의 궁에 갔다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 내부를 구경
할 겸 산책을 하고 있었다.
복도에 장식된 호화로운 장식품들 중 자그만 새 조각상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문 것을 보고 희사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귀엽네.
•••안 돼요!'
그리고 이어진 희사의 말에 조금 의아했다. 희사가 너무 당연한 소릴 했다.
남의 것을 탐낼 생각도 없거니와, 감히 미리내 것에 손을 대겠는가? '그래.'
그래도 걱정돼서 그런가 보다, 하 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 조각상을 지나치는데,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뒤를 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희사는 분하다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치뜬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쿵, 우리 마마•••
그때 불길함을 느끼고 막았어야 했 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냥 또 희사
가 난리를 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희사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미리내의 궁에서 돌아온 이
내 궁에는 새 조각상들이 산더미처 럼 쌓여 있었다.
'이것은 순금이고, 이쪽은 도자기. 이건 청동, 보석들로 장식하고 비단 띠를 둘렀어요. 아, 한 가지 재료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것도 있는데
희사와 다른 궁녀들은 신이 나서 내게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몇 명을 갈아 넣었 을지 모르는 양과 값어치가 얼마일 지 가늠도 가지 않는 광택을 멍하니 바라보0갔다.
미리내의 궁에 두 번 오가기 싫어 지루한 시간을 기다렸던 과거의 내 노력이 휴지 조각이 되었다. 소가 도망간 외양간을 보는 농부의 심정 이 이랬을까?
저 선물은 분명 황제든, 미리내든 가람이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 손에서 나왔겠지.
자라리 나를 저잣거리에 세워 두고
이놈 좀 보라고 소리를 질러라. 이 렇게까지 전방위로 우리 총에받는 마마 좀 보시라고 돈지랄을 해야겠
삐걱삐걱 고개를 돌리는 나와 눈이 마주친 희사가 환하게 웃었다. '다 마마 거예요!'
그 환한 웃음에 나는 약간의 회의 감에 빠졌다.
에는 참 착한데•••
'그래. 고맙다' 결국 나는 별수 없이 웃으며 그
일을 넘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게 끝이 아니었다.
그 일이 끝나고 지금까지 이틀. 48 시간이 간신히 지난 지금.
모두가 내게 '초비 마마께 줬다 뺏 기' 놀이를 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간식 드실래요?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러겠다고 말 하면 안 된다며 딱 잡아뗀다. 그러 고는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보는 것이다.
처음 한둘은 이상한 눈으로 보고 넘겼던 나는 곧 그 모든 일들의 공 통점을 찾았다.
•••희사가 한 거랑 똑같잖아?'
모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마마 다 가지세요!' 하며 내가 본래 원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떠넘기는 것 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궁의 곳곳을 장식하고도 한참 남아 창고에 처박혀야 했던 새 조각상의 양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내가 희사와의 일에서 주목해아 했 던 것은 선물을 왕창 떠넘기는 게 아니라, 그 발단이 되었던 대화였던 것이다. 별일이야 있겠나. 나는 그렇게 생 각했었다.
'이제 보니 사망 플래그네.'
잔1장. 자라리 무슨 일이 있을 거라 호들갑을 떨었어야 했다.
아예 괴롭히는 것이면 또 모를까, 나를 걱정해서 하는 일들에 마냥 모 질게 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성가시기 도 했다. 그냥 나를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거니?
이 모든 일들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더 나빠질 것이 뭐가 있나 하지만 불행은 생각보다 장의적이다. 서라국은 궁인들에게 야박하지 않 지만, 일개 궁녀인 희사가 온갖 보 석이 장식된 새 조각상을 왕창 사들 일 만큼은 아니었다. 그 말인즉, 이 모든 상황을 윗전들 도 알고 있는 것이다. “마마. 선비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징그럽게 달라붙는 사람들을 피해 고운 하나만을 데리고 방에 처박혀 있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궁녀들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명 하면 피할 수나 있지. 가람은 그릴 수도 없다.
나는 궁녀의 안내에 따라 가람이 있는 방의 문을 열었고, 가람이 나 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저기, 산아•••  너도 설마?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 그래. 설마가 또 나를 잡았군.
“식사는 반 시진(1시간) 전에 하였 습니다. 간식도 방금 모두 먹었고요. 감사하게도 요즈음 많은 분들이 저 를 살뜰히 챙겨 주시어 그리 바라는 것도 없군요.” 속이 빤히 보이는 가람의 수작을 나는 칼같이 잘랐다.

가람은 빠르게 쭈그러들었다. 그리 놀라운 결과도 아니었다.
가람은 제일 난폭해 보였지만 동시 에 제일 물렀다.
발 뻗을 자리를 기가 막히게 고른 나는 종종 가람을 다른 이들보다 박 대하고는 했다.
그래도 시무룩한 얼굴이 또 조금 가여워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는 의자에 앉았다.
무일 하시려는지는 압니다. 허나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리던 가람이 내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
다.
•••모를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0은하게 웃으며 묻자 가람이 얌전 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숨 을 푹 내쉰다.
“눈치도 빠르구나.'  모르는 게 이상하지만요. 그 말을 속으로 꾹 삼켰다. 가람이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육아는 정말 어렵군. 다른 이들은 대체 무슨 수로 아이를 기워 낸단 말이야?”
“응? 뭐 줄까?"
“다 들립니다.”
“네가 이린 나이에 벌써 귀가 먹지 는 않았을 테니 그렇겠지?” 알고도 그런 소릴 하나? 급격히 피곤해졌다. 가없고 나발이 고 이제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냥 가라고 하면 입이 댓 발 나와서 한 시간은 꿍얼댈 텐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금세 좋은 생 각이 났다.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면 되지? “산책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산책? 나랑?”
운을 떼자 가람이 반색한다. 내가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하자고 말한 적이 없다 보니 꽤 기쁜 모양이다. 나는 자식의 치과 치료를 위해 돈 가스 먹으러 가자고 속이는 어머니 의 마음으로 말했다.
“예. 근처에 예쁜 후원을 보았습니
다.” 가람은 두말하지 않고 나를 따라나 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의 얼굴에 띄워졌던 웃음에 쩌적 금 이 가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아, 아니다.”
부러 못 들은 적 되묻자 가람이 입을 다문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미리내의 궁인 화령궁은 그리 멀지 않고, 그곳의 후원이 아름다우니 틀 린 말은 아니지.
둘은 붙기만 하면 싸우니, 이번에 도 투닥거리게 두면 알아서 내게 관 심을 끊을 것이다.
매번 생각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 물이야. 무섭다고 덜덜 떨던 게 엊 그제 같은데••
“산야?”
0
그리고 마침, 궁녀- 대동하고 궁에서 나오는 장발의 남자가 보였 다.
무표정하던 그가 나를 보자 은은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미리내는 가람에게 무미7닌조하게 인사하고는 몸을 굽혀 나와 눈높이 를 맞췄다.
“이곳엔 웬일이니. 그것도 후원에? 나를 찾지 않고선.”
“후원이 아름다워 산책하려는 생각 이었습니다. 다망하신 귀비 마마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에••
“우리 산야는 마음이 깊기도 하지. 하지만 네 방문이 어찌 귀찮은 일이 겠니? 마음 쓰지 말고 편히 오거 라.”
응. 이제 사실 조금 알아. 그래서 별걱정 없이 온 거다.
“산야가 이곳을 또 찾을 리가 없을 텐데•••
역시나 타이밍 좋게 가람이 투덜거 렸다. 올라가 있던 미리내의 입꼬리 또한 쨍하게 얼어붙었다.
그래. 둘이 싸워. 난 간만에 좀 평 화로워 보자.
•••정말 아이 교육에 좋지 않지. 저리도 난폭하니 아이가 숨이라도 쉬고 사나.”
미리내는 지지 않고 마주 중얼거리 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귀비 마마?”
“이런, 들으셨나 봅니다. 그저 사실 을 말하였을 뿐인데.”
벌써부터 가람의 주위에 아지랑이 가 일렁인다. 나는 슬금슬금 물러났
다.
“귀비께서아말로 석상마냥 속내를 하나도 드러내지 않으시니, 아이가 매번 귀비를 뵐 때마다 닮아 가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는 반면교사라는 것이 있습 니다. 제 감정 하나 갈무리하지 못 하고 날뛰는 것이 꼴사나워 닮지 말 아야겠다 생각한 모양이지요.”
그런데 어째 싸움의 핀트가 이상했 다.
왜 내가 기껏 도망쳐 온 내용이 다시 나오는 거지? “저어, 저는 괜찮습니다.”
“반면교사? 하. 웃기지도 않지. 나 만큼이나 산아가 의지하는 이가 또 어디 있습니까? 이리도 위축된 아이 가 내 앞에서는 편안해 보인단 말입 니다.”
“저는 위축되지 않9갔-
“이 아이가 얼마나 제 상처를 잘 감추는지 모르십니까? 산야가 입궁 하였을 때 제 주제를 알고 조용히 살라 말하셨지요. 그 말이 여태껏 상처가 되어 아이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을 거란 생각은 안 하십니까?”
“아니요. 상처 되지 않았습-” “산아. 그리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
다.”
자꾸 끊기는 말에도 노력의 끈을 놓지 않는 내게 미리내가 측은히 말 했다.
그 모습에 나는 잠깐 골이 띵했다. 충격은 아니었다. 다만 꾹꾹 눌러 오던 게 훅 치고 올라온 것은 맞았 다. 내가 괜찮다고 지금 몇 번을 말했 지?
어쩌면 이렇게 귓등으로도 안 듣 나. 누글 위한 건데?
그래도 나는 깊게 심호흡했다. 나 쁜 의도는 다들 아니고, 잘만 말을 하면••  “그래. 너는 조용히 있어라.” 뭐 이 새끼야?
부지런히 이어지던 사고가 딱 멈췄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참 싸우 던 미리내와 가람이 나를 돌아보았 다.
둘 다 놀란 얼굴이다. 아마 내 표 정 때문일 것이다.
습관처럼 입가에 항상 띄우고 있던 대외용 미소가 흔적조차 없다.
하지만 굳이 다시 웃고 싶지도 않 았다.
사람이 좋게 좋게 가려고 해도 들 어 먹질 않아.
나는 싸늘한 무표정으로 미리내와 가람을 천천히 보았다. “더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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