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0 0 0
                                    


그 얼굴을 본 나는 재차 말했다.
“하나도 안 못생겼어. 눈도, 코도, 입도 예삐.”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는 사랑받아 아 한다.
이제 고작 열두 살이나 되었을 법 한 어린아이가 제 외모를 수치스러 위하다니. 그게 가당기나 한 일인 가?
“정말. 다 예삐.”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의 얼굴 을 놓아 주었다.
고운이 제 입을 가린 채 주춤 뒷 걸음질 졌다. 드러난 얼굴이 새빨갛 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닙니다.”
“거짓말 아니야. 너 정말 예삐.  고운의 입이 뻐끔거리다 이내 꾹 닫혔다. 누가 보아도 부끄러워하는 어린아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이 바뀔 때까지 매일 말해 줄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믿을 수 있도
나는 눈을 접이 부드럽게 웃었고, 고운이 어느새 잊어버린 화제를 다 시 꺼냈다.
“화룡궁. 너 맞지.”
•••아닙니다.” 고운이 덜컥 흔들렸다. 그래. 그냥 넘어갈 줄 알았겠지.
하지만 어쩌나. 내가 화제가 조금 만 변해도 그 전의 화제를 잊어버리 는 어린아이가 아닌 것을.
별다른 말 없이 고운을 가만히 바 라보자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2' 1-으 꼼지락댔다.
꽤나 심각한 내적 싸움을 하고 있 는 듯 고운이 한참을 입을 우물거렸
다.
•••정말 아닙니다.” 하지만 재차 입에서 나온 것은 그
말이었다.
끝이 파르르 떨린 말에 나는 조금 의아한 얼굴을 했다.
저 애가 저렇게까지 죄책감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지기려는 게 무엇 인가?
나는 조금 더 기다렸지만 끝내 고 운이 사실을 털어놓는 일은 없었다.
정말로 그가 아니라기엔 보여 준 반응들이 너무 적나라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이내 이유인 듯한 것을 하나 찾아냈다.
'소원을 들이준다고 했지.' 무언가 꼭 빌고 싶은 것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안 되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명령을 어 긴 것도 문제이고.
••••예외를 만들면 안 되는데.' 결국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도 사람인지라 언제나 규율에만 맞 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만 봐주자.' 정말로 중요한 소원일지 혹시 또
모른다.
그럴 경우라면 얼마든지 내게 말해 도 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제대로 주지 못한 내 잘못이니, 딱 한 번 만
'정말로 이번만이아.' 나는 재자 다짐하고는 침대에서 일 어나 흔들의자에 앉았다.
끼익, 하고 흔들리는 의자에서 차 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당연히 내가 잘 줄 알았던지 고운 이 의아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손을 뻗어 내가 들고 있던 핀으로 그의 한쪽 머리를 넘겨 주었다.
“잠이 안 와.”
내 말에 고운이 픽 고심하는 얼굴 을 했다.
한참을 무엇을 고민하던 그가 심각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업어 드릴까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콩알만 한 게 뭐라고?
고운은 콩알치고는 힘이 과하게 세 고, 그가 콩알이면 나는 깨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는 우습고도 귀 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참을 큭큭대 던 나는 내가 왜 침상에 눕지 않고 흔들의자에 앉았는지 깨닫고 말았
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
다. 그 말에 고운이 의아한 얼굴을 했 다.
나는 심란한 얼굴로 웃어 보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의 한쪽으로 다 가갔다.
면경이 달린 화장대, 그리고 여러 가지가 놓여 있는 탁자 앞에 선 나 는 길쭉한 상자를 살짝 어루만졌다.
내 온기가 닿자 상자는 달각, 소리 를 내며 열렸다.
받은 선물 중에 있었던, 서 대륙에 서 온 마법이 걸린 보석함이다.
보석함이 열리며 드러난 것은 황금 빛의 비녀였다. 오른쪽 끝에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로 보 이는 구슬을 물고 있는.
내가 울었을 때 미리내가 내 손에 쥐여 주고 간 비녀.
황제와 혼인해 황궁에 들어온다 해 서 그들이 모두 황가의 성인 '아륜' 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가의 성을 받은 이들은 희귀했 고, 그런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이 용비녀였다.
나는 궁에 들어오며 '여란'을 비렸 지만 '아륜'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비녀를 사용할 수 없었고,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미리내에게 가야 해.' 나는 착잡하게 사실을 상기했고, 그리하여 다시금 닭의 모가지를 비 틀어도 오는 내일을 오지 말았으면, 하고 멍청하게도 바라고 말았다. 미리내의 궁인 화령궁은 그 이름에 서부터 권세를 나타냈다.
서라국에서 용은 황제를 상징한다. 이능이 용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고, 그 탓에 가장 신성시되는 용을 황제 와 동일시한 것이다.
황제의 궁 이름이 화룡궁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본래 화령궁은 황후의 궁이었다.
'롱과 가장 비슷한 어감인 '령'이 들어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황제와 가장 가까운, 황제 다음으 로 가장 권세 높은 자의 궁.
미리내는 황후를 밀어내고 그 자리 에 앉았다.
원작을 읽은 나에게는 용인 미리내 만큼 화룡궁이 어울리는 이가 없고, 용의 사랑을 받은 황제만큼 화령궁 이 어울리지 않는 이가 없지만•••  '지금은 둘 다 싫다.
언제는 아니었나만은.
화령궁, 미리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한 문 앞에서 나는 소리를 뺀 한숨을 쉬었다.
오늘 내 뒤에는 내 궁의 궁녀들이 주렁주렁 따라와 고개를 숙이고 있 었다.
미리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궁녀들이 내 시중을 들게 했다.
그리고 이 황궁 내에서 궁녀들。
대동하고 다니는 것은 황제밖에 없 었다.
1-
나는 괜찮다- 1- 뜻을 최대한 피력했 지만, 미리내는 강경했다.
그 덕에 이곳으로 걸이오며 시선이 란 시선은 모두 받은 나는 반쯤 해 탈한 상태였다.
나를 흘끗 바라보았던 시종과 궁녀 와 여러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 중 후궁들을 모시는 사람은 몇이며, 쪼 르르 달려가 말을 전할 사람은 몇일 까?
이제는 내가 이들의 시선을 피하려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 다. 아
무리 거절 의사를 피력해도 어쩌
나. 힘이 없는 것을.
“고하여라.” 나는 문을 지기는 궁녀에게 말했 고, 그녀는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 고는 내가 왔음을 미리내에게 알렸 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나는 어제와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탁자에 앉아 있는 미리내를 발견했다.
그는 안대를 벗고 있었다.
'안 들어갈래.
정말이지,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뛰어가고 싶었다.
왜? 왜 안대를 벗고 있지?
“마마.”
그 자리에 굳은 나에게 미리내의 궁녀가 작게 종용했다.
기실 문이 열린 이상 뒤돌아 도망 칠 수는 없었다.
“귀비 마마를 뵙습니다.” 나는 뱀의 입 안으로 걸어 들어가 는 심정으로 미리내의 앞까지 걸어 가 예를 표했다.
내 인사에 미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딱딱하게 인사할 필요 없이 요, 산아.
격식을 자린 약식 예법이 어디가 딱딱하다는 걸까. 내 말투?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목을 다듬으 며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썼다.
무심하고 무뚝뚝한 말투를 쓰는 내 말이 귀비 마마의 귀에는 놋대야를 긁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예. 귀비 마마.”
웃음기가 섞인, 내 입에서 나왔다 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드러진 목소리가 나왔다.
내가 들어도 가증스러운 그 목소리 에 어깨가 떨렸지만 몸에 힘을 주어 참아 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내가 자리에 앉자 미리내가 한 손 으로 덕을 괴고 몸을 내 쪽으로 내 밀었다. 반쯤 휘어진 연하늘색 눈이 반짝 빛났다.
색채가 옅은 그 눈동자에 나는 일 순 당황했다.
무엇을 기대했기에 저렇게•••••• 쥐 를 눈앞에 둔 뱀 눈빛을 하고 있을
까.
“저번의 무례에 대해 사죄를 드리 러 왔습니다. 또, 그때 주셨던-
“아. 예령이 다과상을 들인다고 하 는군요. 먹이 보고 싶은 간식이 있 나요?” 내 말을 미리내가 아주 부드럽게 잘랐다.
그 덕에 나는 말하려던 것도 잊고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런 내 얼굴 에 미리내는 싱긋 웃었다.
•••정과 종류가, 입에 맞았습니 다. 그래서, 그때 주셨던 비-
“정과. 어떤 것이 좋을까요? 사과? 따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 지 말해 주세요. 아, 그렇지만 배숙 은 먹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배를 먹으면 산아의 몸이, 저리 가! 싫 어! 한답니다.” 미쳤나?
나는 순간 당혹스러운 얼굴을 숨기 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나온 표정이 었다.
대체•••••• 무슨, 한 거지?
벌써 말이 두 번째로 끊겨 비린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미리내는 그 얼굴에 픽 웃고는 궁 녀에게 상을 내오라 이야기했다.
“숙수가 아주 벼르고 있답니다. 산 야가 다시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 는지 몰라요.” 미리내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이야 기했다.
아까 내가 이야기하려는 화제는 안 중에도 두지 않은 채였다.
그 모습에 나는 간신히 다시 얼굴 을 갈무리했다.
이 방식은 몇 번 읽어 보았다.
미리내가 정적과 말싸움을 할 때 써먹는 방법이었다.
상대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그 방법에 저런, 무어라 명명 하기도 해괴한 동화구연은 없었지
내 눈높이를 맞추었다고 생각하기 로 했다.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위 비리고자 다른 화제를 끄집어 냈다.
미리내가 이 방법을 쓰는 경우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였
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역시 어젯밤이 문제였나?
아니, 야. 근데 좀 상식적으로 생 각해 봐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 잖아.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 이 스쳐 지나가며 엉겼다.
내가 입술을 깨물고 생각을 정리하 려 했을 때, 문이 열리며 궁녀가 상 을 들고 들어왔다.
“아, 왔느냐.” 그 궁녀의 모습에 미리내는 굳이 몸을 일으켰다.
상전인 그가 궁녀가 들고 오는 것 을 받을 필요가 없을 텐데도 그랬 다.
그 덕에 그의 몸이 반쯤 일으켜지 며 미리내의 무릎에 있던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네모난 그것은 아주 눈부셨고, 나 는 손쉽게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제 보았던 그 휘황찬란한 동화책 이었다.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