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셨던 약입니다.” 초은의 궁.
나는 반색하며 그녀가 내게 내미는 작은 병을 받아 들었다.
이 약을 받는 것이 오늘 외출의 목 표였다.
약이 꽤나 비싸 구하기 어려웠다는 초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홀리며 나는 병 안에 들어 있는 것 을 접시 위에 조금 덜었다. 내가 생각한 건 흰색의 가루였는데, 나온 가루는 갈색이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다 고개 를 가웃했다.
'이게 맞나.'
전생에서 범죄 행위는 하나도 하지 않고 늘 올바르게만 살아왔다.
사실 이런 건 처음 본다.
“복용법은 무엇인가요?”
“가루를 태워 들이마시라 하더군 요."
매체에서 본 건 끓여서 주사하는 거였는데, 약을 들이마시기도 하나?
사실 아주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 대륙 사신과의 교류와 약의 효능이 우연의 일치라고 넘어 가기엔 지나치게 겹친다.
맞는 것도 같은데.
“어찌 그러십니까?” 고민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던 나에 게 초은이 물어 왔다.
“이건 아마••• 아편(阿片)이라는 것일 덴데 말입니다.” 아편. 그러니까 마약. 지구의 역사에서도 있었던 일이 비 슷하게 일어날 모양이다.
“복용한 자를 황홀경에 이르게 하 고 고통을 잊게 하지만 중독성이 강 하지요. 계속해서 복용한다면 금세 백치가 되어 버릴 겁니다.”
내 설명에 초은이 그대로 굳었다. “허면 독약(毒藥)이 아닙니까?” “마약(痲藥)이라 부르지요.” 지구에서도 아편은 서양에서 동양 으로 넘어온다.
서 대륙의 사신들과 만났다고 했으 니, 그들을 통해 아편을 얻은 게 아 닐까 싶었다.
하지만 굳이 왜?
지구의 역사에서 아편은 상대를 굴 복시기는 데 쓰였다.
아편의 등장으로 중원에 살던 이들 은 많은 재산을 아편의 구매에 써야 했고, 약에 중독되이 망가져 비렸으 니까.
나는 이게 의문이었다.
기윤은 서라국인이고, 여란 가 또한 결국 서라국에 속해 있다.
나라가 망한다면 그 가문의 권세가 아무리 대단한들 멀쩡할 리가 없다.
기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또한 순순히 평민들에게 약을 유출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명목으로, 약값이 아주 비싸다고 했지.
서라국은 다른 나라와는 그다지 교 역하지 않았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나라 안의 시장이 활발했다.
그 덕에 귀족들 또한 장사를 천대 하지 않0갔고, 도리어 각 가문에서 그 게 상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正 이었다.
즉, 돈이 많은 평민이 그다지 없다 는 의미였다.
'귀족들을 겨냥한 거야.'
귀족들을 아편에 중독시켜서 자신 에게 약점을 잡힌 상대가 되게 만들 려는 거다.
마약은 의존도가 강하고, 한 번 중 독되면 약 없이 버틸 수 없으니까. 내가 생각한 것을 초은에게 쭉 설 명하니 점점 그녀의 일굴 표정이 요 상해졌다.
“허나, 아무리 평민의 중독을 막았 다 하여도 큰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이 나라의 정치를 이끄는 것은 귀 족들이니, 그들이 모두 약쟁이가 된 다면 곤란해질 것은 맞았다.
내가 수긍하자 초은의 이마에 깊게 골이 패였다.
“저는 그가 나라를 뒤흔들 만큼의 일을 벌였다는 것을 믿기가 어렵습
니다.” 그런가. 별로 그 심리까지 생각하지 는 않아서.
적당히 넘기려는데, 초은의 다음 말 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폐하의 이능이 도화(桃花)이지 않 습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도화?' 아, 설마 도화살?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는 건가?' 너무 태연하게 말해서 내가 더 당 황했다. 아무도 모르는 황제의 비밀 아니었나.
내가 인상까지 찌푸리며 고민하자 초은이 이상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모르셨습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말끝을 흐리던 나는 결국 그녀에게 물었다.
“마마께서야 말로 그것을 어찌 아 셨습니까?”
내 질문에 초은은 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역대 황제 폐하께서 만인에게 사 랑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지요. 그것이 이능이라는 것은 폐하의 최 측근만 알고 있는 것이기는 하오나, 마마께서는 당연히 아실 줄 알았습
니다.” 아, 뒷말은 뺐구나.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은 알려지 지 않았고, '만인에게 사랑받는다'라 는 것은 제법 알고 있는 사람이 있 는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나는 잠시 마음을 놓고 이름에 대해 신기해했다.
'이걸 이렇게 표현하네.' 내가 늘 불렀던 것처럼 '모두에게 사랑받고 본인은••• ' 하고 구구절 절 부르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기는 했다.
'원작에서는 어떻게 나왔었지?' “그러고 보니 생각이 안 나네."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 다.
명칭 하나 생각나지 않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에, 그것도 이상하군요."
“역시 그렇지요.”
후궁들처럼 온 마음을 다해 황제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기윤도 결국엔 예화를 해질 수 없을 텐데.
만병통치약의 주 구매자는 나이 들 고 돈 많은 귀족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들은 권력의 정점 에 앉아 있다.
가문의 후계자가 있고, 관료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넘쳐나니 자리는 금세 채워지겠지만 그래도 본래 그 자리에 앉은 이가 가진 만큼의 권력 을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아마 권력을 잡은 관료들의 반대를 뿌리쳐야 하는 일을 계획 중
인 게 아닐까••• 그 정도의 일 중에 반역 말고 뭐가 있나 싶나만.
'지나진 추측인가.'
“제 주장이 틀릴 수도 있지요. 저도 확실치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만약 아편일 경우에 그렇다는 의 미입니다. 진정 그릴 수도 있고, 아 닐 수도 있지요.”
정말 단순히 효과가 좋은 약을 모 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과장해 비싸게 파는 것일 수도 있지.
현대에서도 한때 호랑이 연고가 유 행하지 않았나.
귀족들이 많이 구매한다면 여란 가 의 재산이 늘이나 좀 골지 아프기는 하겠지만, 아편인 것보다야 나있卍다.
“그런 가능성에 매달리기엔 마마께 서 말씀하신 피해가 너무 크지 않습
니까.”
, 그렇지. 맞는 말이지.
나는 초은의 말에 조용히 수긍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당장 방법이 없는
걸.
“좋은 생각 없으십니까?”
“안타깝게도 그리 총명하지는 않군 요."
배시시 웃으며 나름 예쁘게 물었는 데, 초은은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 어갈 태도로 받아졌다.
댁이 안 총명하면 내가 지금 이 이 아기를 왜 하고 있나.
그냥 확 가 버릴까 보다.
내가 꿍일대고 있자 초은이 한숨처 럼 말했다.
“마마께서도 인간이긴 한 모양이군
요.”
“무슨 의미이십니까?”
“진심으로 말하건대, 용이신 줄 알 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 는 소리야.
노골적인 내 시선에도 초은은 태연 했다.
“합리적인 의심이지요. 얌전하기는 해도 그 외에는 특별할 것 하나 없 던 분이 난데없이 성격이 바뀌셨는
데. 의심을 하지 않고 배기겠습니
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나는 또 수긍했다. 그러자 초은이 신나서 입을 열었다.
“서 대륙에서 온 마약에 대해 이리 잘 아시는 것도 의아합니다. 마마께 서는 추측이라 하셨지만, 확신에 찬 듯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어니 서 듣고 오시는 겁니까?”역시 용이 맞는 것••• 초은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나를 향했을 때, 나는 입꼬리만 길게 늘여 웃어 주었다. “그랬으면 제가 이리하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깔끔히 수긍한 초은이 내게 물었다.
“하여, 진정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그 질문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확인해 봐야겠지요?”
'해는 동쪽에서 뜹니다' 같은 말을 한 나는 한가롭게 다완을 들었다.
1-
그런 나를 초은이 어이없다-1- -入 바라보았지만 모른 척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나는 잠시 멈칫 하다 물었다.
“그러고 보면, 꼭 수국차만 내어 오 시는 듯합니다.” 그 말에 우아하게 다완을 들던 초 은이 멈칫했다.
•••큼. 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입니다.” “그래요?” 단 걸 좋아하나?
그러기엔 매번 내온 당과들에는 ^ 도 안 대던데.
'수국차만 좋아하나 보지.'
별생각 없이 넘긴 나는 잠시 다완 을 내려다보았다. 맑은 찻물이 조금 찰랑였다.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아직 강한 맛에 익숙하지 않은 이 린에 입맛이라 그런지, 녹차나 백자 같은 종류는 쓰기만 했다.
이거 참 맛있는데. 설탕도 넣지 않 고 달달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나는 고개 를 들이 물었다.
“수국차가 조금 있다면 나눠 주실 수 있나요?” “예, 그러지요.” 오, 깔끔해.
수국자는 재배도, 생산도 어려워서 제법 비싼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주 겠다는 말을 턱턱 쉽게도 한다.
약간 감동이네.
흐뭇하게 웃은 나는 궁녀를 부르려 던 초은을 잠시 만류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반드시 수국자여아 합니다.”
•••? 예. 압니다만••• “수국자 말이에요, 수국 자.” 계속해서 강조하자 초은이 이상하 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수국을 따서 말린 자를 나누어 주 세요. 아시겠지요?” 그 얼굴에 나는 강하게 쐐기를 박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