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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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유리를 내보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소파에 늘어졌다.
아, 피곤해.
엄마한테 잘 다녀오겠다고 그렇 게 큰소리를 졌는데, 벌써 엄마 보
고 싶다.
그때,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하. 고운입니다.” “0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렸다. 고운은 늘어져 있는 나를 보고 픽 웃더니 내게 다가왔다.
“곤하신 모양입니다.”
“ 0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고는 한 손을 올려 들거렸
다.
“나 좀 들어서 옮겨 봐. 손 하나 까딱 못 하겠어.
이건 내가 어릴 때 가끔 하던 장 난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고운은 곧이곧 대로 나를 안아 들려다가 힘이 없어 실패하곤 했다.
당황한 어린 고운의 얼굴이 생각나 웃는데, 몸이 번쩍 들렸다.
고개를 올리니 고운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니, 너•••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으니까
요."
고운은 태연히 대답하며 나를 침대 에 조심히 눕혀 주었다.
그러면서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 았다.
고운이 잠시 몸을 숙였다 일어난 것만으로 무향이던 침구에서 옅은 향이 맴돌았다.
무슨 체향이 이렇게 좋아, 하고 생 각하던 나는 정신을 자렸다.
'훅 들어오네.' 이런 사소한 것에 심장 뛰는 내 자신은 저 멀리 밀어 비리도록 하
자.
“이제 어찌하실 계획이십니까?”
고운이 그 예의 낮은 목소리로 그 렇게 물었다.
아, 맞아. 너는 이곳에서 내 호위 가 아니니 설명을 해 줘야지.
습관이 들어서 그만.
나는 몸을 일으켜 앉은 뒤 내 옆 자리를 두드렸다. 고운이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와 시선이 맞았다.
“음, 일단 플린트 공작령에 있는 용의 등지에 갈 거라는 건 말해 줬 있지?”
그래. 그렇다면 웬만해선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내 의견도 들었겠구나.
방금 전의 일이 생각나 나는 이설 프게 웃었다.
••일단, 그 방법은 포기해아 할 것 같아. 내가 아무리 굽히고 들어 가도 선선히 내어 줄 것 같지가 않
마냥 비위를 맞추니 주기에는 그들이 너무 기고만장하다.
어디까지 요구할지도 모르겠고, 마 냥 농락만 당하다가 한 달이라는 시 간이 끝나 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좀 배짱을 부려 보려고
해.”
조금 도박이기는 했지만, 아주 이 유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드레스 이야기를 공작 부인이 꺼낸 것은 조금 의외인 일이었다.
선왕 부부라면 제 아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나를 며느리로 들이 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공작가는 왕실과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으니
까.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건 내가 왕국에 남기를 바라는 것 같은
'왕실과 결혼시켜서라도 내가 이곳 에 남는 것에 대한 이득이 더 크다 는 거지.'
서 대륙의 사람들은 동 대륙에  물지만 왕래하니 황가의 힘도, 나라 의 부강함도 알 것이다.
확실히, 내가 왕비가 된다면 얻을 이득이 크기야 하지.
'그래도 멍청이 같긴 해.'
그놈의 체면이 뭐라고, 제게 조금 더 유리하다 싶으니 마음을 밉게 쓰 는지.
타국에서 고개 뻣뻣이 쳐들고 온 건 괘씸한데, 나라 힘이 강한 건 아 니까 남게는 해야겠고.
며느리 기 죽이는 시어머니 짓을 하겠다는 건가?
고이고이 큰 공주님이라 마냥 휩쓸 려서 울 줄 알았나.
'어림도 없지.' 픽 웃자 고운이 고개를 기울였다.
앗자, 이야기 중이었지.
“미안해. 잠깐 생각하느라.”
“괜찮습니다.”
가법게 나를 용서한 고운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일주일 정도를 칩거할 생각이야. 궁인의 수도 줄이고,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하려고.”
“그러고 나서, 방법을 찾았다고 할 거야.” 제법 폭탄선언이었는데, 고운은 여 전히 덤덤한 낯이었다.
엄숙히 말한 나는 조금 민망해졌
다.
그래도 꽤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 다.
공작가가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능을 복구할 방법을 찾 는다는 것이고, 그건 곧 그들이 지 기고 있는 용의 등지의 출입과 직결 됐다.
그렇지만 내가 이미 방법을 찾았다 고 한다면, 제법 조급해지겠지.
그러면 그때, '아, 그럼 우리 조상 님 무덤에나 한번 가 볼까요.' 하고 용의 등지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 까.
혼인은 불가능하겠지만, 사업이나 외교 관련해서 대화나 좀 나누자는 말과 함께. “괜찮니?”
“뜻대로 하십시오.”
고운은 곧바로 수긍해 주었다. 간 결한 대답이었지만 내 말을 계속 경 청한 후 한 대답이어서 그런지 흡족 했다.
“허면 그 일은 괜찮으십니까?” “어떤 일?”
“그들이 서라국과 실바누스의 국혼 을 바라고 있는 듯한데.” 그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았다.
눈치도 빨라라. 너도 다 알아들었
“서 대륙 언어는 언제 배웠어?" “이곳으로 오기 전 배웠습니다.” 장난스러운 물음에 정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화제를 전환하자는 의미였지만 고 운의 얼굴이 진지했다.
그냥 넘어가 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기분은 나쁘지만 계속 거 부하는 것 말고 방법이 있겠니.” 아까 유리가 왔을 때, 나는 유리에 게도 이 계획을 이야기해 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분간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적 을 하자고.
내가 오늘 한 말로 공작가는 안 그래도 탐탁지 않았던 나를 더 미우니 하게 될 것이다.
힘이 약한 유리는 함부로 공작가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 다.
그게 주목적이었지만, 결혼 운운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날 식장에 끌고 가는 것도 아닌 탓에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곤란했
다.
그들이 내 눈치를 좀 더 보기를 바라야지.
내 대답에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고운이 입을 열었다.
“허면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것은 어떠합니까.” “어떤?”
“저와 약혼하셨다고요.” “어, 괜찮 어?
다시 슬금슬금 누우려던 나는 퍼뜩 놀라 일어났다.
고운은 내 반응에 놀라지도 않았는 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0갔다. “뭐라고?”
“옳게 들으셨습니다.” 아니, 그러면 더 문제인 것 같아.
내가 입만 뻐끔대자 고운이 설명을 덧붙였다.
“서라국과 서 대륙의 교류가 드무 니 당장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겠 지요. 설령 후에 그들이 알아낸다 하더라도 제 부족함으로 파혼했다 하면 되는 일입니다.” 고운은 태연했다. 괜히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되기야 하겠지만•••  약혼자가 있다고 말한다면, 아무렴 약혼자의 면전에 대고 파혼하라 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혹여 그런다고 해도 확실한 무례이 고 그렇지만, 약혼이잖아.
'나랑 연인인 척을 하자고?'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운을 보 았다. 고운은 조금 의아한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이게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제안인가?
고운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가라 앉아 있었다.
그 위로 지금껏 고운이 했던 행동 들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이상해. 정말 이상해. “정말 그것뿐이야?”
확신과 의심이 섞인 물음이었다. 그런 내 물음에 고운이 픽 웃었다.
“제게는 황궁에 사주단지를 넣어 보라 하셨지 않습니까?”
아니, 잠깐.
“아, 그건-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기도 하셨 지요. 몹시 잘생겼다고도 말하셨고
그만. 입 다물어, 이놈아.
갑작스레 까발려진 과거의 혹역사 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데, 고운이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도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 잠 시 혼약자로 두시는 것쯤은 참아 주 시지요.”
•••너, 자꾸 아까부터 이린에 달 래듯이.” 나는 괜히 불만스레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더 어린애 같네.
“괜찮겠어?”
선선한 대답이 얄밉다. 그 와중에 일굴은 번드르르하니 잘생기기도 했 지.
네가 괜찮다고 해도, 나는 안 괜찮 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운의 얼굴이 새삼 가깝다고 생각 했다.
이것만으로도 시선을 피하고 싶은 데, 이제 바깥에서 얘를 애인이라고 소개해아 한다고?
볼썽사납게 목소리나 안 떨면 다행 일 지경이다.
아, 미치겠네.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을 했다.
고운만 이 자리에 없었다면 당장에 이불을 찼을 것이다.
이제•••••• 그냥, 더 외면하지도 못 할 지경이다. '좋아하는 거 맞네•••
우정으로 포장도 정도가 있지.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이 야.
엄청난 떨림도, 하늘이 날아갈 것 같은 환희도 없다. 정말 멋없는 자 각이다.
씁쓸한 자조와 약간의 후회. 그리 고 눈앞의 사람이 엄청나게 잘생겨 보이는 눈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정말. “너 때문이야, 이놈아.”
작게 중얼거린 말을 기가 막히게 들은 고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젠장. 귀여워.
“어릴 땐 늑대 새끼였는데, 여우가 다 돼서 왔어.” 괜히 얄미워 한쪽 뺨을 꼬집으니 고운이 웃었다. “해서, 싫으십니까?” 야, 야. 잠깐만.
나는 화드득 놀라 고운의 볼에서 손을 뗐다.
어쩌다 이렇게 되긴. 이건 다 저놈 문제다.
“야, 너••
또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것도 모

근1- 눈이 말겠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 물었다.
순수도 죄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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