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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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요구한 것이 무색하게  요구는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좀 과하게. '포래 친구가 업이서, 외로웠었
울먹이며 말하는 엄마의 말을 부정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 다.
다른 대신들이 수두룩하게 있는 데 '아뇨. 이상한 서신이 왔는데 범인을 찾으려고요.' 하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랬더니 엄마는 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고, 나는 몹시 당황스러 웠다.
후에 엄마를 찾아가 아니라고 해 명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나는 설명을 포기하고 조건 이나 내걸었다.
열두 살의 귀족가 여자아이를 모두
모아 달라. 그 중에서 내가 직접 뽑 겠다.
꼭 열두 살의 아이들만 모아 달라 는 말에 엄마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이 황궁에 오기 전까지 조금 곤혹스러운 시간 을 보내아 했다.
다들 어찌나 나와 놀아 주지 못해 애쓰는지, 마주칠 때마다 그 빌어먹 을 어색한 미소 좀 그만 보고 싶다. '어째 이 어린애가 나은 것 같아.' 서신을 주고받는 정제 모를 여자
o十0
그 며칠 동안 서신은 계속해서 도착했고, 나는 답신을 썼다.
몇 번의 서신으로 내가 알게 된 것은 이 애가 생각보다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몹시 어른스러웠다.
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기는 했지 만 내 이야기에 기가 막히게 호응0  해 주었다.
말을 꺼내게 만드는 그 기묘한 화법에 어느새 나는 이 아이에게 미주알고주알 사소한 것들을 털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황궁에 입궁하 기 전날, 나는 서신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제 내일이면 널 보겠구나.]
서신은 재미있었지만 역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한 번 이야기를 하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 이 그랬다.
이제 내일이면 황궁에 올 테니 만날 수 있다는 의미였는데, 도착 한 답신이 의미심장했다.
[어떻게?]
긴 서신의 답장이 고작 그 한 마 디였다.
조용하고 상냥하던 아이가 그런 답신을 보내니 나도 당황스러웠다. 서신을 확인할 생각에 들떴던 나 는 서신을 손에 들고 어정쩡히 굳 어 버렸다.
“마마, 기 침하셨습니까.”
문 밖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 다. 나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 했다.
문을 열고 내 침실로 들어온 서 연이 내 손에 들린 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또 그 서신이군요.”
서연은 아침마다 도착하는 이 정 체 모를 서신을 싫어했다.
서신의 내용에 악의는 없지만, 누 군가 내 방에 몰래 들어온 것이라 면서.
“분명 빈틈없이 지켰거늘•••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심각했다.
“폐하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0} 0}니  서연의 말에 나는 순을 내저었다.
오늘 올 아이들 중에 서신의 주인 이 있겠지.
그중에 없다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다.
“하오나 마마.”
“폐하께서는 이미 내 안전에 무엇 보다 힘쓰고 계시니 괜찮을 걸세.” 일마 전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황궁의 결계가 사라져 모두가 이능 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괜찮은 거
나고.
그러자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 으며, 한가롭게 말했다.
'아무도 해/云/又/ 못할 거란다, 잔아. '
그 목소리는 평소 엄마의 목소리 와 달랐다.
분명 같은 목소리지만 조금 더 몽롱하고 낮은, 꼭 미리내의 노래 와 같은 목소리.
그게 언령이나고 묻자 엄마는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힘은 참 신기하고 그만큼 쓸모가 많지.
그러니 혹시 내 방을 찾아오는 사람이 살수일지라도 나는 안전할 것이다. 내 만류에 서연이 결국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그녀가 무어라 잔소리를 하기 전 침상에서 내려왔다.
“어서 채비나 해 주어. 응?” 더 잔소리 듣기 싫어 한 말이었는 데, 그 말에 서연이 멈칫했다.
그리고 또 표정이 아련해졌다.
•••그리 오늘 0 기다리셨습니 까?”
아, 그만 좀.
“허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
다.”
다과상을 모두 자려 주고 내게 아 이들의 소개까지 마친 서연이 고개 를 숙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러가라 1- 근  저었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조용해졌다.
어린 에들이라 대화하기 쉬울 거 라 생각했던 인간은 어디의 누구 였나.
나는 신기한 눈으로 내 앞에 좌 우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 았다.
'재네 열두 살 맞아?'
잘 먹고 커서 그런가,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에들이 훨씬 컸다.
열두 살은 생각보다 컸다.
만으로 열두 살이면 한국 나이로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이라는 건데, 나보다 미리 하나가 그다.
'원래 저렇게 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보다 성장 이 빠른 건 알았지만, 고운만 보다 가 더 큰 에들을 보니 조금 당황 스러웠다.
그래도 여전히 앳되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간식을 앞에 두고도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들이 어색한 것처럼 그 아이들도 그런 모양이었다. “이리 불러 주시어 영광이옵니다,
그중 내 왼편에 앉아 있던 아이 가 말꼬를 텄다. 그 말에 다른 아 이들의 눈이 다급히 반짝였다.
“가, 감읍하옵니다, 마마.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아이들이 모두 내게 고개를 꾸벅 꾸벅 숙이는데, 오른편의 맨 끝에 앉은 아이만 허리가 빳빳했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혼자 튀니 시선 이 갔다.
내 시선이 그 아이에게 향하니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 아이에게 향했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아이가 놀라 그 아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워낙 실내가 조용해 작게 중얼거 린 목소리가 내게도 들렸다.
서라국에서는 애칭을 만들 때 이름 앞에 '아를 붙인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부르는 애칭이 었다.
엄마가 나를 애칭으로 부르고 싶 어 했지만, 아산도 아아도 이상해 서 내가 거부했었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아연이 라고 불린 아이가 주위를 슬쩍 돌 아보더니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
다.
“서린 여면입니다. 불러 주시어 감읍합니다, 마마.”
“아이 참, 이름은 이미 다 말씀드 렸잖아!”
어쩐지 맹한 목소리에 다른 아이 가 목소리를 죽여 타박했다.
친구의 대답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 인 서련은 작게 눈을 찌푸렸다.
하품을 하는 것 같았다.
'재 대단하네.'
다른 에들은 바짝 일어서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딴짓을 한다.
여면 가라면 초은의 집안이다. 나 이대로 봐서 초은의 조카뻘인 것 같 으데
'성격 특이한 건 저 집안 유전인 가.
나는 의미심장하게 그 아이를 바라 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 앞에 놓인 탁자에는 곱게 접힌 종이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서신들이었다.
“동궁에서 어느 곳이 제일 볼 만한 지 아니?” 난데없는 내 질문에 아이들이 의
아한 얼굴을 했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오늘 처음 동궁에 와 본 아이들이 그걸 알 리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왔다. 아주 작 고 여상한 목소리로. “정원이 아름답다 들었습니다.”
그 말에 아이들이 두리번댔고, 아 이들 사이로 유난히 체구가 작은 몸이 뿅 나타났다.
시선이 집중되든 말든 태연한 서 련을 바라보며, 나는 옅게 피어나 는 미소를 감추고 다시금 물었다.
“서역에서 들여온 흔들의자라는 것이 있다던데, 들어 본 적이 있
“서역의 한 나라에서 공물로 바친 것인데, 폐하께서 마마께 하사하시 어 마마의 침실에 있다 들었습니 다.”
이번에는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또다시 서린이었다.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을 한 주제 에 제법 잘 뛰어놀았는지,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이건 일종의 암호였다.
동궁의 정원이 예쁘다고 말한 나, 신기한 의자에 앉아 봤다던 서신
으 쓰 1- 아이
'초은을 통해 서신을 전달한 모양 이지.' 너였구나, 이 말썽꾸러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내려 왔다.
성큼성큼 서린에게 향하니 아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 앞에 멈춰 서니 서린의 어깨 가 움찔 떨렸다.
••••화내려는 줄 알았나?
나는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 다. 분위기가 무섭게 가라앉아 있
었다.
어린애 울린 험상궂은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니, 혼내려는 건 아니고 그
“당과 먹을래?”
상황을 모면하려 아무 말이나 내 뱉자 서린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나는 그 일굴에 잠시 이 상황조차 잊고 입 꼬리를 조금 늘렸다.
아, 뭐야. 귀여워.
서린은 제게 당과를 내미-1- 1- 0 고 -「그- 르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어서 매사 태 연하던 그녀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서린은 유유자적 흐르는 냇물 같  0 아이였다.
타고난 이능 때문인지, 가문 내력 인지 모르지만 여면 가의 이들은 대부분 야심가였다.
그 탓에 서련은 그 유순하다 못해 조용한 성정으로 유난히 눈에 띄었
다.
서린의 부모님은 아이의 검은 머 리를 질책하지 않았지만, 여유로운 성격은 걱정했다.
무엇에라도 관심을 가져 보라는 부모님의 말들을 한 귀로 홀린 지 가 벌써 여러 해.
그러니만큼 서련이 오늘 황궁에 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어명이기는 했지만 서련이 미적 대지 않고 곧장 준비를 마진 것은 몇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서린은 오늘 이 날을 제법 기다렸 다.
타고난 성정이 있으니 완전히 집중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했다 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당과를 받아 든 서련이 생글생글 웃는 산야에게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산야는 조금 기묘한 분위기를 가 진 이였다.
영문 모를 질문을 한다던가, 대뜸 걸이와 당과를 권하는 것이 그러 했다.
그래도 자그만 발자국 소리나, 앉 아 있는 자신과 서 있는 공주의 시선이 맞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참.
서린의 귀가 조금 빨개졌다.
••••귀여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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