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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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무작정 황제에게 뛰어가 큰 소리를 진 걸 기윤이 칭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라

“아비는 폐하께 밉보여 사형당한 처지인데, 네가 자꾸 폐하께 내 이 야기를 하면 폐하께서 너를 곱게 보 시겠느냐.”
1-
기윤이 안쓰럽다-1- 나를 보았 다. 꼭 정말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 같 았다.
울상인 얼굴은 유지한 채 말을 고 르고 있자, 기윤은 내가 퍽 슬퍼하 는 줄 알았는지 말을 이었다.
“아비가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거 라. 산야.”
그가 내 접시에 사과 정과를 얹어 주었다.
엄마가 자주 해 주던 행동이었다.
“네 비록 여란 가의 핏줄이나 폐하 께서 너를 귀애하시고, 황실의 후손 이 너뿐이니 황제가 되겠지.”
혼란스럽던 와중, 그 말이 또렷하 게 들렸다.
“후에 네가 제위에 오른다면, 그때 아비의 설움을 풀어 주거라.”
꼭, 당연히 내가 황제가 될 거라는 듯한 말투.
그 말은 무언가 이상했다.
엄마는, 현 황제는 젊었고 건강했 다.
내가 아직 한참 어리니 황태자 위 에 책봉된다 해도 황제가 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적어도 십 년 후, 내가 성년이 된 이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십 년 안에 적통 황자 가 태어나든, 내가 폐위되든 반드시 변수가 생길 텐데.
아니, 무엇보다 기윤이 십 년이나 기약 없는 무언가를 기다릴 성정인 가?
'그럴 리가 없어.
기간도 기간이지만,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른 시일 내에 황제 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었
다.
황제의 죽음.
종친도, 적통 자식도 없는 상황에 황위를 물려받는 것은 당연히 공주 인 나일 것이다.
손끝이 싸하게 식었다.
귀족들을 중독시켜 정상적인 사고 를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했던 이유.
내게 황제의 눈 밖에 나지 말라고 했던 말.
'이거였구나.'
기윤은 아무래도, 나를 황제로 만 들 생각인 것 같았다.
엄마를 죽이고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 다.
하지만 그걸 티 낼 수가 없어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꼭 그리할게요!” “그래, 착하지.” 의심받으면 안 돼.
기윤의 저 계획은 내가 그를 따른 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막을 수도 있다.
우선은 계획이 수정되게 두어서는 안 돼.
= 해사하게 웃는 나를 기특하다는 쓰다듬은 기윤이 나직이 입을 열있
다.
“거기 있느냐.”
•••예. 어르신.”
문밖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

“저자는 누구인가요, 아버지?”
“저번에 심부름꾼으로 네게 보냈던 하인이다. 잠시 시길 것이 있어 불 렀단다.”
곧 미닫이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지수였다.
그가 들어오자 기윤은 일언반구 없 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수에게 무어라 명하고는 방을 나섰다. “아버지, 이디 가세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사위가 조 용해졌을 때, 나는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 면 어쩔 뻔했어.
“저, 마마.
지수가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누가 보아도 기윤이 시킨 것을 나 에게 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듯했다.
••너는 주인이 둘인 모양이구
나.”
“ 0\, 아닙니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에 지수가 필 쩍 뛰었다.
그 모습에 나는 빙긋 웃었다.
설마 기윤의 말을 들으려는 건 아 닐 거고.
“설명하거라. 어찌 이곳에 있는지 부터, 방금 그가 나가며 네게 무어 라 말했는지까지.”
그럼 있는 동안 심심한데 이야기나 좀 해 봐.
지수가 기진 울먹이며 대답한 내용  =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처음 내게 찾아올 때에 여란 가의 하인이라고 거짓을 고한 탓에 알리 바이를 만들려고 잠시 동안 여란 가 에 머물고 있었으며, 절대로 그와 결탁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기윤이 하나를 더 의뢰 하겠다기에 찾아갔더니 내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기윤이 내게 세되하라고 한 것은 '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다.
간단하고 명료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드 0 나는 잠시  머리채를 잡고 싶어졌다.
아, 맞아. 역시 맞아.
맞는 거 같아.
기윤의 목표가 나를 황제로 만들어 그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했 을 때, 그가 한 일들이 퍼즐 맞추듯 정리된다.
나를 황태자로 옹립한다고 하면 당 연히 귀족들의 반발이 심할 테니, 약을 먹여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다. 내게 황제에게 대들지 말라고 한 것도 그 눈 밖에 나면 안 되니 그 랬겠지.
이 인간은 어쩌다가 이렇게나 아무 진 꿈을 꾸게 되었는지.
내 궁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 아입고 침상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마구 이불을 걷어찼다.
아, 어째 더 꼬인 것 같아.
정확하게는 내가 더 꼬아 버린 것 같아.
이제 황제의 이능이 약해진 것은 기정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윤 이 처음부터 엄마를 죽이겠다는 계 획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굳이 생각을 바꾼 건, 아마 아편을 판매한 것을 들켜서겠지.
황태자 자리에 앉히고 만족하려고 했던 걸 내가 엎어 버렸고, 그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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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고 과감한 것을 시도하려 는 것이다.
황실에는 웃어른이 없다. 황태후도, 상황도 없었다.
나를 제위에 앉히고, 복권된 뒤 자 신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과 내가 어 리다는 걸 이용해 대리청정하려는 생각인 거야.
막아야 하는데, 또 어떻게•••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엔 그게 또 문제아.
아무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압 박한다고 해도 물리적인 힘은 무시 할 수 없다.
힘이 없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이면서도 귀 족들의 승낙을 얻어야 기윤을 처벌 할 수 있던 엄마나, 내 어머니를 죽 이겠다는 암시에도 웃어야 했던 나 처럼.
이불 위를 뒹굴던 나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에 얼굴을 묻 었다. '힘이 있어야 해.' 그래.
역시 그렇다.
사람도, 권력도, 돈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힘이야. 이능 중에서도 기윤과 맞설 수 있 을 만한 힘이 필요하다.
'이능이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나?'
특정 신수에게 축복받아 그 힘을 나눠 받는 건 제외해야 한다.
서라국의 중요 가문들은 꽤나 오랫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들있 다.
그 말인즉 그만큼 강한 신수가 인 간을 축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용 하나를 알고 있 긴 한데, 이능이 치유라 쓸모도 없 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 듯 했다.
유리가 말했던, 이능 내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구하거 나, 후천적으로 이능을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나는 경대로
시선을 옮겼다.
호화로운 자개 보석함 안에는 용 비녀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맡은 바 일을 잘했으니 대가를 주 어야지.
간 김에 저 흑색 여의주가 아티팩 트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말이
다.
아, 그런데 일단 잘래.
너무 졸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하품을 한 번 크게 하고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늦은 밤.
기윤은 제게 날아온 전서구가 매달 고 온 쪽지를 불태웠다.
쪽지에는 물건에 대한 대가를 지불 하라고 적혀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 리였다.
글도 못 써 꼬리를 잡힌 천치를 살려 두는 것만으로도 기윤은 자비 를 베푼 것이다.
그럼에도 뒷맛이 씨, 기윤은 작게 혀를 찼다.
'그자에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편이 들킨 시기가 생각보다 빨라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리 깊게 중독 되지 않았다. 그 탓에 기윤은 난생 처음으로 피 해를 봤다.
누군가의 아래에 서서 심판받는 처 지에 놓인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몹시 모욕적이었다.
당한 것은 갚아 주어야 한다.
그는 제가 받은 모욕을 잊을 생각 이 없었다.
그러니 황제가 저는 내치면서도 그 의 여식은 에지중지 아끼는 것이 기 윤에게는 호재였다. 어리고 멍청한 것. 口2'
제 아비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좋다며 웃는 아이.
산야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손바닥 에 두고 굴릴 수 있다.
속내가 빤했고, 조금 잘 대해 주기 만 해도 아이는 헌신적으로 아비를 따랐다.
오늘 산아의 모습도.
지금껏 본 산아의 모습도.
분명 그러했으나.
무언가 걸렸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건 일종의 감 같은 것이었다.
이능 한 톨 없는 아이이니 세되 또한 제대로 먹혔을 텐데, 무엇이 이런 기시감을 만들었을까.
가만히 생각하던 기윤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산야는 단 한 번도 음식에  대지 않았다.
차 한 모금조차도 말이다.
꼭, 원가를 의심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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