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무작정 황제에게 뛰어가 큰 소리를 진 걸 기윤이 칭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라
“아비는 폐하께 밉보여 사형당한 처지인데, 네가 자꾸 폐하께 내 이 야기를 하면 폐하께서 너를 곱게 보 시겠느냐.”
1-
기윤이 안쓰럽다-1- 나를 보았 다. 꼭 정말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 같 았다.
울상인 얼굴은 유지한 채 말을 고 르고 있자, 기윤은 내가 퍽 슬퍼하 는 줄 알았는지 말을 이었다.
“아비가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거 라. 산야.”
그가 내 접시에 사과 정과를 얹어 주었다.
엄마가 자주 해 주던 행동이었다.
“네 비록 여란 가의 핏줄이나 폐하 께서 너를 귀애하시고, 황실의 후손 이 너뿐이니 황제가 되겠지.”
혼란스럽던 와중, 그 말이 또렷하 게 들렸다.
“후에 네가 제위에 오른다면, 그때 아비의 설움을 풀어 주거라.”
꼭, 당연히 내가 황제가 될 거라는 듯한 말투.
그 말은 무언가 이상했다.
엄마는, 현 황제는 젊었고 건강했 다.
내가 아직 한참 어리니 황태자 위 에 책봉된다 해도 황제가 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적어도 십 년 후, 내가 성년이 된 이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십 년 안에 적통 황자 가 태어나든, 내가 폐위되든 반드시 변수가 생길 텐데.
아니, 무엇보다 기윤이 십 년이나 기약 없는 무언가를 기다릴 성정인 가?
'그럴 리가 없어.
기간도 기간이지만,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른 시일 내에 황제 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었
다.
황제의 죽음.
종친도, 적통 자식도 없는 상황에 황위를 물려받는 것은 당연히 공주 인 나일 것이다.
손끝이 싸하게 식었다.
귀족들을 중독시켜 정상적인 사고 를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했던 이유.
내게 황제의 눈 밖에 나지 말라고 했던 말.
'이거였구나.'
기윤은 아무래도, 나를 황제로 만 들 생각인 것 같았다.
엄마를 죽이고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 다.
하지만 그걸 티 낼 수가 없어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꼭 그리할게요!” “그래, 착하지.” 의심받으면 안 돼.
기윤의 저 계획은 내가 그를 따른 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막을 수도 있다.
우선은 계획이 수정되게 두어서는 안 돼.
= 해사하게 웃는 나를 기특하다는 쓰다듬은 기윤이 나직이 입을 열있
다.
“거기 있느냐.”
•••예. 어르신.”
문밖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저자는 누구인가요, 아버지?”
“저번에 심부름꾼으로 네게 보냈던 하인이다. 잠시 시길 것이 있어 불 렀단다.”
곧 미닫이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지수였다.
그가 들어오자 기윤은 일언반구 없 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수에게 무어라 명하고는 방을 나섰다. “아버지, 이디 가세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사위가 조 용해졌을 때, 나는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 면 어쩔 뻔했어.
“저, 마마.
지수가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누가 보아도 기윤이 시킨 것을 나 에게 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듯했다.
••너는 주인이 둘인 모양이구
나.”
“ 0\, 아닙니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에 지수가 필 쩍 뛰었다.
그 모습에 나는 빙긋 웃었다.
설마 기윤의 말을 들으려는 건 아 닐 거고.
“설명하거라. 어찌 이곳에 있는지 부터, 방금 그가 나가며 네게 무어 라 말했는지까지.”
그럼 있는 동안 심심한데 이야기나 좀 해 봐.
지수가 기진 울먹이며 대답한 내용 =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처음 내게 찾아올 때에 여란 가의 하인이라고 거짓을 고한 탓에 알리 바이를 만들려고 잠시 동안 여란 가 에 머물고 있었으며, 절대로 그와 결탁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기윤이 하나를 더 의뢰 하겠다기에 찾아갔더니 내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기윤이 내게 세되하라고 한 것은 '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다.
간단하고 명료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드 0 나는 잠시 머리채를 잡고 싶어졌다.
아, 맞아. 역시 맞아.
맞는 거 같아.
기윤의 목표가 나를 황제로 만들어 그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했 을 때, 그가 한 일들이 퍼즐 맞추듯 정리된다.
나를 황태자로 옹립한다고 하면 당 연히 귀족들의 반발이 심할 테니, 약을 먹여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다. 내게 황제에게 대들지 말라고 한 것도 그 눈 밖에 나면 안 되니 그 랬겠지.
이 인간은 어쩌다가 이렇게나 아무 진 꿈을 꾸게 되었는지.
내 궁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 아입고 침상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마구 이불을 걷어찼다.
아, 어째 더 꼬인 것 같아.
정확하게는 내가 더 꼬아 버린 것 같아.
이제 황제의 이능이 약해진 것은 기정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윤 이 처음부터 엄마를 죽이겠다는 계 획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굳이 생각을 바꾼 건, 아마 아편을 판매한 것을 들켜서겠지.
황태자 자리에 앉히고 만족하려고 했던 걸 내가 엎어 버렸고, 그에 기
0 0
더 그고 과감한 것을 시도하려 는 것이다.
황실에는 웃어른이 없다. 황태후도, 상황도 없었다.
나를 제위에 앉히고, 복권된 뒤 자 신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과 내가 어 리다는 걸 이용해 대리청정하려는 생각인 거야.
막아야 하는데, 또 어떻게•••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엔 그게 또 문제아.
아무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압 박한다고 해도 물리적인 힘은 무시 할 수 없다.
힘이 없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이면서도 귀 족들의 승낙을 얻어야 기윤을 처벌 할 수 있던 엄마나, 내 어머니를 죽 이겠다는 암시에도 웃어야 했던 나 처럼.
이불 위를 뒹굴던 나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에 얼굴을 묻 었다. '힘이 있어야 해.' 그래.
역시 그렇다.
사람도, 권력도, 돈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힘이야. 이능 중에서도 기윤과 맞설 수 있 을 만한 힘이 필요하다.
'이능이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나?'
특정 신수에게 축복받아 그 힘을 나눠 받는 건 제외해야 한다.
서라국의 중요 가문들은 꽤나 오랫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들있 다.
그 말인즉 그만큼 강한 신수가 인 간을 축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용 하나를 알고 있 긴 한데, 이능이 치유라 쓸모도 없 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 듯 했다.
유리가 말했던, 이능 내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구하거 나, 후천적으로 이능을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나는 경대로
시선을 옮겼다.
호화로운 자개 보석함 안에는 용 비녀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맡은 바 일을 잘했으니 대가를 주 어야지.
간 김에 저 흑색 여의주가 아티팩 트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말이
다.
아, 그런데 일단 잘래.
너무 졸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하품을 한 번 크게 하고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늦은 밤.
기윤은 제게 날아온 전서구가 매달 고 온 쪽지를 불태웠다.
쪽지에는 물건에 대한 대가를 지불 하라고 적혀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 리였다.
글도 못 써 꼬리를 잡힌 천치를 살려 두는 것만으로도 기윤은 자비 를 베푼 것이다.
그럼에도 뒷맛이 씨, 기윤은 작게 혀를 찼다.
'그자에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편이 들킨 시기가 생각보다 빨라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리 깊게 중독 되지 않았다. 그 탓에 기윤은 난생 처음으로 피 해를 봤다.
누군가의 아래에 서서 심판받는 처 지에 놓인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몹시 모욕적이었다.
당한 것은 갚아 주어야 한다.
그는 제가 받은 모욕을 잊을 생각 이 없었다.
그러니 황제가 저는 내치면서도 그 의 여식은 에지중지 아끼는 것이 기 윤에게는 호재였다. 어리고 멍청한 것. 口2'
제 아비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좋다며 웃는 아이.
산야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손바닥 에 두고 굴릴 수 있다.
속내가 빤했고, 조금 잘 대해 주기 만 해도 아이는 헌신적으로 아비를 따랐다.
오늘 산아의 모습도.
지금껏 본 산아의 모습도.
분명 그러했으나.
무언가 걸렸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건 일종의 감 같은 것이었다.
이능 한 톨 없는 아이이니 세되 또한 제대로 먹혔을 텐데, 무엇이 이런 기시감을 만들었을까.
가만히 생각하던 기윤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산야는 단 한 번도 음식에 대지 않았다.
차 한 모금조차도 말이다.
꼭, 원가를 의심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