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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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발견한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 이 확 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포슬포슬한 회색 머리카락이 정말 눈물 나도록 반가웠다.
그 사이에 살짝 비진 정회안이 안 절부절못하는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작게 고개를 혼 들었다.
괜찮지 않았지만 조금 괜찮아졌다.
지금 내 옆에서 내 궁에 이불을 보내니 침상을 보내니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아. 맞아. 황제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지.
나는 다시금 슬쩍 그녀를 올려다보 았다.
이 궁에 인력이 배치되는 것은 웬 만해서는 황제의 몫이었다.
그림자가 배지되는 것은 그녀의 명 이 확실하지만, 혹시 그림자인 것을 알았냐 의심하면 당연히 내가 누리 는 것은 모두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 신 것이 아니나 감언이설을 해야지. “왜 그러느냐, 산아?” 금세 내 시선을 눈치챈 황제가 고 개를 가웃하며 물어 왔다.
그 모습에 나는 침상에서 나갔다.
••아니, 나가려 애를 쌌다.
몸이 작다 보니 한 번에 톡 뛰어 내릴 수가 없었다.
무릎걸음으로 두어 번 걸어간 뒤 발을 하나하나 내리고 그 뒤에야 궁 녀의 도움을 받아 내려갈 수 있었 다.
누가 비웃었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 지 않았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 고 황제에게 예의 바르게 몸을 숙였 다.
“폐하께서 제게 새벽을 보내 주셨 다 들었습니다. 적적한 생활에 크게 기쁨이 되는 아이입니다. 감사드립
니다.”
“정말?”
내 인사에 돌아온 대답은 정말 예 상하지 못한 만큼 생기발랄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황제가 허락 하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획 쳐들고 말았고, 입을 한가득 벌린 채 눈을 한껏 빛내고 있는 그녀를 마주했다.
무표정일 때에 날카로워 보이는 눈 매가 한껏 동그래져 있었다.
고요했던 녹회안이 햇살을 받은 새 싹처럼 빛냈다.
그 얼굴에 나는 고개를 숙일 생각 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녀를 바 라보았다.
•••그, 크흠. 정말이나?”
이제 와서 위엄 있는 척해 봤자 정말 모양 빠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었다.
“예. 폐하.”
감사하다는 말에까지 웃지 않을 수 는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내 얼굴에 또다시 표정이 화악 펴졌다.
자꾸만 그녀의 등 뒤로 꼬리가 살 랑대는 것 같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 다.
원작의 황제는 산야에게 다정했지 만, 그 다정함은 부모 같은 따스함 이지 반려동물의 맹목적임이 아니었 단 말이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미리 내의 안목은 역시 믿을 만하지.” 나는 이어진 말에 얼굴을 뻣뻣이 굳혔다.
내가 왜 그걸 간과하고 있었지.
황제는 미리내와 운명 공동체 수준 으로 모든 것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림자의 존재 또한 포함되있다.
그러니까, 미리내는 내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잖
젠장. 동 피하려다 지뢰 밟았다. “아! 물론 네게 새벽을 보낸 것은 내가 생각한 일이다. 알겠느냐?” 순간적으로 굳어진 얼굴에 황제가 깜짝 놀라 덧붙였다. 이걸 굳이 못 박는 이유가 월까. 나중에 나만 족쳐라? 나는 구겨질 것 같은 미간을 감추 려 더욱 활짝 웃었다.
“예.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런 내 웃음에 황제가 할 말을 잃은 얼굴을 했다.
멈춤 버튼을 누른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작게 고개를 기울였고, 그에 황제는 가만히 있던 고슴도치를 툭 친 것처럼 퍼뜩 뛰었다.
이내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두어 번 달싹이더니, 정말 큰일이라 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찌 이리••
“귀여울 수가 있지?”
“아, 아니다.” 안 들렸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런 상황을 겪으니 몸이 급격히 피곤해졌다.
나는 애써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슬그머니 운을 때었다.
“한데 폐하, 어쩐 일로 이 누추한  八을 오셨나이까.”
“아, 그렇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새벽.” 황제는 내 말에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고운을 불렀다.
그가 소리 없이 가까이 와 부복하 자 황제는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네 동료들이 보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기함을 금지 못했다.
황제가 서찰을 전해 준다니.
이 나라의 시종들이 모두 급사라도 했단 말인가.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건가?
“폐하. 어찌 아랫것들이나 할 만한 일을 자처하십니까.” 다행히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 나뿐 만이 아닌지 서연이 걱정스러운 목 소리로 황제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간식을 훔쳐 먹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말이다.”
황제는 입을 우물거리며 말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나는 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전에 기우던 우리 집 강아지가 혼날 때 보이던 모습이었다.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 말이다. 마침 내 궁이 이곳과 가깝기도 하
“화선궁과 화룡궁이 가깝다는 말이 십니까.”

나는 서연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 다.
내 귀가 틀리지 않0갔다면 그녀는 황제에게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침을 놓았다.
그럼에도 온화하게 풀어진 얼굴은 여전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찌 익. 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 으로 고개를 돌렸고, 고운이 종이를 찢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러 니까 누군가 그에게 새 종이를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황제가 건네준 서 잘이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고운은 황제가 손수 건네준 서찰을 그 앞에서 찢고 있었다.
재 미쳤나 봐.

내가 황망한 눈으로 그를 부르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고운이 나와 눈 이 딱 마주졌다.
그는 잠시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나 를 바라보다가 종이를 쥔 손으로 엉 거주춤 무언가를 표현했다.
어제의 손짓과는 달리 무언가의 체
계가 잡혀 있는 언어라= 1- -낌의1- 0 소 짓이었다.
말을 못 하는 적을 하려니 당연히 수어를 할 줄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어를 몰랐고, 슬쩍 서연을 바라보니 그녀가 난처한 일 굴로 속삭였다.
“먹을까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기함해서 다시 고운 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먹으라고 하면 당장이라 도 입에 넣을 듯이 손을 입가에 엉
거주춤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황제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그의 손을 끌어당기며 소리졌다. “그걸 왜 먹어! 먹지 마!”
버럭 소리치자 고운이 깜짝 놀라 손에 든 종이를 후드득 떨어트렸다.
내가 손을 잡아당긴 탓에 몸이 휘 청 쏠리며 앞머리가 들렸다.
나는 그 아래에 보이는 놀라 둥그 레진 눈동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
다.
내가 가만히 보고 있는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걸로 해석을 했는지.
“종이는 먹지 마. 맛도 없고 몸에 도 안 좋잖아.”
내 말에 고운의 시선이 아래로 향 했고, 그대로 딱 굳었다.
나는 드러난 고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의아한 눈을 했 다.
그는 내게 잡히지 않은 한쪽 손을 어떻게든 흔들며 의사 표현을 하려 했지만, 내게 한 손을 잡힌 채라 그 런지 아무도 고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을 허둥대던 그는 내가 다시 손을 한 번 움찔하니 또다시 굳었 다.
나는 미묘한 시선으로 고운을 바라 보았다.
머리칼 새로 드러난 귀가 새빨갰 다.
'여자애랑 손 처음 잡았다고 부끄 러워하는 건가, 지금?' 세상에. 귀여워라. 완전 어리잖아.
나는 꿈틀대려는 입술을 꾹 누르고 는 손을 치웠다.
그러자 고운이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 모습에 나는 정말로 웃지 않으 려 안간힘을 씨야 했다.
어리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아가

황제의 미심쩍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고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휘청거렸느냐?” 황제의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편하게 풀어져 있던 황제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드럽게 웃고 있었던 얼굴과 상반 될 만큼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 시선이 고운에게 향했다.
온몸의 피가 쭉 빠지는 느낌이 들 었다. 나는 등 뒤가 선뜩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황제는 마냥 다정하지 않0갔다. 그 너가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터다.
고운은 어리지만 호위 무사다. 내 고사리손에 흔들려서는 안 되는 존 재였다.
황제는 그것에 의문을 가졌고, 고 운이 호위무사로써 쓸모없다고 판단 된다면 그대로 그를 내질 것이다. 내가 장난으로 이능을 썼다고 무릎 을 꿇을까?
하지만 너무 금방 들통 나는 거짓 말이다.
무엇을 위해 이능을 썼다고 설명하 며, 또 내가 이능을 쓰지 못하는 것 을 들킨다면?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든 시선을 내 게 돌려야 했다. '울자.'
결론은 빨리 나왔다.
이 상황에서 내가 울어 버리면 모 든 상황은 종결된다.
물론 상당히 자괴감이 들겠지만 사 람 하나 살리는 데 그게 대수일까.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펑펑 오 열할 만큼 눈물이 나와야 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지금 내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이 났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얼마나 겪었나.
갑자기 소설 속에 들어와서 목숨 붙여 두려고 팔자에도 없는 눈치를 열심히도 보고 살았다.
그런데 돌아온 건 쓸 수도 없는 선물들과 암살 시도, 제대로 된 정 신과 의사가 없어 고질 수도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에.
그리고 지금은 저 눈치 없는 황제 폐하께서 내 유일한 친구를 죽이려 고 한다.
눈앞이 뿌예졌다.
가득 고인 눈물이 눈을 한 번 깜 빡이자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목 끝에서 넘어오는 오열을 참지 않고 내뱉었다.
“혹, 끅, 이엉.
소리 내어 울어 본 적이 너무 오 래 전이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러 울려고 한 것도 있고, 실제로 생각하다 보니 억을해졌기 때문이 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짓을 하나!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황제가 덜컹  들리는 것이 보였다.
“왜, 왜 그러느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이? 새벽? 새벽이 약해서 그 래? 다른 아이로 바꿔 줄까?” “으아아양-!” 황제는 안절부절못해 나를 달래다 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빼액 소리 를 지르며 울었다.
자리에까지 주저앉아 울자 황제는 어쩔 줄 모르다가 내 앞에 똑같이 쪼그려 앉았다.
“어디 아파? 갖고 싶은 게 있이?
구, 궁이 마음에 안 들어? 더 큰 곳 으로 바꿔 줄까?”
필요 없이. 저리 좀 가, 내 인생의 방해자아!
“혹, 히끅, 흐엉. 으아앙!"
내가 우는 소리가 방을 넘어섰는 지,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깜짝 놀 란 얼굴의 희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황제도 잊은 채 내게 다가왔다.
“마마! 헉, 왜, 왜 우세요! 울지 마 세요! 우르르, 까꿍! 저 여기 있1네!”
절박한 얼굴로 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치웠다 하는 희사의 모습에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저리 가. 언제 적 까꿍 놀이야. 난 소근육 발달도 다 끝났어. 내가 에 새낀 줄 알아!
그때 내 손을 누군가 잡았다.
그 손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조 금 더 거칠었고, 더 작았으며 더 차 가웠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난 조금 더 울어야
해.
“흐이엉••  보통 아이를 많이 돌본 경험이 없 는 사람은 아이가 마구 울면 지금의 황제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고는 옆에 아이를 돌봐 줄 만 한 사람이 있으면 십중팔구 그 사람 에게 맡기고 도망간다.
그것을 노리고 눈물을 더 쥐어짜려 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열린 문으 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네가 여길 왜 와?!' 반쯤 틀어 올린 백금발.
눈을 가린 푸른 안대.
미리내였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나는 -2' 간 놀라 울음을 멈췄다.
하지만 아직 울음이 그치지 않은 여파로 딸꾹질이 나왔고, 눈물은 계 속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미리내의 몸이 아까의 황제처럼 덜컥 흔들렸다.
그는 비척비척 내게 다가와 홀린 듯이 무릎을 반쯤 꿇어 나와 시선을 맞췄다.
미리내는 얼빠진 사람처럼 입을 반 쯤 벌린 채 제 소매를 뒤적뒤적 뒤 지다가, 제 머리로 손을 가져가 무 언가를 빼어 낸 채 내게 그것을 내 밀었다.
“이, 이거 줄게요. 울지 마요.” 그건 미리내의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였다.
비녀의 끝에 구슬을 물고 있는 용 이 양각되어 있는, 황가의 직계만 사용할 수 있는 것.
미리내가 가진 것 중에 어쩌면 가 장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 멈췄 다.
너무 놀란 탓에 딸꾹질만 계속 나 왔다.
우는 것도 잊고 딸꾹질을 하는 내 모습에 미리내가 그제야 파르르 떨 리던 입술로 온화하게 웃었고, 내 손에는 금빛 비녀가 쥐어졌다.
심세하게 양각된 용 머리가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히끅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딸꾹질을 했다.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