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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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내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만 두고 보자면 그리 싫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다정이 아닌 내게만 주어지는 상냥함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 분명해 영 불편했다.
그녀를 특별히 싫어하지 않0갔다. 하
지만 씩 좋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하지만 씩 살갑게 대하고 싶지도 않다.
예화를 밀어내는 것도 그다지 큰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금전적인 선 물은 부담스러운 데다 마음이 담긴 것 같은 선물은 의심스러우니까.
마음은 상대와 크기를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예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씩 뼈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작의 산아와 똑같은 길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외로운 인생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살다가, 처음으로 다정한 보호자를 만나 잴 것 없이 기뻐했던 멍청한 산야.
결국은 그 손에 죽은 어린아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이 아기는 정말 그랬다.
나는 한 번 죽어 보았고, 그래서 죽 기 삶었다.
지금까지 황제가 그렇게 날 귀여워 하려고 애써도 내가 멀쩡한 걸 보면 내게 그 이능이 통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화로에서는 멀리 떨어 질수록 안전한 법이지.
하지만 이걸 미리내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이내 꾹 악물었다.
황제의 이능은 기밀이다.
실제로도 그녀의 측근을 제외하고 느 0十-1 01 느 이가 없었고, 여란 가 의 일원들 또한 모르는 사실이었다.
미리내가 바뀌었다는 걸 안다. 하지 마••
“폐하를 싫어하지 않아요.” 나는 아직 무서워.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미리내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 았다.
선한 얼굴에서 어떠한 뜻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미리내가 내게 손 을 뻗었다.
나는 그대로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내 의도가 아니었으나 몸이 움직이 지 않았다.
아마 이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겠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소심하게 덜덜 떠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있
다.
때, 때리려나.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요 녀석.”
여전히 가라앉았지만 장난스러운 미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
다.
진짜 때렸어?
아니, 이건 때렸다고 말하기도 에매 한데.
짚었어?
아니, 민 건가?
•••뭐지?
입을 해 벌린 내 얼굴에 미리내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눈썹을 늘어트 리며 웃었다.
“아이 기우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 들다더니, 그걸 정말로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퍽 친근한 말이었으나, 양심을 대차 게 말아먹은 소리였다.
네가 아무리 뱀이라도 그렇지, 나만 큼 손 안 가는 어린애가 어디 있다 고 그런 망발을.
내 뚱한 얼굴에 미리내가 풋 웃었 다. 하지만 곧 눈썹을 서글프게 늘어 트렸다.
“네가 보기에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겠지.” 나는 가라앉은 얼굴로 조용히 생각 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그래. 어른 이라고 모든 것에 통달하지는 못해
서 말이야.” 그 말이 닫힌 마음을 두드렸다. 미리내는 정말 믿고 싶어지는 말을 잘했다.
“그래도•••
늘 당당하던 미리내의 고개가 숙여 졌다.
“믿음직스럽지 못해 미안하다, 아 가.
미리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내게 사과했다.
씁쓰레한 사과였다. 어떤 가식도 섞 이지 않아서, 내가 아는 미리내답지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 은 평온했고, 든든했으며 어른 같았 다.
“얼마든지 기다리마. 말하고 싶을 때 말해 주렴.” 나는 할 말을 잊고 그 얼굴을 가만 히 바라보았다.
그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푸근한 손길이었다.
그 손길을 받으며 나는 입술을 지 그시 깨물었다.
나는 힘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피부에 와 닿는 햇빛이 전에 없이 따가웠다.
미리내는 다정하다.
상냥하고. 나를 꽤 아낀다.
예화에게 향하는 것과 결은 다르지 만 그 또한 사랑일 수도 있었다.
내 입으로 줄줄 불면서도 또 믿을 수 없다고 징징대는 걸 보면, 되가 물고기 수준으로 퇴화했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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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 왔다.
나는 걷는 것을 멈추고 나무 그늘 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예화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픈데, 미리내의 서글픈 얼굴이 짐이 되어 덕 얹혔다.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당신은 왜 이렇게 나를 아끼지? 이쯤이면 믿을 법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몸을 사렸다.
내가 사실대로 털어 놨다가, 예화에 게 위협이 된다고 날 죽이면 어떡하 지?
나를 정말 아끼는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에완동물을 예뻐하는 정도여서 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마음을  끊어내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면 이 떡하지.
•••그건 싫은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 목소리지만 어색했다. 아주 지독 하게 외로운 목소리였다.
아, 그래. 이건 내가 살고 죽는 것 을 제외하고도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나 외로웠었나?' 기댈 곳이 필요했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나는 손에 들린 주머니를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주머니 안에서는 고소한 향기가 났다.
그건 미리내가 오늘 나를 그의 궁 으로 부른 이유였고, 다르게 서술하 자면 말린 라즈베리가 박힌 구기였 다.
주머니마저 비슷한 탓에 자연스레 예전의 예화가 내게 주었던 구기가 생각났고,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 에 예화마저 끼어든 탓에 나는 도리 없이 조금 더 심란해졌다.
가만히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자니 멀리서 여류와 고운이 안절 부절못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혼자 걷고 싶다 하니 그들0  빠르게 사라졌으나, 주위의 덤불들이 제 혼자 들썩이는 것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숨을 한 번 더 내쉬자 더 작은 덤불이 유난히 들썩였다.
고운, 거기 있구나•••  그 모습을 보자 느릿하게 입꼬리가 늘어졌다.
어린아이라 그런지, 기분 전환이 빨 랐다.
고운 불러다 구기나 먹여야지.
내가 고운을 부르려 고개를 돌렸을 때, 순간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 리워졌다.
나는 순간 경직되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다행히도 내 시아 안에 들어 온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새빨간 머리카락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청안. 맵시 있는 옷차림. 짧 은 머리.
그의 날카롭던 눈매가 순식간에 동
그래졌다.
뒤이어 가람이 눈을 홉떴다. 이미 크게 뜬 눈이 정말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 극적인 반응에 나는 조금 민망 해졌다. 그냥 마주쳤을 뿐인데 뭘 그리 놀
라니•••
“어! 너!”
가람이 쫙 핀 손바닥으로 나를 가 리켰다. 그건 그의 삿대질이었다.
하도 남을 가리길 때 손가락질을 하고 다니니 재이가 예의 없다며 가 르친 것이다.
해사하게 핀 얼굴에 미소가 화르록 떠올랐다.
반갑다는 듯이 방실방실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강아지 귀와 꼬리만 붙이면 무언가 가 완성될 것 같다.
•••간만에 뵙습니다. 선비 마마.”
쾌활한 인사가 뒤따랐다.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금세 무표정 으로 돌아왔다.
나는 웬만해서는 사람을 상대할 때 미소를 띠지만, 오늘은 영 웃고 싶지 가 않았다.
“우울하네요.” 막을 새도 없이 입에서 말이 툭  어 나7갔다.
그 말에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나 였다.
우울하다.
그런가? 내가 지금 우울한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착잡함과 짜증 남에 가깝지만, 그것도 우을함 때문 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고민하던 사이 가람이 삐걱댔 다.
나는 다시 시선을 그에게 옮겼고, 가람이 더 삐걱거렸다.
고장 났니.
“뭐, 하면 좋지. 어,
꽤나 당황한 눈지였다.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을 풀어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한참을 고심하던 가람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비익조 보여 줄까•••  비익조.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에 나 는 살풋 미간을 찡그렸다.
암것과 수것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 지 못한다는 상상의 새  그건 놀랍게도 이 세계에서조차 전 설이었다.
이능에 마법에, 심지어는 이무기와 천호와 정령까지 득실대는 세계에서 비익조는 없다는 게 우습기는 했다.
하지만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말인즉, 가람이 존재하지 않는 비익조를 실제로 만들어 냈다는 의 미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그의 불새 이름이었다.
나는 눈 두 짝에 날개 한 쌍이 멀 쩡히 달려 있던 그의 불새를 떠올렸
다.
그러고는 졸지에 눈 하나와 날개 하나를 잃은 이름의 그 불새가 조금  文은해졌다.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본인이 들어 본 있어 보이는 새 이름이 비익조밖에 없었던 걸까?
대충 피닉스랑 발음이 비슷하긴 하 다만.
•••괜찮아? 진짜 보여 줄까?” 잠시 상념에 빠졌던 나는 잔뜩 상 기된 가람의 목소리를 듣고는 정신 을 자렸고, 고개를 들었다.
가람의 반짝거리는 눈을 한 번.
쨍쨍 해가 내리쬐는 하늘을 한 번.
나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내 말에 가람이 쭈그러졌다.
정말 누가 손으로 구긴 듯이 푸시 식 가라앉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을 뻗어 그의 어깨에 덕 올렸다.
느닷없이 올라온 내 손에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말갛다.
그래도 마음 씨 주는 게 고맙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으로 가람 의 어깨를 토닥였다.
딱딱한 각목 같은 내 손길에 가람 이 눈을 한 번 도르록 굴리더니 주 점주심 말을 꺼냈다.
• 고마워?”
“별말씀을요.”
천연덕스럽게 나온 내 뻔뻔한 말에 가람은 뭣도 모르고 좋다고 헤실 웃 었다.
바보 같고 천진한 웃음.
그 일굴을 가만히 보던 나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물었다.
“왜 날 좋아해요?” 4'으,2쬐
내 뜬금없는 물음에 가람이 내게
되물었다.
나와 가람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고, 먼저 한숨 을 쉬며 고개를 돌린 것은 나였다.
그래. 이놈한테 월 묻나.
“자, 잠깐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뜨려던 나를 가람이 다급하게 붙들었다.
그냥 지나칠까, 싶었던 나는 그래도 성의를 담아 뒤를 돌았고, 가람은 그 짧은 시간에도 고심한 듯이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볼 게 일굴밖에 없는 놈이 얼굴도 망가트리면 어쩌니.
가만히 손을 뻗어 미간을 꾹꾹 누 르자 가람이 “아, 고맙••• 하고 잠시 삼천포로 새었다가 파드득 놀 라 돌아왔다.
“그러니까, 널 왜 좋아하냐고?” 고개를 끄덕이자 기껏 핀 가람의 미간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잠시 제 머리칼을 양손으로 쥐고 괴상하게 낑낑대더니, 아까와 다를 바가 없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티 났어?”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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