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국의 연회는 다른 어느 나라의 연회보다도 화려했다.
기름 냄새가 지독하게도 풍겼다. 풍 악 소리에 귀가 다 아팠고, 햇빛 아 래 빛나는 사람들의 장신구에 눈이 멀 것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것 은 내 옷차림이었다.
'전에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째 기묘하게 익숙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소맷자락을 슬슬 손으로 문질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 나는 아 주 기분이 좋았다.
계획대로 마지막 날을 아주 방탕하 게 낮잠과 간식으로 보냈고, 불편할 게 뻔한 호갑투를 거절하는 데 성공 했다.
그리고 완성된 예복이 예뻤다.
평소에도 내 옷은 몹시 고급스러웠 지만, 오늘은 확실히 더 힘으八正거八 이 느껴졌다.
우선 색이 보라색이다.
무려 보라색이라고.
보라색!
세 번씩이나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 았다.
보라색과 금색은 황가의 상징이었
고, 그만큼 함부로 쓸 수 없는 색이 었다. 그리고 몹시 예뻤다.
'오랜만에 입는다. 보라색 옷.' 가만히 보면 진보라색인데, 또 얼핏 보면 푸른빛도 돌았다.
금박이 입혀져 0 갔-1- 1- -「正드01근 口-工0乍0
도 화려했고, 하나하나 수를 놓은 듯 한 문양들도 예뻤다.
'무엇보다 가벼위.' 예쁘지만 돌 같았던 혼례복과는 달 리 움직이는 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가법고 편했다.
미리내와 예화, 가람의 움직임이 불 편해 보였던 걸 생각하면 이린 날 배려해 준 것 같았다.
불과 몇 개월 전. 저와 혼인할 상대 가 아이인지 성인인지도 몰랐던 사 람이 시킨 일이라기엔 엄청난 변화 였다.
기분이 미묘해졌다. 나는 시선을 돌 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예화를 바라보았다.
예화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것 이 무색하게 금세 나와 눈이 마주쳤 다. 무심하던 녹회안이 반짝 떠졌다. 그녀는 근엄하게 앉아 있던 것도 잊고 내게 환하게 웃으며 소1-으己 1-己 었다.
내가 평소와는 다른 것들에 낯설어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괜찮다는 의미로 작게 웃어 주자 예화가 웃었다. 좀 녹은 것도 같았
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움찔했다.
'싫은 건 아닌데•••
뭐랄까. 이 큰 땅을 다스리는 황제 답게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하나.
대놓고 예삐! 귀여워! 사랑스러워!
하고 표현하니 솔직히 좀 부담스러 웠다.
싫은 건 아니지만••• '원래 부모는 다 저런가.
나는 부모의 기억이 없다. 아빠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엄마는 내가 다섯 살 때 죽었다.
친구들의 부모님도 자주 뵌 것이 아니고, 보더라도 저렇게까지 자기 자식이 예뻐 죽겠다는 듯이 행동하 지는 않았다.
엄마의 기억은 티끌만 한 것이지만, 사랑받0갔을 거라고 어림짐작하긴 했 다.
딸을 안아 재우고, 아플 때 죽을 만 들어 줬으니까.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이내 그것을 부정했다.
'그것도 확실하진 않지.' 전생의 엄마는 내가 다섯 살 때 죽 었다.
그 탓에 나는 엄마에 대한 것을 거 의 기억하지 못했다.
가끔 떠오르는 기억들은 꿈처럼 금 세 기억에서 지위지는 터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아플 때마다 떠오 르는 목소리가 다였다.
하여튼, 예화가 꽤 유난스럽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적당히 결론을 내린 나는 다시 고 개를 돌렸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높아 아래 가 한눈에 보였다.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움직 임에 흩날리는 옷자락이 예뻤다. 아륜은 예화가 황실을 축복한 초대 용에게 제를 올리며 시작되었다.
그 뒤로는 평범한 동양의 연회 같 았다.
음식이 끝없이 날라졌고,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무희들 이 춤을 췄다.
이능이 있는 세계이니만큼 뭔가 독 특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평범했다.
그래도 무희들의 오색빛깔 옷자락 이 예뻤고 음악 소리가 듣기 좋았다. 혼례식 때에도 연회가 있었을 덴데 못 보고 그냥 들어간 게 아까울 정 도였다.
모르긴 몰라도 연회를 한 번 여는 데에는 꽤 많은 예산이 들어갈 터였 다.
나는 카메라가 없음을 애석해하며 열심히 공연을 감상했다.
이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나.
무희들에게서 눈을 못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내 궁녀들과 호위, 미리내와 가람 정도.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러자 먼저 움직인 것은 미리내였
다.
“산야, 아.”
코끝에 고소한 냄새가 나고 미리내 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입을 벌렸
다.
그러자 고기가 입 안으로 쏙 들이 왔다.
음, 맛있네.
“산야, 한 번만 더 먹자. 아.” 꼭꼭 씹어 삼키자 이번엔 가람이 말했다.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자 씁쓰름하 고 질긴 무언가가 입 안으로 들어왔 다.
의외로 내게 채소를 먹이는 건 가 람이었다.
미리내가 주는 건 다 맛있었는데, 가람이 주는 건 웬만해서는 맛없고 건강했다.
한 번만 더 먹자는 말에 널 의심했 이아 했는데.
팩 얼굴을 찌푸리자 가람이 후다닥 내 입 앞에 손을 대었다.
혹시라도 뱉을까 아주 잽싼 움직임 이었다.
아무렴 뱉을 수는 없어서 씹어 삼 기자 상처럼 고기가 들이밀어졌다.
나는 고기를 냉큼 받아 물어 씹으 며 그들을 흘끔 바라보았다. 안대를 하고도 내 시선을 용케 눈 지챈 미리내가 방긋 웃었다.
내 손 안 움직이고 식사하니 나야 편하긴 한데.
'이거 직무유기 아닌가?' 황제의 남편들이 공주 하나에 붙어 서 식사 시중이라니.
호적상 내 아버지들이기는 하지만, 황제인 예화도 누군가 밥을 떠먹여 주지는 않았다.
슬쩍 예화를 보니 그녀는 이쪽을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 았다.
예화는 진득하게 미리내와 가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망의 시선으로.
•••나랑 같이 밥 먹고 싶은가.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입 안에 든 고기나 씹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황제나 돼서 어린 딸내미 밥이나 먹여 주는 게 가당기나 한가.
물론 내가 먼저 가서 애교라도 떤 다면 얼마든지 받아 주겠지만•••
'굳이?'
나는 나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다.
다시 시선을 돌린 나는 가람을 물 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에 든 작은 숟가락에 나물 반찬 을 담으려던 가람이 나와 눈이 마주 치고 움찔했다.
“가람.
“이, 이? 하하. 이게 왜 여기 있지.” 얼마 전 기윤의 침입 때, 가람은 아 무리 그래도 호칭이 너무 딱딱하다 며 떼를 썼다.
오라버니라고 불러 주긴 죽어도 싫 고, 그렇다고 삼촌이나 숙부라고 부 를 수도 없어서 찾은 타협점은 이름 이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미리내도 한 발 끼어 내게 이름의 호칭을 얻 어냈고, 가람은 한술 더 떠 애칭인 아람이라고 불러 달라 요구했다가 내게 다시 존칭을 듣고는 조용해졌
다.
하여튼 지금 가람은 이름을 불린 행복함과 고기 밑에 나물을 숨긴 것 을 들킨 당황함이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가람이 주는 고기 맛은 원 가 이상하더니만.
뭐라 말을 할까 하다 나는 그만두 었다.
채소 맛있게 먹으면 좋지. 무엇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이능 쓸 수 있으세요?”
“그럼! 보여 줄까?” “아뇨, 됐 화르록! 말도 끝내기 전 눈앞이 새빨개졌다. “까며”
“마, 마마! 부디 과하소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선비 마
나는 난데없는 불 쇼를 짜게 식은 미소로 바라보0갔다. 됐다고, 미친놈아.
“자! 이때, 산아!” 이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모양인 지 가람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 었다.
“어, 엄청 크다! 안 그래?” “알겠으니 집어넣으세요.”
“그지만•••
“집어넣으세요.”
그지만이고 저지만이고, 궁 다 태워 먹겠다!
싸늘한 내 반응에 시무룩해진 가람
이 얌전히 이능을 거두었다.
놀라 일어 있던 사람들이 다시 천 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곳이 없네.' 불이 생각보다 커서 불똥이라도 하 나 튀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름 조절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조금 미안해 졌다. 나는 그에게 슬금 시선을 옮겼 다.
“멋진 구경 감사합니다. 허나 목조 건물에 불은 위험하잖아요.”
“위험하지 않아! 만져 볼 수도 있는 불이란 말이다.” 달래는 내 말에 가람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제법 놀라운 말이었다.
저만한 크기의 불을 만들어 내고, 온도 조절까지 할 수 있는 힘이라니. 후궁들에게 적용되는 약한 봉인의 힘을 가지고도 저만큼의 이능을 가 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능이 봉인되지 않았다거 어제 여면의 말을 들으며 의아했던 게 하나 있었다.
이능을 억제하는 봉인인 만큼, 다른 후궁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떨쳐 낸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윤은 어떻게 내게 쪽지 를 날려 보냈을까? 후궁들 중 바람의 이능을 가진 후 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일곱 공신가에 들어가 지 못할 만큼 힘이 약했고, 속 모를 기윤의 부탁을 들어줄 만큼 작하지
도, 여란 가와 사이가 좋지도 않았 다.
무엇보다 장가로 날아올 때 별다른 바람이 없었으니 염력이 맞는 것 같 으데
그가 그만큼 강해진 걸까, 아니면 봉인에 문제가 생긴 건가?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고개를 들 었다.
풍악 소리가 뚝 끊겨 있었다.
한참 춤을 추던 무희들이 일제히 멈췄다.
그들이 무언가 두려운 듯이 주춤대 다 곧 한쪽으로 비켜섰다. 드러난 바닥의 한가운데에 커다랗 고 복잡한 원이 생겨났다.
그건 내게 제법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저거•
'마법진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