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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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목화가 마룻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 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만히 숨 을 가다듬었다.
“공주 마마. 재상께서 오셨습니다.” 서연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는 입 근육을 한 번 풀고는 자리에 서 일어나 후다닥 문으로 다가갔다.
正을 열거라!” 소리도 없이 미닫이문이 열리며 기 윤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지고는, 찔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슬쩍 궁녀들의 눈치를 보는 나를 발견한 기윤이 웃으며 나를 안아 들 었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문이 닫 히고, 고운도 내보낸 터라 나와 그만 남았다.
“아비가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
구나.”
“그럼요, 아버지.” 나는 해실 웃으며 그의 목을 꼭 끌 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찌 자주 아 니 오셨어요?” 아, 두드러기 날 것 같다.
나는 바르르 떨리려는 입가를 애써 다잡았다.
지수에게 내가 세뇌에 걸렸다고 말 하라고 했으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을 연기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부러 그에게 입궁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고, 얼굴을 보자 마자 반갑다는 듯 웃었으며 지금도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폐하께서 내린 금족령이 풀리는 데까지의 시간이 조금 걸렸단다. 미 안하구나.”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기 윤이 나를 의자에 앉혀 주었다.
나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발을 동 당거렸고, 부루퉁히 입술을 쭉 내밀 며 말했다.
“저번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장소 에 아버지는 어디 가고, 어느 괴한이 있어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그 말에 옅게 웃고 있던 기윤이 작 게 고개를 기울였다.
“괴한이라니. 집안의 하인 아니나.”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나 는 지수가 대충 둘러댔다는 가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예? 아•••••• 그렇지요.”
적당히 수긍해 놓고 나는 이상하다  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는 의 미이겠지. 마음 쓰지 말거라.”
말 돌리기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환하게 웃 었다.
“역시 그렇겠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궁녀들의 목소 리가 들렸다. “마마. 다과를 들이겠습니다.” “아, 들어오너라.” 내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조용히 열리고, 궁녀들이 탁자에 이런저런 다과와 자를 내려놓았다.
기윤에게는 무늬가 없는 미색 다완 이, 나에게는 패랭이가 그려진 다완 이 앞에 놓였다.
그의 시선이 내 다완으로 향하자 나는 방긋 웃이 보였다.
“폐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예쁘지 요?” 그 말에 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궁녀들이 일을 끝내고 뒷걸음 질 쳐 나갈 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우아하게 자를 한 모금 마 신 뒤에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너를 퍽 귀에하시는 모 양이구나.” 그 말투가 미묘해 나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산야?” “혹 기분이 상하셨어요?” 내 질문에 기윤의 얼굴에 의외라는 빛이 잠시 스쳤다. “어찌 그리 생각했기에.”
“얼굴이 굳어 계셔서요.” 안절부절못하며 그에게 다가가 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였나요?”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기윤의 입꼬 리가 길게 늘여졌다.
“어찌 네 잘못이겠니, 산아.
“그저 조금 서글퍼져 그리하였단다.
무섭게 보였다면 미안하구나.”
“무엇이요?” 그렇게 물으니 기윤이 내 머리를  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 지 않느냐.” 나긋한 그 말에 심장이 쿵 떨어졌 다.
그 세뇌로 끝난 줄 알았는데, 여전 히 의심하고 있었던 걸까?
어디서 들길 만한 게 있었나? “이런, 놀랐구나.”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는지 기윤이 나를 안아 들었다.
그가 내 등을 쓸며 말했다.
“속상해하지 말거라. 내 너를 폐하 의 양녀로 들여보내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너는 내 딸이란다.” '아씨, 깜짝아.  이 망할 인간이. 무슨 말을 그렇게 이중적으로 해?
짜증은 났지만, 그 말에 나는 안심 할 수 있었다.
들킨 게 아니라, 내가 대외적으로 더 이상 그의 딸이 아니라는 걸 말 하는 거였구나.
“저는 폐하보다 아버지가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자 기윤이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비가 밉지 않으나?” 밉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관계이니까. 댁이야말로 날 미워하면서 새삼스
러운 질문을•••
나는 제법 진심으로 고개를 내저었 다.
“제 아버지이신걸요. 어찌 미워할 수 있겠어요.”
“작하구나, 우리 산아.” 그가 몸을 굽혀 나를 끌어안았다.
“아비가 지금껏 네게 소홀했으니, 네 분명 서운할 것을 알고 있단다.”
“그럼에도 내가 네 아비이니, 상냥 한 네가 아비를 봐주거라.” 나는 차갑고 딱딱한 품 안에서 잠 시 침묵했다.
기윤이 내 앞에서 울든 웃든, 타인 이니 아무 상관 없다.
그래도 참, 되먹지 못한 어른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럼요, 아버지.” 이 즐겁지도 않은 대화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 다. 이제 슬슬 약효가 돌 때가 됐는 데.
제자리로 돌아간 나는 자를 홀짝이 며 반대편을 살폈다. 그리고 기윤의 이마가 움찔 찌푸려 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찻잔은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 '됐다.'
“아버지? 안색이 안 좋으셔요.” 걱정스러운 내 말에 기윤이 입을 열려다 말고 침음을 냈다.
꽤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안 죽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그에게 다가가니 기윤은 내게 웃었 지만, 어지간히 고통스러운지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내 찻잔에는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던 모양이구나.”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다 경대의 서랍 을 열어 작은 병을 꺼냈다. “아버지, 이것 드셔요.” “그게 무엇이나?” 기윤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곧바 로 받아 마시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만병통지약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윤이 돌아가고, 나는 홀로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손 안에서 병을 굴렸다.
내가 그에게 내준 자는 수국자였다.
그러니까, 수국 꽃을 말려서 우린
자.
수국자와 수국 자는 아주 다르다.
수국자라는 것이 꼭 자 이름 같지 만, 그게 식물 이름이라는 것.
수국자라는 식물로 만든 자는 달콤 한 맛이 나지만, 수국으로 자- 마드1면 쓰고 떨떠름한 맛이 난다.
이름이 헷갈리는 탓에 수국차는 감 로자, 이슬자 등으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뭐, 이린 애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1 어?
하여튼 중요한 것은 수국은 독성이 있다는 것.
수국의 독 때문에 죽었다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기윤의 위치가 위 지인 만큼 아무렴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당장 버티기 어려울 만큼의 독.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약의 설명으로 여란 가의 상 단에서 판매되는 것이라는 것을 덧 붙였다.
만약 그가 팔고 있는 약이 정말로 만병통치약이었다면, 기윤은 망설임 도 없이 입에 털어 넣었겠지.
하지만 그는 끝끝내 약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내게도 어린아이 에게 적합한 약이 아니라며 먹지 말 라고 말했다.
, 기윤은 이 약을 먹으면 안 된다 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무슨 만병통치약이야.
'아편 맞구만.
힘이 쭉 빠진 나는 그대로 의자에 널브러졌다.
다완에 독을 발라 둔 것이 아닌, 차 그 자체였기에 나도 조금이지만 마 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같은 독이라도 내성 하나 없는 내 몸이라면 더 위독하게 받아들일 게 뻔했기에, 나는 미리내를 이용했다.
제윤 가의 이능은 치유가 전부이지 만, 다행히도 그는 그 가문에 이능을 부여한 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다짜고짜 그를 찾아갔고, 내 다완을 내밀며 축복을 걸어 달라고 말했다.
미리내는 갑작스러운 내 방문에 여 러모로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자신이 용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 으며, 한 가문이 만들어질 정도의 의 미를 가진 축복을 왜 다완에 내려달 라는 것이며, 갑자기 얘가 왜 이러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눈을 했지만 미리내는 순순히 다완에 축복을 걸 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이상도 없이 멀 쩡히 앉아 있으니, 그게 잘 통한 모 양이었다.
'다 잘 끝났지.' 나도 멀쩡하고, 약의 정체도 알아냈
고, 기윤도•••  기윤 여란.
그 이름이 생각난 순간, 나는 손에 들린 병을 냅다 침상에 집어 던졌다. 내가 잘못했지만 봐 달라고?
그게 어른이 아이에게, 그것도 자식 의 고통을 방관한 부모가 할 말인 가?
여러모로 개자식이아, 하여튼.
씩씩대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  늘어트렸다.
아, 기 빨린다.
“엄마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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