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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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는 그 무엇도 알아채지 못하고 바스러진 아이를 끌어안은 재 울었
다.
그 탓에 그녀는 작은 발자국 소리 가 가까워지는 것을 듣지 못했네. 작은 그림자가 그녀 위로 드리워졌
다. 이내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아니었구나.”
옅은 실망으로 가라앉은 목소리. 예화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흰 머리칼과 그보다는 진한 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그곳에 서 있 었다.
아이의 복색은 궁녀의 것이 아니었 다. 무엇보다, 서라국에는 백발이 없 었다.
“힘이 훅 줄어들기에 이번에는 너 일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게 중얼거린 아이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예화는 놀라 아이의 옷자락을 잡아 챘다. 멈춰 선 아이가 예화를 돌아보았
다.
무감정한 백색 눈동자가 섬뜩했다.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 째서 이곳에 있는지도.
하지만 예화는 본능적으로 그 아이 를 붙들었다.
'이 자는 용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서라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
서라국에 존재하는 모든 이능의 근 본
“도와주세요.”
그 탓에 예화는 용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가•••••• 이 아이의 인생이, 너무나 기구합니다.”
예화는 산야를 조심스레 눕히고는 무릎걸음으로 용에게 다가7갔다.
부디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
한 번도 고개를 숙인 적 없던 황 제가 용의 발치에 엎드려 간청했다.
“제게 무엇을 앗아 가서도 좋습니
다. 허나 저 아이의 삶이 이대로 끝 나지만 않게 해 주십시오.” 절절한 호소를 듣고 있던 용이 산 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각성이 둘이구나.” 용이 대뜸 중얼거렸다.
“이미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힘을 많이 썼어. 거기에 각성이 둘씩이
나.”
권태로운 용의 말은 그것만으로도 거절로 들렸다.
예화는 섣불리 재촉하지 않았다. 하지만 흘러내린 제 하안 머리카락 을 보았다.
“허면 제 힘을 다시 가져가세요.” 어떤 힘이 제게 주어졌는지 안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바칠 만한 것이 었다.
비단 이능뿐만이 아니라, 용이 무 엇을 원했어도 같았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용이 입을 열었다.
“살려 줄게. 대신 쉽지는 않을 거
그 말에 예화가 번쩍 고개를 들었
다. 용이 말을 이었다.
“죽은 아이를 살려 낼 수는 없어. 하지만 아이가 살아 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있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아서 가능한지 도 알 수 없지만, 아주 많은 힘이 필요할 거야.”
그 말에 예화의 눈가에 눈물이 고 였다.
산야를 살릴 수 있다.
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용이 말했다.
“이 나라가 위태로워질 거야. 네가 그토록 보살피던 이곳이 말이야.” 그래도 괜찮아?
의미심장한 용의 물음에 예화는 망 설임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에 용이 오묘한 눈으로 예화를 바라보았다.
“너는 네 나라의 멸망이 아무렇지 않니?”
산야의 시신을 조심스레 갈무리하 던 예화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내 저주는 풀렸어. 년 평범 한 사람처럼 모두를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겠지.”
“그런데도 그 아이가 소중하니?” 여전히 슬픔으로 젖은 눈동자가 잠 시 용을 향했지만, 다시 산아에게로 돌아갔다.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생살 을 째내듯 아팠다.
아이를 외면했던 시간들이 생생했
다.
내 의사가 아니었다 한들, 결국 너 를 죽인 것은 나인데.
내가 감히 너를 내 아이라 칭할 수나 있을까.
예화가 부서질까 조심스러운 손길 로 산아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용이 문득 말 했다.
“너는 정말로 아륜이 아니구나.
아륜이었다면 나라를 선택했을 테
니.
자그마한 뒷말을 미처 듣지 못한 예화가 고개를 돌렸을 때, 용은 이 미 사라져 있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세상이 뒤집힌 다.
온몸이 부서지고 재조합되는 고통 이 밀려왔다.
그 고통에 손끝을 담갔을 때, 나는 기억에서 밀려났다.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자린 나는 숨을 헐떡였다.
여전히 정신이 몽롱했다.
온통 새카만 주변에 빛나는 형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고, 나머지 하나에는 누추한 감옥에 꿇 어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내가 방금까지 들어가 있었던 기억 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은 그저 용 의 저주 탓이었고, 내 죽음으로 그 저주는 풀렸다.
엄마는 내 죽음에 아주 슬퍼했고, 나라의 멸망마저 불사하며 나를 다 시 살려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별다른 감상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죽은 뒤의 첫 번째 생의 기 억을 조금 더 보는 것이 무슨 도움 이 된다고?
엄마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나는 그 모습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 어두운 공간에 있었다.
지금껏 기억을 다 보면 곧바로 현 실로 돌아왔던 것과 상반된 일이다.
스크린처럼 필쳐진 흰 빛무리는 이 제 둘 다 새하얘져 있었다.
나는 인영이 비치지 않았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새하
야 뾰- 0 고가1- •
그런데 무언가 일렁이는 것 같았 다.
아직 이곳에 있다는 건, 내가 볼 기억이 더 남아 있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자 새하얗던 공간이 일렁였다.
눈을 감았다 뜨자 어린아이가 보였
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갓 태어 난 아이였다.
아이가 있는 곳은 서라국의 방식 도, 서 대륙의 방식도 아닌 것으로 지이진 건물이었다.
잠시 황망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곳을 떠올렸다.
'지구야.
내가 두 번째 생을 살았던 세계.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는 점점 자랐
다.
이십 년 남짓한 시간들이 주마등이 스치듯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의 삶은 그리 평단하지 못했 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렸고 마음 붙일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자라나 어른이 되 었지만, 아이의 삶은 여전히 힘겨워 보였다.
아직 앳된 얼굴이 늘 어두웠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별다른 감상을 가질 새도 없이, 장면이 바뀌었다.
그 아이가 태어났던 병원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아이였던, 여전히 어린 그 에는 엉망이 된 머리로 갓 난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가.
차마 바스러질까 겁난다는 듯이 아 이의 얼굴을 쓸고,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환희하며 아이를 바라본다.
-아가, 잔아.
그녀는 내 어머니였다. 내가 원망했고, 사랑했던 사람이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

품에 안긴 갓난아이의 볼에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_항혹하7// 해/ 줄게.
아기가, 품에 안긴 어린 내가 울음 을 터트렸다.
엄마는 울며 나를 끌어안0갔다.
-사람4//. Ö/PÖ//는 꼭 사람해/ 줄
게. 잔아. 나/ 딸.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
다.
그게 생경하면서도 익숙했다.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허름한 방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벽지, 낮은 앉은뱅 이 식탁에 올라와 있는 이 빠진 식 한겨울에는 바람이 집을 통과하고, 한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녹일 듯이 내리쬐는八
꽜다! 혼자 겸/겸쩦又/. 오늘은 무/ 하고 놀았어?
하지만 그곳은 어머니가 있기에 나 의 집이었다.
이어지던 기억이 바뀐다.
나는 어렴풋이 내가 꿈을 꾸고 있 음을 깨달았다.
아플 때마다 꾸었던, 하지만 깨어 나서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던 엄마
꿈.
그 기억들이 가만히 내게 밀려온
다.
그 삶은, 두 번째 생의 내 어린 시 절은 가장 궁핍했지만 따뜻했다.
나를 넘치게 사랑해 준 어머니 덕 이었다.
본인은 매일 빨아 해진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딸아이 옷에는 구멍 하 나 보지 못했다.
추운 겨울에는 온종일 일한 고단한 몸으로 차가운 냉기가 들어오는 벽 을 등지고 잤다.
해가 뜨기도 전에 나가 해가 지고 도 한참 뒤에 들어와서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쾌활한 낮으로 나를 대했다.
어렸던 나의 세계는 어머니가 전부 였고, 나는 그 세계에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0갔다.
빈곤한 삶의 어려운 일들을 제 등 으로 막아 내고는, 어머니는 내게 늘 웃어 주었기에.
작은 방. 바깥의 소음.
가만히 앉아 시간을 홀려보내며, 기다리는 것마저 즐거웠던 최초의 시간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 왜 이리 늦었나 투정을 부리던 기억 들이 고요히 흘러간다.
하지만 꿈이기에 언젠가는 깨어나 아 하는 것.
그것을 증명하듯이, 기억들이 뒤섞 인다.
어머니는 종종 아팠다.
닥치는 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한 탓이었다. 세상은 학력과 경력이 없는 미혼모 에게 각박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했지 만 그럼에도 두 식구 살기가 빠듯했
다.
그런 어머니에게 병마가 드리워진 것이, 네 살의 어느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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