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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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의 사내 가 보였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나는 단박에 뛰어가 아버지의 품 에 안겼다. 든하게 받아 주시는 품이 든든했다.
“이런, 마마. 체통을 지키셔야지 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부드럽게 떼 놓으 며 타일렀다. 나는 찔끔해 뒤로 물 러섰다. 오윤이 그 예의 무심한 일 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일 보고 서 있느냐!”
버럭 소리를 치자 오윤이 무심히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방 안에 궁녀들은 없었지만, 아비 지는 그대로 자리에 앉으셨다.
한 번 더 안기고 싶었던 나는 아 쉬움에 쭈뼛댔지만, 아버지께서 웃 으며 자리를 권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앉았다.
“아버지. 그간 무탈하셨나요?”
“예. 걱정해 주신 덕에 가솔 모두 평안하였습니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대답이 돌아왔
다. 나는 그게 아주, 아주 조금 서 운했다.
편히 말씀하서도 될 텐데. 어찌 저 리 깍듯이 격식을 지기실까.
하지만 일전에 아버지께 그리 말 八드렸을 때, 아버지는 난처해하시 며 내게 말하셨다.
'황구에는 귀도, 눈도 많습니다. 이
아비라 하니라도 제가 폐하의 총 q//받는 후구인口/가껴/ 함부로 말을
'
았추겠습L,/까.
궁 안에 세작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 탓에 아버지가 내 궁에 오실 때마다 마음 졸이셨다는 것이 마  아팠다.
궁인들을 모두 교제하고 단단히 을러 두었지만, 아버지는 그 뒤에 도 여전히 내게 존대하셨다.
어쩔 수 없지. 아버지께서 신중하 시니.
“마마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속으로 툴툴대는 것을 까맣게 모
른 아버지가 다정히 물어 왔다.
냉큼 반류의 일을 일러바치려던 나는 멈칫했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아버지이 신데, 내가 이리 말씀드리면 더 격 정하지 않으실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대자 아비 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 같군요.” 그리 표정 변화가 크지도 않0갔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곧장 알아채 주셨다.
아버지가 살살 나를 달랬다.
“뉘가 감히 마마께 을 대었습니
까. 아비에게 말해 보세요. 네?”
다정한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 다. 나는 울음을 꾹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게, 실은••
다투다 그가 이능으로 나를 조금 괴롭혔다고. 하지만 별일 아니었다 말하려 했는데, 서러웠던 건지 말이 늘어졌다.
결국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 나는 작게 훌쩍이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 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내 머 리를 쓰다듬었다.
“을지 마십시오. 마마께서 우시면 이 아비는 마음이 찢어집니다.”
나는 그 말에 훌쩍이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수원 가의 후궁이 건방지군요. 어찌 감히 마마께 그리하였단 말 입니까.”
아버지는 꼭 본인이 모욕당한 것 처럼 화를 내셨다. 아버지가 안쓰 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비가 크게 혼을 내겠습니
다. 걱정 마세요, 마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눈물을 그치고 활짝 웃자 아버지 도 마주 웃어 주셨다.
“궁 안의 많은 이들이 마마를 귀 이때야 할 터인데•••
안타깝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덩달아 시무 룩해졌다.
“그렇지만, 다들 절 싫어하는 걸 요."
모든 궁인들과 후궁들은 나를 싫 어했다. 눈만 마주치면 인상을 찌푸 리거나 연회에 나만 초대해 주지 않 는 정도는 허다했다.
“폐하께서 저를 많이 아끼시니 다
들 투기하는 것이에요.”
속 좁은 사람들 같으니. 폐하께선 군주이시니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없는 분이신데.
“그럼에도 지나치게 미워하시면 아니 되지요. 마마께서 그들을 미 위하는 것 또한 투기입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조용히 타일 렀다. 나는 그 말에 조금 민망해졌 다.
“폐하의 굄을 받으셨던 것처럼 다 른 분들의 눈에도 들 수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마마. 그리 투정만 부리시면 이 아비도 곤란합니다. 노력을 해 보 서야지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일순 서늘 해졌다.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얼굴이 금세 평 소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래요. 작하십니다.”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0갔다. 그들 은 나를 싫어하고, 나도 그들이 삶 은데.
그래도 아버지께서 슬퍼하는 건
싫으니까.
“질 좋은 찻잎을 조금 가져왔습니 다. 황궁의 것만은 못하겠으나 후 궁 마마님들께 맛보여 드리기에는 손색이 없겠지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 서 자통을 꺼내 내밀었다. 열어 보 니 향긋한 향이 금세 퍼졌다. 향을 조금 더 맡고 싶었지만, 아 비지가 자통 뚜껑을 닫0갔다.
“먼저 찾아가 청하신다면 그분들 도 거부하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들림 없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오늘 귀비 마마께서 별다른 일정이 없으시다 하니, 마마와 차 한잔하실 시간은 내어 주실 수 있으 시겠지요.”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 했다. 나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아직 이 각(30 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마마께서는 이제 귀비 마마께 가 서야지요. 사시가 지난 지 오래이 니 서둘러 가서야 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을 거역할 생 각은 없었지만, 그게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이라니.
귀비, 미리내는 유독 나를 싫어하 는 후궁들 중 하나였다.
내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가 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은 그 누 구보다 무서웠다.
'이상한 사람이란 말이야.'
늘 안대를 하고 다니는 그의 눈 을 딱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세로로 가느다란 동공과 새빨간
눈이 뱀처럼 징그러워서, 마주하는 순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한 나라의 귀비가 가진 눈이라기 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 하여 폐하와 아버지께 알렸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 요사스러운 것이 모丁亡르 1-호리 기아.'
언제 내게 손을 댈지 몰라 두려 웠다. 마주치기 싫은 상대였다.
하지만 못한다고 한다면 또 아버지 가 실망하시겠지.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배웅했다.
황궁 안에서는 황족이 아닌 이는 이능도, 가마도 이용할 수 없어 아 비지는 걸어가서야 했다.
“마마. 다음번에 뵐 때까지 부디 평안하십시오.”
대문 앞에서 아버지가 내게 인사 했다. 몸을 돌리려는 아버지를 보 자 조급해졌다. 결국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옷 것을 붙들었다.
“아버지. 조금만 더 자주 와 주시 면 안 될까요?”
여긴 너무 조용하고, 재미없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아서, 조 금 외로워요.
그 말은 삼켰다. 하지만 아버지가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본 아버지가 웃었다.
그에 잠시나마 기대했으나, 대답 은 평소와 같았다.
“송구합니다, 마마.” 아버지는曰드럽게 내 손을 떨쳐 내고는 방을 나섰다.
홀로 덩그러니 남은 나는 그 뒷 모-- 오래도록 바라보았지만, 아 비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가로 돌아가시고, 나는 미리내를 찾아갈 채비를 했다. 채비하는 내내 가기 싫어 미적거 렸지만, 결국 나는 궁을 나섰다.
이능을 쓸 수 있는 황족들에게는 가마가 제공되지 않는다.
나는 염력의 이능。 가진 여란 가의 후궁인 탓에 가마가 없었지 만, 폐하께서 하사해 주신 것이 있 었다.
그 가마를 타고 싶었지만, 가마가 조금 부서져 탈 수가 없었다.
'고치라 명한 지가 언제인데, 이 게으른 것들.' 나는 투덜대며 따라오겠다는 오 윤을 물렸다.
이능이 없는 나로서는 홀로 가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오윤은 지금 껏 다른 후궁들이 나를 괴롭힐 때에 한 번도 나를 도운 적이 없었다.
미리내의 처소인 화령궁은 조금 멀었다.
나는 다리를 톡톡 두들겨 가며 열심히 걸어 화령궁에 도착했지만, 미리내를 만나 볼 수 없었다.
“귀비 마마께서는 출타 중이십니 다.”
口앞을 가로막은 문지기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오늘 분 명히 귀비께서 일정이 없다 하셨는
“허면 언제 돌아오시느냐?” “소인은 모르옵니다.”
“문을 열어라. 궁 안에서 기다리
마.”
“아니 됩니다. 아무리 초비 마마 라 하더라도 궁의 주인의 허락 없 이 들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문지기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 완고함이 설득될 것 같지가 않았
다.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미리 내를 만나는 것은 실패했지만, 다 른 이들이라도 만나 볼 생각이었
다.
하지만 그도 실패했다.
'방문하는 후궁전마다 주인이 출 타 중일 건 뭐람.'
다들 단체로 요양이라도 간 것인 가. 내겐 언질 하나 없었는데.
늦은 저녁에야 궁에 돌아온 나는 다리를 살살 주물렀다.
보드라운 비단신을 신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에 발에 물집이 잡히고 다리가 퉁퉁 부었다.
그나마 나를 덜 괴롭히는 이들의 궁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번번 이 퇴짜를 놓다니.
나름 좋은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지.
투덜거리던 나는 부은 발에 신겨 져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분홍색 비단에 패랭이꽃이 수놓아진 신이 었다.
그걸 보는 내 입가에 가만히 웃 음이 떠올랐다.
마지막 후궁의 궁에서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을 때, 다시 내 궁으로 걸어오는 길에 폐하를 마주겠다.
폐하는 홀로 걸어오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가마에서 내렸다.
'어째 홀로 0±4? H/ -구인들은 어디여/ 두고. '
애쓰지 않아도 울먹거림이 새어 나 왔다. 나는 봇물 터진 것처럼 폐하 께 내가 겪은 일들을 말했다. '그래, 서러웠겠구나. '
폐하는 내 눈물을 닦아 준 뒤, 흙 먼지가 묻은 내 신을 보았다.
'그 발로 너 걸기는 어려울 E//L/ 가마를 타고 가거라. 나/ 전도 하나 꼬나/ 주가. '
폐하의 그 말에 곧바로 가마가 대령되었고, 그 가마는 훨씬 흔들 리지 않았으며 폐하께서 보내 주 신 신은 예뻤다.
'아껴 신어야지.'
나는 신을 조심스레 빼내 침상 옆 에 가지런히 놓아두고는 자리에 누 웠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폐하도 뵈었 고, 아버지도 오셨으니까.
좋은 날이고, 실것 걸어 몸도 고 단하니 금세 잠이 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정신이 말똥했다. 눈을 꾹 감고 있었지만 통 잠이 오질 않q갔
다.
낮에도 그리 시끄럽지는 않았지 만, 모두 잠든 밤은 유독 고요했 다.
아무리 숨죽여도 말소리 하나 들 리지 않는 밤. 뒤돈 등 뒤에서 무 언가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0갔 다.
그 고요함이 무서웠던 나는 괜스 레 뒤척거리다 입을 열었다.
“안녕.”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 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말소리가 들리니 한결 나았다.
“아녀 ”
이번엔 한층 더 다정했다.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 자.
그 말을 듣자 거짓말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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