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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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방 안을 가만히 둘러보다가, 장가로 걸어가 장을 열 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작게 들리는 말소리도, 창밖의 풍 경도, 이곳에 머무는 그 누구 하나 도 어색하지 않다.
이제야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남은 원망마저 눈 녹듯 사라져서, 이제 정말로 모두 제자리를 찾0갔다.
' '던 아무 잘못이 없이, 아가.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그 것뿐이다.
악의가 없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애에게 너그럽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나이기에 내가 제일 소중했지 만, 같은 이유로 가장 원망하기 쉬
운 것도 나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나 자신에게 는 쉽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 야 할까.
다른 이들처럼 쉽게 잊혀지지도, 엄마처럼 용서할 계기를 찾을 수 있 을 것 같지도 않았다.
너를 다시 기억 속에 묻어 버릴 수도 없다. 널 피할 뿐이지, 받아들 이지 못하는 것은 같으니까.
깊게 한숨을 내쉬고 장문을 닫았
다.
그 뒤로, 나는 며칠 더 방에 들어 박혔다.
또다시 내 칩거를 걱정한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나는 거 절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 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모 두 했다.
이제 내가 혼자 해결해아 할 것이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며칠의 시 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부정적이 었다.
널 미워한 시간이 길고, 용서할 이 유도 찾기 어렵다.
엄마도, 고운도, 다른 사람들도 나 를 사랑하지만 그들이 나를 사랑한 다는 것만으로 나를 사랑할 수는 없 었다.
어쩌면 나는 평생 나를 사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을 나섰
다.
밖으로 나온 나를 본 이들의 일굴 이 제각각이었다. 놀란 얼굴, 웃는 얼굴, 우는 얼굴.
그 애정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나는 화룡궁으로 향했다.
엄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맞았다. 문을 닫고 사람을 물린 나 는 입을 열었다.
“그 에를 만나러 갈 거예요.”
갑작스러운 말에도 엄마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이 주 었다.
“다녀올 건데,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
“여기 있어 주실래요?”
자신감 없이 중일거린 말에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엄마가 가만히 내 2' 드 0 토닥였
다.
“잘 다녀오렴.”
그 다정한 말에 나는 조금 웃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뒤, 이능을 썼다.
어느새 익숙해진 공간이 눈앞에 들
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안 공간에 서 있는 어린아이.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불안하 게 떨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입이 무언가를 말하려 달싹였지만, 나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난 아직도 네가 미워.”
차갑게 내뱉은 말에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할 것을 예상한 듯이, 하지만 상처는 감추지 못한 채로.
“오래 고민해 봤지만,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 모습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제 널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할 거야.”
마지못한 듯 내뱉은 말에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이었다.
그 모습에 또다시 눈살이 찌푸려졌 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얼굴을 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에” 아직 널 마냥 가없어하기엔 원망이
더 컸다. 너무 크고 깊어서, 어떻게 하지 못 할 만큼.
그래도, 어쩌면.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내가 지금보 다 더 크면, 그럼 어느 날•••
“널 떠올려도 끔찍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그 말에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 았다.
맑은 눈동자가 크게 떠지더니 이내 환하게 휘어졌다.
겨우 이런 말에도 좋다고 웃는 멍 청한 어린아이.
증오스럽고, 끔찍하고 볼품없는.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연민하는 어린 시절의 나.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 애가 바보 같이 웃는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있지. 나는 너 안 싫어해.
다정한 목소리가 고요히 흘러나왔 다. 아이는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 었다.
“네가 낮을 살아갈 동안 나는 밤에 남아 있어야 했을 때도, 네가 나한 테 못된 말 했을 때도 너 안 싫어 했어.” 그 말에 나는 멍하니 아이를 바라 보았다.
너는 내가 밉지 않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말하지 못한 물음을 들은 것처럼, 아이가 웃음기 이린 목소리로 울먹 였다.
“정말,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눈물이 아이의 뺨을 타고 내렸다. 내내 메마른 눈을 하던 아이가 처음 으로 울었다.
아이는 꼭 살아 있는 사람처럼, 숨 을 고르듯 크게 들이마시고는 천천 히 내뱉었다.
“이제 진짜 갈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홀가분해 보 였다. 도리어 덜컥 겁이 난 건 나였 다.
나는 나도 모르게 덥석 아이의 손 을 움켜쥐었다.
“어디 가?”
내 목소리가 불안으로 떨리자 아이 가 웃었다. 그러고는 나를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말이야•••  그 애가 내게 무어라 속삭였다.
다시 한 번 아이를 부르려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순간 눈물이 주록 흘러내 렸다.
산아가 그 아이를 만나러 간 동안, 예화는 내내 딸아이의 곁을 지켰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 러웠다.
예화는 산야의 공간을 엿보고 싶었 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이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산야는 조금 달랐다.
' '그 이를 만나리 갈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산야의 얼굴은 여전 히 혼란스러웠지만, 결심이 선 듯 보였다.
예화는 산아가 어설프게나마 길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딸의 손을 잡고 조용히 기 도했다. 부디 아이가 저 자신에게 또다시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일마 지나지 않아, 산야가 눈을 떴다.
아이를 맞이하려 눈을 마주친 예화 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산야는 방금까지 이곳에 있 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아직 이린 산야보다도 훨씬 이린, 그 아이.
내 손으로 죽인, 내 이린 딸.
누군가 손으로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예화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0갔다.
아가. 산야. 내가•••  예화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해 아 사죄할 수 있을까.
그때, 차갑게 식어 떨리는 그녀의  따뜻한 손이 조용히 움켜쥐었
다.
“괜찮아요.
맞닿은 손이 따뜻했다. 충분한 온 기였다.
“나는 이미 당신을 충분히 원망했 고, 사과도 이미 많이 들었으니 까•••••• 이제 됐어요.”
산야는 웃고 있었다. 편안한 일굴 이었다.
“나 이제 정말 가 보려고요.”
가벼운 숨을 내쉬듯이, 산아가 말 했다.
“이제 그 애가 정말 괜찮아졌으니 까,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을 거 같 아요.” 예화는 그 말을 듣고 순간 얼어붙 은 얼굴을 감춰야 했다.
산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아이의 말은 꼭 죽는다는 말 같아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예화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이 에게 웃어 주었다.
그러자 평온하던 아이가 조금 주저 했다.
“그런데 나 묻고 싶은 게 있는
손끝을 꼼지락대며 고개를 숙였던 산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다.
“나 엄마 딸이죠?”
조심스레 묻는 그 말이 너무나 맑 아서 예화는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꾹 참고, 세 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다시 웃어 주었다.
“그럼. 엄마 딸이지.”
그 말에 산야의 얼굴이 화악 밝아 졌다. 아이가 조금 더 주저하다 입 을 열었다.
“그럼 엄마.”
떨림과 두려움, 조금의 기대가 서 린 얼굴로 산야가 묻는다.
“나 사랑해요?”
아주 어릴 적 딸에게 들었던 질문. 결국 예화는 속절없이 얼굴을 일그 러트렸다.
“응, 사랑해.” 더 일찍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 우리 딸" 이젠 정말 괜찮은 거니? 그 말에 산아가 마주 웃었다. 봄날 의 햇살처럼 환한 미소였다. “그럼 됐어요.” 성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한참 어린 딸이 품에 안겼다. 예화는 천천히 바스라지는 아이를 오래도록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예화는 눈물 젖은 눈으 로 웃었다.
“어서 오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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